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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친 ‘나’는 잠시 ‘멈춤’...내면의 ‘나’를 찾아 “休~”
'멈춤(PAUSE·靜止)'지난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 주제는 ‘멈춤’이었다. 숨가쁘게 앞만 보고 줄달음쳐온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자는 동양적 성찰의 의미를 담은 메시지였다. 전시에서는 ‘정자(亭子)’ 파빌리온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참여와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며 주목을 끌었다.20년이 훌쩍 더 지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더 바빠졌다. AI가 등장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고 할 수 있다.‘멈춤’은 현대가 피로과잉시대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2026.07.01@ 김만선 -
무더위 날릴 호러·액션·고전 한 자리에
광주극장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과 거장들의 대표작을 잇달아 선보인다. 한여름 밤 오싹한 긴장감을 선사할 호러영화부터 누벨바그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장뤽 고다르 감독의 명작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난다.7월 특별 상영작으로 마련된 ‘퍼시픽션’(2022)은 알베르트 세라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타히티 섬을 배경으로 프랑스 정부 고위 관료 드 롤레가 핵실험 재개설이 퍼지는 가운데 식민지 사회의 균열과2026.07.01@ 최소원 -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지키려 일어난 영호도회소와 김인배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부터 비롯된 제2차 동학농민전쟁은,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싸운 전면전이었다. 때로는 정부군과 싸우기도 했지만, 정부군의 실질적인 지휘는 일본군이 하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할 때 전봉준, 김개남 등의 활동을 주목하지만, 실제는 무장의 손화중, 무안의 배상옥이 이끄는 농민군 세력이 이들보다 최소 2~5배 정도로 규모가 컸고, 나주의 오권선, 장흥의 이사명·이방언도 전봉준 못지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순천 지역을 근거로 김인배가 결성한 ‘영호도회소’는 제2차 동학농민전쟁2026.06.29@ 차솔빈 -
강진을 지켜낸 수문장···전략의 귀재 염걸 장군
1596년 11월 정유재란 가능성이 농후할 무렵,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재침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덕형은 “수전(水戰)이 상책이고, 그 다음이 산성을 지키는 것이니 주사(舟師)를 신칙하여 적이 오는 길을 막게 하고”라 하며 해상에서 미리 일본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성룡 역시 같은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곧 조정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통해 일본군의 재침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익히 아는 바처럼 일본의 이간계에 휘둘린 조선 조정은, 1597년 1월 28일 이순신을 파직했다.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2026.06.29@ 한경국 -
왜란 맞서 목숨 바친 윤신···화암사·만의총에 남은 충절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에 ‘화암사(華巖祠)’라는 사당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외세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해남 윤씨 가문 일곱 명의 충신을 배향했다 해 ‘칠충사(七忠祠)’라고도 불린다. 2004년 11월 1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됐다.이 사당은 원래 1823년 도내 유림이 임진, 정유재란 때 순절한 윤신, 윤동철, 윤치경, 윤이경, 윤익경 등 5명을 배향하는 사당 건립을 청해 현재의 화암(花巖) 아래 사당을 건립했다. 처음에는 5명의 신주를 모셨다 해 ‘오충사(五忠祠)’라 불렀다. 1871년 대원2026.06.29@ 한경국 -
나라를 위해 목숨 맞바꿨다···송대립·송희립 가문의 호국 열전
이미 살핀 바 있는 진무성, 신여량을 비롯해 오늘 살필 송대립·송희립 형제 등 이순신 막하에 속한 인물 상당수가 고흥 출신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고흥은, 전라좌수영의 5관 5포 가운데 1관 4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은 고을, ‘포’는 수군 기지를 뜻하는데 5관은 순천도호부, 광양현,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등 다섯 곳이고, 5포는 방답진, 사도진, 여도진, 녹도진, 발포진 등 다섯 곳이다. 5포 가운데 방답진은 지금 여수돌산 군내리에 해당하고 나머지 진은 모두 고흥 지역에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고흥인 흥양현을 포함해2026.06.29@ 한경국 -
천험의 요새서 목숨 바쳐 충절을 지킨 입암산성의 불사신 윤진
장성 백양사에서 정읍 내장사로 넘어가는 등산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아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등산로가 국난 극복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전북 정읍 입하면과 전남 장성 북하면의 경계를 짓는 등산로의 정상이 입암산인데, 갓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곳 입암산에는 산의 8부 능선을 따라 높이 3m, 길이 약 5.2㎞나 꽤 길게 성을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 있다. 사적 384호인 산성 주변에는 인공 연못인 해자(垓字)도 시설되어 있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2026.06.29@ 한경국 -
이순신 척후부터 전라우도수군절도사까지···왜란의 숨은 공신 신여량
관외로 반출돼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원래의 자리에 옮겨 놓아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문화 유산은 그 지역의 정체성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 보존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경우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고흥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권율 장군의 막하에서 공을 세운 신여량 장군 유품 가운데 1987년 전남도문화재로 지정된 상가교서, 밀부유서 등 소장품이 후손의 기증으로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소유권이 이관되면서 전남도문화재 지정이 해제됐다. 상가교서, 밀부유서는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주사선연지도 등 다2026.06.29@ 한경국 -
임진에서 정유까지 세 차례의 구국 결사···'남문창의' 맹주 김경수
1919년 4월 3일, 4일 양일에 걸쳐 장성 모현리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를 기념해 시위 현장에 구속됐던 이 마을 출신을 추모하는 사당 ‘3·1사’가 있다. ‘3·1사’ 바로 옆에 잘 정비된 사당이 있다. 임진·정유재란에 참전한 장성 출신 의병을 모신 ‘오산창의사’다. 임진왜란 속 국난 극복의 애국심이 3·1운동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오늘은 흥선대원군이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하였던 장성 지역 의병을 이끈 김경수 다.임진왜란 당시 호남지방에2026.06.29@ 한경국 -
고성 의병에서 가리포의 방패까지···지략과 용맹으로 쓴 승전보
완도에는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영의 6개 만호진(회령포, 마도, 이진, 어란, 금갑, 남도포)을 관장한 가리포진이 있었다. 가리포는 중종 16년(1521년) 전라좌도 강진현 완도(현재 완도읍 군내리)에 설치되었다가 1894년 폐진됐다. 가리포첨사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정걸, 이억기, 이영남 등 임진왜란의 영웅들이 이 자리를 역임했다. 가리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말해준다.완도읍 가리포진성 터 바로 뒤에 있는 남망산 봉수대는 이순신 장군과 인연이 있다. 가리포첨사로 발령받은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을 순시하다가 이 봉수대에 올2026.06.29@ 한경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