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혁신적 자세가 필요
첫 작품 상무·산정지구 기대
경관 살리고 논란 없애려면
'사전 협상'통한 계획이 필요
"광주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서울에 있는데 이들이 내려와 건축산업을 키울 수 있게 한다면 광주는 건축수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회색 아파트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광주가 국내 '건축 수도'가 될 수도 있다는 꿈 같은 상상에 함인선 광주시 총괄건축가(한양대 교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많다는 것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향' 광주에 예술적인 분위기가 흐른다는 것.
지난해 광주시 최초의 '광주도시건축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광주도시건축가이드라인'을 추진 중인 함 총괄건축가를 만나 지역 건축과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젊은 건축가에 기회 줘야
함 총괄건축가는 세계적인 '건축 수도'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예로 들었다. 오랜 역사 유산을 안고 있는 파리나 런던, 암스테르담과 같은 유명 도시와 달리 로테르담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당해 도시가 폐허가 됐다. 하지만 새롭게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러다 보니 실험적이고 독특한 건물이 전역에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산업이 발전하고 또 건축을 보기 위해 세계인들이 모여들면서 건축수도가 된 것.
광주 또한 산업화와 도시 개발 과정에서 역사적 유산은 전부 없어졌다시피 했다. 이미 무분별한 난개발로 도시가 망가졌지만 늦지 않았다고 함 총괄건축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함 총괄건축가는 "앞으로 새로 건축해야 할 물량은 많고 이를 실험적이고 혁신적으로 짓는다면 그렇게 건축수도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광주시의 첫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광주 대표 건축물로 거듭날 상무소각장은 건축수도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단추다. 함 총괄건축가는 "대표적인 건축상인 건축문화대상에 지금껏 수천개 건축물이 있는데 부끄럽게도 광주시에는 8개뿐이다. 전국 광역시 중 꼴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무지구에 지어지는 500세대의 광주형평생주택도 국제든 국내든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광주사람들이 기절초풍할 정도의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산정지구 또한 국제현상 공모를 통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설 임대주택에 실험적이고 파격적으로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협상에 의한 지구단위계획' 중요
그러나 함 총괄건축가는 광주 도시가 변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게 '협상에 의한 지구단위계획'과 '도시건축통합설계'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개발방식에는 기존 국내 방식인 도시개발법에 의한 방법과 '협상에 의한 지구단위계획'이 있다. 그간의 도시개발법은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할 도로와 공원, 학교와 같은 인프라를 개발업자에게 대신 부담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개발업자들은 이같은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대신 아파트는 사업을 최대한 낼 수 있도록 저품질의 성냥갑 아파트를 만들어낸 것.
함 총괄건축가는 "도시개발법으로는 도로와 공원밖에 얻을 게 없지만 사전협상 방식을 통하면 박물관이든 오페라하우스 든 지자체가 도시경쟁력에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을뿐더러 현상공모를 통해 혁신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광주시 전역에 활발한 재개발과 재건축에도 이같은 방식을 적용해 지자체에 필요한 기부채납을 얻어내면서 도시 경관에 해가 되는 일률적인 형태를 탈피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 방식은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 정착했다"면서 "이를 통하면 심의를 원스톱으로 끝내 사업기간이 짧아지고 밀실협상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서울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있는 방식인데 왜 광주는 못하나.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싱글유즈'서 '믹스유즈'로
그는 광주든 국내든 성냥갑으로 대표되는 단지형 아파트가 들어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도시설계와 건축이 분리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도시든 지구단위계획이든 현재 국내는 도시설계가 끝난 뒤 건축 설계가 들어가면서 건축물이 이미 도면에 그려진 블록에 맞춰질 수밖에 없고 혁신적인 건축 형태가 들어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파리 같은 도시는 나올 수 없다. 파리는 1층은 상업시설 2층은 오피스, 3층은 주거 등이 복합된 믹스드유즈(Mixed Use)"라면서 "근데 우리는 이미 60년대에 잘못됐다고 결론 난 싱글유즈(Single Use·주거와 상업용 건물 분리) 바둑판 설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게 공공건축가와 민간건축가, 도시 설계자가 처음부터 함께하는 도시건축통합설계고 이미 전세계에서는 대규모 개발할 때 쓰는 보편적 방식"이라고 말했다.
함 총괄건축가는 "(이를 도입한) 세종시 첫 마을의 경우 토지를 매각할 때 땅값을 정해놓고 설계점수로 경쟁시킨다. 그러다 보니 특색있는 아파트가 많다"면서 "광주에서는 이런 (성냥갑) 아파트를 짓는 업체가 세종시 가서는 기가 막히게 짓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회색도시 오명, 아파트는 죄 없고 문제는 단지형"
"아파트를 비난하는 이유는 고층에 골목길을 끊고 주변을 슬럼화한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아파트를 통째로 비난할 게 아니라 이 앞에 '단지형'이라는 것을 붙여야 합니다."
함 총괄건축가에 따르면 아파트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지형 아파트', 또 하나는 유럽 등에서 흔히 보는 '연도형 아파트'다.
그는 "단지형 아파트는 개발구역을 묶어 기존의 길을 없애고 펜스를 쳐 단지를 만든 뒤 그 안에 녹지, 상가, 유치원 등 자족시설을 만들면서 가로가 죽는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연도형은 본래 길과 블록에 따라 아파트를 짓는다. 길에 붙어 있기 때문에 상가가 생기고 그러면서 가로가 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지어야 할 공공시설을 개발업자에 자부담으로 지우다보니 자연스럽게 건폐율이 낮아지고 그러면서 층수가 높아진다.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보는 성냥갑 아파트가 생기게 됐다는 게 함 총괄건축가의 설명이다.
함 총괄건축가는 "흔히들 용적률 때문에 아파트 높이가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라면서 "우리나라 용적률은 파리 같은 유럽 도시들보다 낮지만 건폐율 때문에 높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같은 단지형 아파트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만 좋고 아파트 주변과 도시에는 좋지 않다"면서 "도심에다가는 이런 단지형 아파트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도심은 특히 더 연도형 아파트로 지어야 하며 비록 단지형보다 조망이나 일조가 안 좋지만 감수해야 한다"며 "구도심의 아파트 높이는 낮추고 가로를 활성화해 도시공간이 단절이 아닌 연결이 되게 하는 것, 이게 광주도시·건축선언과 이행 메뉴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지난해 광주가 가진 역사와 자연을 존중하고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새로운 비전과 광주다움을 회복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광주 도시·건축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함 총괄건축가는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광화문광장 설계공모 운영위원장을 역임하고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등 다수의 저서를 저술했다.
이삼섭기자 seobi@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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