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계엄과 5·18, 전문가가 답하다
②김누리 중앙대 교수
광장 집회 원동력은 '기억'
5·18 헌법 수록, 시대적 과제

12·3 비상계엄은 5·18민주화운동 등 민주주의의 역사적 경험이 시민들의 내면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계기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당시 국회와 광장으로 향했던 시민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기억'이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5·18의 기억이 작동한 것"이라며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국가, 그리고 2024년 12월 시민들이 다시금 지켜낸 민주주의는 결국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 내재된 역사적 기억이 위기의 순간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는 "4·19, 5·18, 6월 항쟁, 촛불혁명, 그리고 12·3까지 이어지는 시민 저항의 계보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라며 "이 같은 연속적 시민 항쟁의 역사 덕분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문에 담긴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에 대해 김 교수는 "그들 또한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역사적 교훈 앞에 스스로를 절제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가 '후기 파시즘'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국가 세력 척결'이라는 언어를 대통령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이에 동조하는 담론이 형성됐다는 사실은 권위주의 문화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동시에 파시즘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모순 속에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해법으로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교육 체계의 줄 세우기, 등수 경쟁, 승자 독식 구조는 학생들에게 '지배와 복종'의 논리를 삶의 질서로 내면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태도의 문제이며, 일상에서 민주적 사고와 태도를 기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헌법은 단순한 법적 문서를 넘어,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과 가치를 담는 상징이며, 5·18은 그 정신적 근간에 놓인 사건이라는 배경에서다.
김 교수는 "학교와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적 감수성을 기르고 확산시키는 공간이 돼야 한다"며 "시민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연대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고 조언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후기 파시즘의 시대, 경쟁 아닌 민주교육 전환해야"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게 '유토피아'라고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이 5·18의 기억 한 자락을 붙들고 나선 광장, 바로 그곳이 유토피아죠."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독일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해 온 그는, 교육·민주주의·자본주의 비판 등 다양한 방면의 평론과 강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김 교수는 12·3 비상계엄 당시, '빛의 혁명'을 끌어낸 광장 집회가 단지 현재의 분노가 아니라, 5·18을 비롯한 역사적 항쟁의 기억이 실천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그는 계엄 사태를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국가 신뢰 자체의 붕괴로 봤다. 특히 광주·전남 청년들이 받은 충격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 의식이나 실망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5·18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부모 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했고, 교육과 일상에서 그 기억을 품고 살아온 세대가 국가를 신뢰하지 않게 된 건 당연한 일"이라고 분석했다.그는 현재 대한민국을 '후기 파시즘'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후기 파시즘은 단기적인 정치 개혁으로는 청산되지 않는다"며 "민주주의는 감수성과 태도, 시민교육을 통해 사회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12·3 비상계엄 이후 광주·전남 청년들은 단순한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 국가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 같은 불신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한국은 민주주의 수준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는 2019년 조사에서 한국을 주요 선진국 가운데 민주주의 1위 국가로 선정한 바 있다.이러한 국가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것은 국제적으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청년 세대가 국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 광주·전남 지역 청년들은 5·18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부모 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했고 교육과 일상에서도 꾸준히 간접적 경험을 해왔다. 그런 세대에게 비상계엄은 단순한 정치 위기의식을 넘어, 국가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반국가 세력 척결'을 언급했다. 청년들은 이 표현이 성별, 정치 성향,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혐오를 확산시켰다고 지적한다.▲'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은 세상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파시즘적 시각에서 비롯된 언어다. 대통령이 이 같은 언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후기 파시즘 사회'임을 보여준다.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제도적 파시즘은 사라졌지만, 권위주의적 태도와 사고방식은 청산되지 않은 채 사회 전반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파시즘 잔재의 청산은 단기적인 정치 개혁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로서가 아니라, 감수성과 태도로서 사회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실현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과정에서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대응이 계엄 해제의 기반이 됐다"고 했다. 이는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도 맞닿아 있다. 연관성을 어떻게 해석하나.▲역사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당장은 드러나지 않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섬광처럼 번뜩이며 현실에 개입한다.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말은 바로 이 점을 묻는 것이다.이번 사태에서 확인된 것은 5·18을 비롯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여전히 시민들의 내면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용기 있는 시민들의 행동은 단지 현재의 결단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기억의 실천이었다.군인들 역시 무자비한 진압 대신 소극적이고 자제력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 또한 하나의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역사적 교훈 앞에 스스로를 절제한 셈이다.-일부 광주 청년들은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대신, 계엄법과 헌법 조항, 판결문 등을 찾아보며 스스로 판단하려 했다.▲만약 그런 청년들이 많았다면 매우 희망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헌법과 법률, 과거의 사례를 분석하며 판단하려는 태도는 기존의 수동적 정치 문화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단순히 뉴스를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사안을 해석하려는 자세는 민주주의의 내면화된 성장을 의미한다.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탄핵 국면에서 2030세대의 광장 참여는 성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어, 탄핵 찬성 집회에는 2030 여성 비율이 높았고, 반대 집회에는 2030 남성이 많았다는 데이터도 있다.▲현장에서 체감한 바로는, 탄핵 집회 참가자의 절반가량이 20~30대 여성들이었다. 반면 같은 연령대의 남성은 현저히 적었다.이 같은 성별 분포는 단순한 정치 성향의 차이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이념적 차이의 일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는 '젠더 이데올로기 격차'라는 개념으로 이 현상을 분석한 바 있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여성은 점점 더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보수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이런 추세는 한국에서 특히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젠더 이념 격차는 약 20%, 독일은 30%, 미국은 40% 수준이지만, 한국은 50%를 넘는다.그 배경에 사회 구조적 '갈라치기'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권이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청년과 장년 사이의 갈등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켜 온 것이다.-광주·전남 청년들은 5·18 정신을 헌법에 공식화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헌법 전문 수록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당연히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국제사회로부터 높이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가 4·19, 5·18, 6월항쟁, 촛불혁명, 그리고 최근 빛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시민 혁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이 가운데에서도 5·18은 그 연속 혁명의 결정적인 고리이자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국가 폭력에 맞선 시민의 저항과 희생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헌법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완전히 맞닿아 있다.헌법은 단지 법적 문서가 아니라,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는 상징이다. 따라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것은 역사적 정의이자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국제사회가 한국 민주주의에 부여한 신뢰에도 부응하는 결정이 될 것이다.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제도적으로 정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시대적 요구다. 차기 정부가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헌법에 5·18을 담는 일은 이제 유보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후기 파시즘, 정치 혐오, 지역주의 구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교육적·사회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보나.▲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시민 교육이다. 현재 학교는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 우열, 지배를 당연시하는 구조 속에서 파시스트적 세계관을 체화시키고 있다. 등수와 석차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교육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어른이 돼 만들어내는 정치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독일은 1970년대 교육 개혁 당시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아도르노의 사상을 기반으로 경쟁을 배제하는 학교를 만들었다. 이처럼 한국도 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선동을 판별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와 정치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민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연대하며 책임지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 최초로 광주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6·3 대선에서도 광주 청년층의 선택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보나.▲광주는 한국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도시다. 그러나 정작 그 민주주의의 실질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지금 전라도와 경상도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적 경쟁이 실종된 1당 독점 체제가 고착돼 있다. 투표는 존재하지만, 선택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봉쇄돼 있다.이러한 상황은 광주 청년들에게도 심각한 정치적 무력감을 안긴다. 설사 특정 정당이 표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정책에 대한 신뢰나 비전 때문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문제다.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광주 유권자 스스로 1당 독점 체제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기득권 양당 구도 자체를 깨려는 시도가 없다면 쿠데타를 자행한 정당이 다시 제1야당이 되는 현실은 반복될 것이다. 지역주의를 깨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바로 광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 "5·18과 12·3, 국가훼손 맞서 시민들이 국가 지킨 것"
- · "5·18이 없었다면, 12.3 비상계엄 때 무슨일이..."
- · 엇갈린 정치 지형, 젠더·세대 갈등이 만든 '감정 정치'
- · 2030 세대의 갈라진 표심, 정치는 왜 갈등만 키웠나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