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12·3, 국가훼손 맞서 시민들이 국가 지킨 것"

입력 2025.05.29. 17:53 강주비 기자
■ 두 번의 계엄 마주한 광주 청년, 민주주의를 묻다
▶2부. 계엄과 5·18, 전문가가 답하다
① 박구용 전남대 교수
영남패권주의가 젠더 갈등으로 둔갑
학교 관계 형성 훈련 부재…분열 심화
"5·18 정신 수록·권련 분산으로 새 헌정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되고 있다. .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군인이 어떻게 우리를 죽여? 저게 군인인가'하고 생각한 거지, 국가를 불신한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국가를 지킨 거였다. 2024년 12월 3일도 헌정질서, 즉 국가를 지킨 거다. 5·18과 12·3 모두, 권력자가 국가를 훼손하는 것에 시민들이 맞서 저항한 것이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5·18과 12·3은 위정(委政)자가 국가 권력을 이용, 국민을 억압하고 국가를 파괴하려던 것에 시민들이 맞서 싸우며 국가를 지키려고 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비상계엄이란 불의에 맞서 온 국민 연대란 거다. 올해 5·18 45주년은 각별하다. 진정한 민주주의 회복의 시험대가 됐다. 80년 5월과 달리 권력 찬탈이 아닌,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6·3 대선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 회복이다. 그 중심엔 5·18 민주화운동이 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한 이유다. 박 교수는 "헌법이란 국가가 어떤 가치를 기억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서"라며 "이미 열사들의 희생을 인정하고 추모하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그 것을 헌법에 담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립묘지는 헌법 전문의 실체화"라면서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돼 있지만, 정작 헌법에는 5·18이 명시 돼 있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1980∼2000년대 지역 감정과 현재의 젠더·세대 갈등의 본질은 영남 패권주의라고 했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시대 변화에 따라 만들어 낸 프레임이란 거다. 박 교수는 전주고·전남대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인문도시연구원 시민자유대학 이사장과 5·18 기념재단 기획위원장 등을 거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12·3 비상계엄 이후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이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줬다. 어떻게 해석하나.

▲한강 작가가 말한 문장에는 분명한 전후 맥락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예민하고 저항적인 문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자연스럽게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적으로 성장해 가며 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5·18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희생된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지금의 내가 과거의 선조들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과거에 자신이 써 두었던 문장을 다시 읽던 중 깨닫게 된다. '질문이 잘못되었구나. 내가 그들을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나를 구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과거를 돕는다는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과거가 현재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멋진 인용구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전후 맥락 없이 받아들인다면 본래 의미는 왜곡될 수 있다. 필요할 때만 5·18을 끌어다 쓰는 태도는 실용주의적 역사관의 전형이다. 과거에서 쓸 만한 것만 선택적으로 끌어오는 식인데, 5·18에는 결코 적용돼서는 안 된다.

지난 27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연구실에서 박구용 전남대학교 교수가 무등일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12·3 비상계엄은 광주·전남 청년들에게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다가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나라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회의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들의 국가 불신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나.

▲'국가 불신'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가라는 체계가 언제든지 권력자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문제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계는 특정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을 만큼 허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바로 '훼손된 국가에 맞서 헌정질서를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태도'다. 내란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바로 시민이었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빛의 혁명'을 이끌었고, 권력자가 국가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가장 앞에서 맞섰다. 그러므로 국민이 국가를 불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봐야 한다.

- 광주 청년들은 12·3 비상계엄 때 언론이나 정치권의 해석을 따르기보다, 계엄법·헌법 조항·과거 탄핵 사례를 직접 찾아보며 스스로 판단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지금의 청년들은 기성 언론이 형성한 담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다. 기성 언론은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은 척' 하며 의견을 교묘히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년들은 오히려 해석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안 미디어를 찾게 된다.

또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질문을 만들고, 커뮤니티 내에서 상호 토론을 통해 해석을 구축해 나간다. 주도적인 몇몇 친구들이 중심이 돼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스스로 공부하며 담론을 주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담론의 수준이 반드시 높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자기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단지 미디어 환경의 전환이라기보다, 담론 주도권의 이동이다. 이제 메이저 언론은 1차 정보만 제공할 뿐이고, 그것을 숙성하고 해석하는 것은 각 계층과 커뮤니티의 몫이다.

-청년들은 정치권과 언론이 젠더 갈등을 '갈라치기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는 흔히 지역감정이라는 말을 써왔지만, 사실 그건 현실이 아니라 정치적 조작의 산물이었다. 영남 패권주의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프레임이었다.

지금의 젠더 갈등도 마찬가지다. 본질은 남녀 간의 갈등이 아니다. 권위주의적 성향의 정치 세력들이 영남패권주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자,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갈등 축으로 '젠더'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청년들은 왜곡된 갈등 구조 안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정치권은 책임 있는 대화와 조정이 아니라,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매우 위험한 정치다. 젠더나 세대를 도구화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이런 방식은 결국 사회 전체를 더 깊은 분열로 몰고 간다.

이제는 우리가 이 갈등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청년들이 느끼는 젠더 갈등은 실제로는 '또 다른 영남패권주의'일 뿐이며, 그 기저에는 여전히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낡은 정치의 그림자가 있다.

-탄핵 국면에서 2030세대는 광장의 주체로 다시 떠올랐지만, 동시에 성별·정치 성향에 따라 찬반이 뚜렷이 나뉘는 양상도 보였다. 예를 들어, 탄핵 찬성 집회에는 2030 여성 비율이 높았고, 반대 집회에는 2030 남성이 많았다는 데이터가 있다.

▲4050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진보냐, 보수냐'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2030세대의 정치적 태도를 이해하려면 권위주의에 중점을 둬야 한다.

한쪽에는 힘과 권위를 중시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차이를 인정하고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적 자유주의 성향이 존재한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나 참여 양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는 성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의 구도는 어느 시대든 존재해 왔다. 문제는 권위주의의 일부는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과 결합하게 되는데, 이는 극우화가 아니라 신권위주의의 대두로 해석해야 한다.

이는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다. 예컨대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극우 세력에 장악 당하면서 전통적 보수층의 목소리가 실종되고 있다. 한국의 우파 역시 정체성 공백기에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자도, 공화주의자도, 시장 중심주의자도 없다. 오직 힘과 권위를 지향하는 성향만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고, 여기에 2030세대 일부가 결합한 것이다.

- 이 같은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특히 청년 남성 중에는 어릴 적부터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담론에서 소외된 경험을 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발언권 상실에서 오는 상실감, 외로움, 불안을 경험하며, 자신들의 목소리가 사회에서 무시되고 있다고 느낀다. 커뮤니티를 통해 그 상실감을 보상받고, 점차 정치화되는 과정에서 극우적 감수성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는 곧 정치적 폭민화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특정 정치 세력이 이 감정을 조직화하면, 폭력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탄핵 과정에서 나타났던 서울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그 사례다.

핵심은 담론 자원의 불평등 구조다. 발언권이 한쪽으로 몰리고, 소통의 기회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된 경험이 억울함으로 누적되면, 그 것이 곧 정치적 분노로 연결된다.

지난 27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연구실에서 박구용 전남대학교 교수가 무등일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이를 완화하기 위한 교육적·사회적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오늘날의 중·고등학교는 실질적으로는 학생 간 교류가 거의 없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그 안에서 협상하거나 조율하는 관계 훈련이 이뤄지지 않는다.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을 하나의 기준에 따라 경쟁시키고,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를 강요한다.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구조가 청년들의 민주주의 역량을 갉아먹고 있다.

코로나19는 이 단절을 더욱 심화시켰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3년을 격리된 환경에서 지낸 세대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으며,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결국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지 못한 채,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해결을 위해선 교육의 본질이 바뀌어야 한다. 공부만이 아니라 만남과 관계 형성을 가르쳐야 한다. 민주주의란 곧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훈련이다. 지금처럼 경쟁만을 유도하고 대화와 교섭의 기회를 박탈한 채, 관계성을 키우지 않는 학교 구조에서는 이런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다만, 냉정히 말해 이 단절을 경험한 세대는 죽을 때까지 그 흔적을 안고 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학교와 사회는 청년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민주적 공간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광주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보수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번 대선에서 광주의 선택을 어떻게 전망하나.

▲광주의 민심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이번 대선에서 다시 10%를 넘기는 일은 없을 거라 본다.

지난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10% 이상의 득표를 했던 것은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정치적 관용과 가능성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기회를 배신했다. 마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거 전라도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뒤, 영남패권주의에 기대 호남을 배제한 것과 같은 이치다. 광주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관용은 가능하지만, 반복된 배신을 용납하지는 않는다. 광주는 늘 민주주의의 상식선 안에서 움직여 왔고, 이번에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광주·전남 청년들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는 일은 꼭 포함돼야 한다. 국립묘지는 헌법 전문의 '실체화'다. 그런데 수많은 민주화운동 희생자가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 전문에는 5·18이 없다. 이 불일치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헌법 개정의 방향은 단순히 5·18을 넣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헌정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 중심의 권리 개념을 넘어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권리를 고민해야 하며, 전통적 가족 개념을 뛰어넘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도 헌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분산이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는 방식의 하나로, 지방을 '자치단체'가 아닌 '준정부'로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5·18 정신을 명시하는 것과 함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대담=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정리=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