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긴급진단]썩은 갯골, 사라진 수확···모래화 갯벌에 선 어민들

입력 2025.09.11. 07:39 최류빈 기자
서남해 갯벌이 사라진다<중> 사질화 현장
사질화된 완도군 금당도, 공사와 새마을운동 영향 자갈 투성이
섬에서 나고 자란 어민들 “과거 수확량 비해 70%~80% 줄어
전남 어촌계 2천67곳…어가 및 어가인구 전국 38%로 최다
이날 갯벌에서는 썩어버린 갯골이 5~6 구간 발견됐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퇴적된 자갈과 모래가 기존 갯벌의 배수 흐름을 바꾸면서 일어난 변화다.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전남 서남해안 갯벌에서 진흙에서 모래로 변하는 사질화(沙質化)가 확산하면서, 해안 습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지역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갯벌 생태계가 급변하면서다. 대규모 공사 때 해류와 갯벌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피해가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도를 찾았다. 모래로 변해가는 갯벌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장흥군 노력항에서 남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으로 향했다. 장흥∼고흥 사이에 위치한 금당도는 피문어·톳과 같은 풍부한 수산자원으로 이름 높았다.

완도군 금당도에서 나고 자란 김영관(69) 갯벌섬정보화마을 대표가 모래화가 진행 중인 '펼일도-금당도(가학항 인근) 갯벌'을 바라보고 있다. 이 갯벌은 하단부에 진흙이 일부 깔려 있고, 해류에 휩쓸린 모래와 자갈이 상단부를 뒤덮고 있었다. 새마을운동이 진행된 1970년대 이전에는 해수탱크 뒤편이 모두 고운 모래가 있었지만, 흙을 퍼내고 인근 공사를 진행하면서 갯벌에는 자갈만이 남았다.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하지만 '평일-금당도(가학항 인근) 갯벌'의 척박한 현실이 드러나는 등 일대 갯벌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자갈이 밀집한 장소마다 진흙 썩은내가 풍겼고, 낙지·키조개·꼬막이 가득하던 벌판과 갯골에는 고둥과 바지락 껍데기가 흩어져 있었다.

어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금당도에서 평생 살아온 김영관(69) 갯벌섬정보화마을 대표는 "예전에는 청정해역에서 자라던 잘피(바다에 서식하는 속씨식물)가 도처에 살던, 말 그대로 갯벌 자원의 천국이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갯벌 자원이 예전의 20~30% 수준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가 갯벌 바닥을 파헤치자 썩은 해수와 빈 조개껍질, 댕가리(고둥)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양수산부 조사에 따르면 과거(2015)에는 해당 갯벌 정점에 갯지렁이, 새우, 게, 바지락 등이 살았지만 현재는 생태계가 피폐해진 상황이다.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이어 "과거 갯벌은 해수탱크 뒤쪽에 부드러운 모래, 앞쪽에 진흙이 깔려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회상했다.

그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섬 내 인프라 건설과 도로 포장, 담 쌓기 등에 갯벌에 있던 모래를 무분별하게 끌어다썼던 것이 지금의 사질화를 유발한것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여 년 전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마을에서 어패류를 방류했지만 정착하지 못했다"며 "자갈 위에 생물을 풀어 죽게 했으니 헛발질만 한 셈"이라고 털어놨다.

최근 진행된 사질화는 생계에도 영향을 준다. 그는 마을에서 '갯벌 체험'도 운영하지만 사질화가 진행된 뒤부터 모객이 쉽지 않다고 한다. 자갈밭이 넓게 깔려 배를 타고 찾아온 체험객들에게 '이곳이 갯벌'이라 소개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댕가리(고둥)가 갯벌 위에 설치된 해수 탱크 위에 붙어 있는 모습. 국립생태원 '남해안 등 하구습지에서 멸종위기종 기수갈고둥' 조사를 준용하면, 고둥류는 주로 부착조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자갈류가 많은 갯벌에서 발견된다.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김 대표는 "금당도 갯벌은 더 이상 생태계의 보고가 아니라 자갈밭에 불과하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엔 한달에 한번씩 갯벌 체험을 했지만, 이제는 1년에 서너번도 열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은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 갯벌생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곳 갯벌에는 갯지렁이류(실타래·버들·얼굴)를 비롯해 옆새우류, 방게·무늬발게, 갈색새알조개 등 다양한 생물이 살았다. 그러나 2021년에는 댕가리(고둥), 풀게, 띠조개 등이 새로 나타났고 최근에는 '고둥밭'으로 바뀐 상태다.

해수부 해양환경정보지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5년 가학항 인근 갯벌의 퇴적환경 입도는 자갈(25.10%), 모래(55.10%), 실트(11.10%), 점토(8.70%)였고 수분함량도 25.90%에 달할 만큼 촉촉한 갯벌이었다. 반면 2021년에는 자갈 비율이 39.10%로 크게 늘었으며 수분함량은 21.91%까지 줄면서 한층 척박해졌다. 실트(7.0%), 점토(8.5%) 함량 역시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모래갯벌과 진흙갯벌이 10~30여 년을 주기로 순환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순환 영역과 소요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데다, 이 과정에서 생물종이 사멸하거나 어획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에겐 기다릴 여력이 없다.

이날 금당도 가학선착장까지 1.5km가량 이동하며 살펴본 주변 해안도 상황은 비슷했다.

유리창 너머로 신상리 방면, 우산도, 돌의도 등이 보인다. 이날 해안선을 따라 가며 돌의도와 신상리를 연결하는 관덕 방조제 근처 '소회도'도 눈에 들어왔다. 이 섬은 방조제가 생긴 뒤 육계사주(육지 근처에 모래와 자갈이 쌓인 지대)가 되는 등 공사로 인한 사질화 영향을 직격으로 맞았다.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김 대표는 관덕 방조제와 신상리 방면, 우산도와 연결된 돌의도를 가리키며 "20여 년 전 방파제를 만들면서 소회도 인근 해류만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여파가 금당도까지 이어졌다"며 "해상 개발이나 시공을 할 때는 영향 범위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어민들의 삶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돌의도와 신상리를 잇는 관덕 방조제(정남진 방조제) 인근 소회도라는 섬 또한 눈에 들어왔다. 방조제가 들어선 뒤 이 일대에는 자갈과 모래가 쌓이며 육계사주(육지와 가까운 섬이 모래·자갈 퇴적물로 연결된 지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환경영향 평가를 주문했다. 이창일 해양환경생물연구소장은 "자연의 회복 능력을 넘어서는 난개발은 어민들에게 즉각적인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서남해안 사질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생물종이 사멸해가는 지역을 발굴·조사하고, 면밀한 환경영향평가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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