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볶의 철학은 '좋은 커피'라는
단 하나의 정직함이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위해 노력했고
눈앞의 이익보다
신뢰와 가치를 우선했다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켜야 한다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와
철학이 전달될 때
고객은 단순 소비자가 아닌
팬으로 남는다

[주필이 만난 사람]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카페 '커피볶는 집(커볶)'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매장이 아니라 광주를 대표하는 로컬브랜드 중 하나다. 광주서만 느낄 수 있는 맛과 분위기, 특별함을 자랑한다. 대기업 프렌차이즈 파고와 극심한 불황을 뚜벅뚜벅 헤쳐 나온 무등산 자락의 커볶은 한 잔의 커피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담아내는 상징적인 브랜드나 다름없다. 이정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커피볶는 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곳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광주라는 도시가 가진 이야기와 정체성을 커피라는 매개로 담아내는 플랫폼이라 생각한다. 커피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 안에서 지역의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업할 때만 해도 맛있고 좋은 커피를 사람들과 함께 마시고 싶다는 바람이 전부였지만, 사람들 발길이 드문 이곳 무등산 자락에 둥지를 틀때는 저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본질에 더욱 충실했다.
-'커볶'이란 브랜드 가치는 무엇이고, 고수한 원칙이 있다면.
▲커볶이 처음부터 지켜온 철학은 '좋은 커피'라는 단 하나의 정직함이다. 이익을 위해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생두를 선택하는 과정부터 로스팅, 추출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관리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고, 눈앞의 이익보다 신뢰와 가치를 우선시했다. 규모를 키우기보다 커피 맛의 완성도를 높이고, 고객에게 가장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커피 시장까지 대기업이 파고든 현실에서 지역 토종 브랜드가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본의 위력을 당할 수가 없다. 저희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과 서비스, 커피 맛까지 세심하게 관리했다. 또 지역에 뿌리내린 브랜드로서 광주에서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렇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차별화는 생두를 직접 들여와 로스팅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데 있지 않나 싶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원두를 공급하지만 저희는 생두 선택부터 로스팅까지 직접 관리해 최상의 맛을 유지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차이가 아니라 브랜드의 본질적인 힘이다. 또 광주라는 지역의 스토리와 문화를 커피에 담아내며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과 이야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차별화가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그 자체가 경쟁력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커피는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전성시대처럼 보인다. 커볶의 전략은.
▲카페를 시작하던 2000년대만 해도 프랜츠이즈가 유행하던 때다. 저희도 입소문이 나면서 요청이 많아 시작하게 됐다. 매장 수보다는 매장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이고, 대기업이 흉내 낼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대응하며 브랜드를 알렸다. 지역에 30개가 넘는 가맹점이 생기고 요청은 넘쳐났다. 그러나 대기업의 공세로 가맹점주 부담과 본사 관리 한계를 느끼게 됐다. 과감히 확장을 중단하고 직영 매장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와함께 제조, 온라인 시장으로 판로를 모색해 나갔다.

-커볶은 불황을 타지 않는 것 같다. 성장 비결이 따로 있나.
▲두터운 단골 고객층 덕분이다. 불황일수록 소비자들은 가격보다 신뢰와 품질을 우선시한다. 우리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품질과 일관된 경험으로 고객의 신뢰를 쌓아왔다. 이 신뢰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되었다. 커피 맛의 본질은 생두에서 시작된다. 타협하지 않는 품질 관리가 브랜드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는다. 또 오프라인 매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찍부터 온라인 사업을 병행하며 매출 구조를 다각화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이 불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 비결이 됐다..
-위기는 없었는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결정적 계기나 전략이 궁금하다.
▲가장 큰 위기는 코로나19였다. 매출이 급감하고, 기존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기회가 됐다. 이전부터 조금씩 준비해온 온라인 판매가 코로나로 활성화되며 돌파구가 됐다. 제조와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 체질을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때 내린 결정이 이후 성장을 견인했다. 위기는 힘들었지만,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다.
-온라인 비즈니스의 영향과 이후 핵심 전략을 간략히 말한다면.
▲온라인은 지역 한계를 넘어 전국 고객을 만나는 새로운 시장이다. 초기에는 시험삼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성장동력이 됐다. 오프라인 매장과 제조, 온라인 판매가 서로 연결되며 브랜드 기반을 넓혔다. 지금의 핵심 전략은 품질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마케팅과 고객 맞춤형 제품이다.
-커볶이 광주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커볶은 광주만의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는 브랜드다. 광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과 공간을 제공해 지역민에게는 자부심을, 외지인에게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고 싶다. 광주라는 도시를 알리는 문화적 창구로서 '그곳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커피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고 자부한다.
-로컬 브랜드가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째는 차별화된 색깔이다. 대기업이 규모, 자본으로 승부하는 현실에서 로컬은 자신만의 독창성이 결국 생명이다. 둘째는 지역의 스토리다.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와 철학이 고객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될 때, 고객은 단순 소비자가 아닌 팬으로 남는다.
-'좋은 커피'에 대한 정의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기준이 궁금하다.
▲좋은 커피는 사람을 위로하고 기분을 전환시켜준다. 이를 위해 생두의 질, 로스팅의 정확성, 추출의 세심함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단순히 맛이 좋은 것을 넘어, 마시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 진짜 좋은 커피다. 저희가 공간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커볶의 중요한 경영 철학, 직원과 파트너, 고객을 대하는 리더십의 원칙은.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와 존중'이다. 직원에게는 성장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파트너에게는 공정하고 투명한 관계를, 고객에게는 정직한 제품을 약속한다. 사람을 중심에 둔 경영만이 브랜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커볶 성공의 비결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작할 때 자본도 경험도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좋은 분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셨고, 또 커피 트랜드와 운때가 맞았던 것 같다. 함께 성장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 경제적·심리적으로 힘든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도움이 컸고, 좌절하기보다는 작은 가능성 하나라도 찾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안 되는 이유를 찾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될 수 있는 길을 끝까지 찾다 보니 어느 순간 길이 열렸다. 결국 성공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이 준 기회와 도움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원래 꿈이 창업이었나. 커피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바람 쐬러 간 서울에서 우연히 맛본 자가 로스팅 커피가 인생을 바꿨다. '광주에도 이런 커피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 몰래 본격적으로 커피 공부를 해 창업까지 하게 됐다.
-지역에서 창업할 때 고려해야 할 현실적 과제는 무엇인가.
▲제한된 시장 규모와 인력 부족, 대기업과의 불균형 경쟁이 가장 큰 과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만의 독창적인 스토리와 차별화된 전략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행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늘 되새기며 흔들리지 않는 것이 진짜 성장의 길이다.
-청년 창업자의 성장을 위해 지역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청년 창업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면 좋겠다.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교육, 멘토링, 네트워크 등 실질적인 성장 기반이 매우 중요하다.

■이정민 대표는
2006년 전남대 상대 뒤쪽 후미진 골목에 서너 평짜리 카페 '커피볶는집'을 열며 본격적으로 커피 산업에 뛰어들었다.
공무원을 꿈꾸던 청년 이정민은 우연히 서울에서 자가 로스팅 커피를 맛보고 매료돼, 학원비를 커피에 쏟아부었다.
'맛있는 커피를 광주서도 즐기자'는 단순 명료한 목표로, 열정 하나로 시작했다. 자본과 경험 모두 부족했지만 커피 맛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생두를 직접 수입해 자가 로스팅을 도입하며 품질을 지켜왔다. 이같은 근본에 충실한 대가로 대기업 공세에 살아남은 유일한 광주 토종 브랜드로,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는 커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얻은 주변의 도움을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갚아가고 있다.
무등산 자락에 카페를 오픈하며 문화와 예술, 지역 대표성이라는 공익적 목표를 가다듬었다. 당시 이 대표가 추진한 카페 전시는 광주 사회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대표는 지역사회와 상생에 진심이다. 청년 창업가 멘토링과 커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지역 축제와 문화 행사에 꾸준히 참여해 커피를 매개로 한 지역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서 기부 활동을 이어가며,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광주전남지회 운영위원, 광주광역시청 분과위원, 광주여자청년회의소 회장,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법무보호위원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하고 있다.
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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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들이 일군 ‘대동문화’, 지역 유산으로 계승”
조상열 광주대동문화재단 대표 조상열 대표는 지역의 유일한 민간 문화잡지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잡지 대표이자, 지역 전통문화지킴이, 인문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주필이 만난 사람]한류가 세계의 언어가 됐다. 그 성취는 기술이나 속도, 유행이 아니라 축적, 전통의 유니크함에서 비롯된다. ‘대동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현장에서 길어 올려, 잡지와 답사, 강연으로 이어온 시민 문화의 실험장이었다. 1990년대 답사 자료집에서 출발해, 지역 문화잡지의 명맥을 30년 가까이 이어온 이 기록은 행정이나 자본이 아닌 시민 메세나의 힘으로 일궈졌다. 메세나 그룹 대동문화재단 운영이사회, 이름 없는 전국 후원자들의 연대는 문화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이끌고 있는 조상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대세다. 저력이 무엇이라고 보는지.▲한류의 저력은 새로움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방식과 정서에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AI가 일상을 지배해도 문화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기억, 공동체의 경험, 전통이 힘을 만든다.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온 전통과 생활문화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결과다.-서양, 일본 등을 쫒던 국민들이 마침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 같다. 각별하실 것 같다.▲우리 사회는 서구와 일본을 기준으로 살아온 점이 있다. 전통은 낡았다는 반응이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감회가 크다. 다만 자부심이 일시적 유행으로 소비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좋아한다’를 넘어서 왜 소중한지 이해하고 지켜내려는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대동문화’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역의 중요 거점이다. ‘대동문화’를 설명해달라.▲‘대동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현장에서 발굴하고, 이를 잡지와 답사, 강연으로 풀어내는 문화공동체라 할 수 있다.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자랑이다. 광주를 거점으로 전국과 세계를 향하고, 전통을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자산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민간에서 문화잡지를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작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90년대 중반, 한문학원 강사들과 함께 전라도 역사탐방을 하며 운영한 답사 자료집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001년에 지역의 유일한 문화잡지로, 금호 그룹이 운영하던 ‘금호문화’가 22년 만에 폐간되고 언론사가 운영하던 ‘예향’까지 중단되자 지역 원로 언론인과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금호문화’ 폐간 이듬해에 대동문화가 문화잡지 형태로 본격 출범했다.-역사 탐방에서 시작됐다는 게 이채롭다.▲당시 한문학원이 번성하던 시절인데 강사들의 역량 강화가 절실했다. 한문은 글자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고전의 정신을 삶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제자·후배들이 각 지역에 학원을 차리면서 역량강화로 매달 공부를 하던 중 책상머리를 벗어나 ‘현장’을 찾아 나서게 됐다. 그렇게 소쇄원·낙안읍성 등으로 답사를 다니며 답사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 지역사회의 관심을 끈 것이다.조상열 대동문화회장이 26일 광 조상열 대표는 지역의 유일한 민간 문화잡지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잡지 대표이자, 지역 전통문화지킴이, 인문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민간에서 문화잡지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많은 분들이 도움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경영의 숨통을 틔워준 건 현대그룹 연수 사업이었다. 대통문화 역사탐방이 소문이 났던지 현대그룹 본사에서 ‘전라도 답사 연수’를 요청했다.2001년 첫 회의 참여자들 만족도가 최고점을 기록하며 그룹의 성공사례가 돼 전 계열사로 확산됐다. 14년을 성공적으로 내달렸는데 세월호 참사로 잠정 중단하면서 끝이 나벼렸다. 그 기간 현대그룹 광고까지 더해지면서 발간 체계를 안정시키는 결정적 기반이 됐다. 이후 현대는 물론 여타 기업의 인문강의 요청이 이어지며 대동문화가 전국으로 뻗어나갔다.-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그렇다. 광주의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와 시민들의 참여와 도움, 지원이 생명이다. 어느 날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님이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셔서 “이 귀한 걸 시민들이 하느냐, 내가 100만 원씩 내는 사람 50명을 만들겠다”고 제안하시고 실재로 55명의 운영이사회를 이끄셔서 2007년 3월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운영이사회가 출범했다. 이 후원을 기점으로 계간지였던 ‘대동문화’가 격월 체제로 끌어올려졌고, 대동문화의 핵심 자원이 됐다. 지금은 약 250명 규모로 확장됐다. 이밖에도 전 광주라마다 김대원 회장께서 수년 동안 사무실을 무상지원하는 등 많은 지역사회의 도움이 이어져 왔다. 시민후원과 출판사업, 광고 등이 주 수입원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전국 유일의 시민 메세나로 만들어지는 문화잡지로 기록돼야 할 것 같다. 시민들과 접촉면 확장이 중요해 보인다.▲대동문화는 말 그대로 시민 후원으로 운영된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중장년 이상 세대로 전승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젊은 세대 유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대학생 문화유산지킴이 장학생 제도를 도입했다. 참여대학생 중심으로 미래인재·청년부 준비모임’이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 장학금 역시 시민후원으로 전개된다.-‘대동 전통문화 대상’은 많은 상금 액수로 민간단위 수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대동문화가 소개하던 한옥 장인 등 ‘한 우물’ 파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이들을 직접 격려하는 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2019년에 제가 1천만 원을 내겠다고 하자 당시 3대 김기수 이사장께서도 기꺼이 1천만원을 후원해주는 등 많은 분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관(시·문체부) 지원은 시류에 따라 중단될 수 있어, 뜻있는 사람들이 기부로 모금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해 모금이 약 6천만 원, 상금은 총 2천500만 원 규모로 시작했다. 지금은 상금이 3천만원이다. 한번 시상식마다 약 7천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모든 것을 지역사회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대동문화재단이 하는 일들을 설명해달라.▲재단은 잡지 발간을 넘어 ‘현장 기반 문화사업’을 여러 축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문화재 돌봄센터(국가유산청·문화재청 및 광주시 위탁)와, 충장202센터·사직골문화센터·효천문화센터 등 지자체 위탁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위탁사업은 100%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그밖에 문화재청의 문화재지킴이 사업, 문체부 인문스토리 사업 등 보조사업 들을 수행해오고 있다.-회장님 개인사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앞서 오지호 선생님과 인연을 말씀하셨는데.▲오지호 선생은 내 삶의 방향을 정해준 정신적 스승이다. 학문 이전에 문화와 민족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인식, 그리고 지식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분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한문학원 운영도 이채롭다.▲오지호 선생님께서 운영하던 한문학원 문하생으로 인생을 출발했다. 이후 성장해서 독립학원을 운영한 것이다. 한문학원은 글자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이 경험이 이후 답사와 해설, 문화 활동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앞으로 꼭 남기고 싶은 일이 있다면▲특정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지역에서 문화가 스스로 숨 쉬는 구조를 남기고 싶다. 누군가의 이름보다 시민의 기억 속에 남는 문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마지막 과제다.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 · "지워진 존재를 다시 세우는 일··· 장애 예술, 존엄을 피워내다"
- · "연설보다 예술이, 구호보다 행위가 역사를 잇는다"
- · "기후 위기에 자연 회복력이 더욱 중요···'삼인동 숲'이 산 증인"
- · 존엄과 관계 속에 삶의 질을 유지하는 '거룩한 노화'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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