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라는 인류 과제 앞에
과학자는 데이터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할 준비 돼야
세포수준에서 노화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죽음에 저항하며 생명을
유지하려는 적극적 생존 전략

장수의 본질은 존엄과 관계 속에서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있다
데이터로는 포착되지 않는
일상 생활과 정서 회복이야말로
건강수명을 지탱하는 힘이다
전남은 전국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초고령 지역으로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이 가장 많다. 광주도 청년들이 떠나며 인구가 감소하며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사회 장수는 몇몇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장수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저주가 될 위험이 크다. '늙어감'의 개인적 사회적 의미와 대응에 대해 세계적 노화 연구의 대가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를 만나 그 해답의 실마리를 들어본다.
-"노화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교수님의 명제는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 관점으로 보인다.
▲노화는 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병은 기능이 상실된 것이지만, 노화는 일부 기능을 포기하고 생존을 택하는 과정이다. 이는 노화를 단순 억제·치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생물학적·사회적·철학적으로 이해할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늙음을 부정하는 대신 존엄과 의미를 찾아야 하고, 정책·문화·의학 모두 노화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설계해 가야 한다.
-노화를 '정복의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하셨다가 '거룩한 과정'임을 밝혀내셨다.
▲초기에 노화를 질병처럼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포 연구 과정에서 늙은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소멸에 강하게 저항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젊은 세포는 증식과 죽음이 활발하지만, 늙은 세포는 증식을 포기하고 생존을 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명체의 전략이었다.
이 발견은 노화를 단순한 쇠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거룩한 과정'으로 인식하게 했다. 이후 노화 연구의 초점이 병리학적 제거에서 생물학적·철학적 이해로 확장됐다. 늙음을 존엄의 선택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연구 역시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포함하게 됐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장수에 대한 우려도 높다.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거룩한 노화(Holy Aging)'가 절실하다.
▲'거룩한 노화'는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존엄과 의미로 채우는 것이다.
노인을 사회의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하고,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지만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이다.
노인 빈곤 완화, 장기요양·건강관리 체계 확립, 지역 공동체 복원, 세대 간 연대 강화 등이 시급하다. 소득 보장과 의료 접근성 개선이 긴급하다. 주거·돌봄·평생교육을 통합한 정책 패키지도 필요하다. 이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초고령사회를 맞는 대한민국에 사회적·정책적 과제가 중요한 것 같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할 듯 싶다.
▲장수노인들을 연구한 결과 우선, 균형 잡힌 식단과 신선한 식재료 섭취가 기본이다. 다음으로, 신체 활동을 일상화해 근육과 체력을 유지하고 세 번째는,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고 세대 간 소통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 번째로 독서·학습·예술 활동을 통해 정신적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 다섯째는 과도한 욕심을 줄이고, 몸과 마음의 한계를 존중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한 건강 유지 차원을 넘어, 노년기를 풍요롭고 존엄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연구를 시작하신 90년대 초는 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다,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위암을 연구하다 '늙은 세포가 더 죽지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항암제가 정상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던 중, '증식은 멈추지만 주변에 해를 끼치지 않는 노화 세포' 특성에 주목했다.
젊은 세포는 외부에 민감하게 반응해 쉽게 죽는 반면, 늙은 세포는 오히려 자극에 강한 저항성을 보이며 잘 죽지 않았다. 암세포를 인위적으로 노화시켜 사멸시킬 수만 있다면… 이상적인 암 치료법이 될 것이라는 가설이다. 세포 노화의 근본적인 원리, 노화 자체의 메커니즘 규명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노화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포 수준에서는 오히려 죽음에 저항하며 생명을 유지하려는 적극적인 생존 전략의 결과다.
-100세 연구를 시작하신 특별한 배경이 있으신지.
▲본격적인 세포 노화 연구를 위해 최고령자를 찾아 나섰다가 첫 현장 조사에서 벽에 부딪혔다. 주민등록상 100세였던 할머니가 첫 번째 부인의 호적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연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노화가 단순히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이 담긴 사회·문화적 산물이라는 인식이 필요했다. 이에 사회학· 인류학·가족학·지리학 등 다양한 교수진으로 연구팀을 꾸렸다. 본격적인 '100세 연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통섭적 연구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종단연구로 이어가셨는데 보기 드문 사례다.
▲다학제적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백세인을 대상으로 한 종단연구도 우리 팀이 최초였다. 의학사회학·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 교수들이 팀을 이뤄 장수인의 건강과 생활사, 사회관계망 등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또 장기간 추적하며 변화를 기록해 갔다.
이를 통해 장수가 단일 요인이 아니라 유전·환경·생활 습관·사회적 연결망의 복합 작용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한국인의 장수 요인을 학문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사례일 뿐 아니라, 노화에 대한 학제적·종단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시도로 국제 학회가 주목했다. 서양이 주도하던 국제노화학회의 학회장을 아시아 최초로 한국이(제가) 맡게 된 배경이다.
-다학제적 연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다. 당시 대통령은 과학 한국을 역설하시면서 대학과 과학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다소 여유로워진 연구비를 무기 삼아 교수들에게 노화연구에 '열정'을 요구했다. 많은 교수들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자체를 즐겨서 가능했다.
-세계적인 노화 현상과 다른 한국 사회 노령화의 특수성은 무엇인지.
▲서구 국가들이 50~100년에 걸쳐 노령화가 진행된 것과 달리 한국은 초단 기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 빠른 세대 간 단절, 지역 공동체 붕괴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급속한 고령화로 전통적 노인 돌봄 체계가 없다. 역설적으로 한국형 대책은 고령화 속도에 맞춘 신속한 사회·정책 혁신이 될 수 있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과제가 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구에 대한 철학과 지원은 다시 들어도 이채롭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인재 양성과 학문 진흥을 국가 재건의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IMF 시기인데도 연구 인프라와 인재 지원 예산을 줄이지 않았고, 오히려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국제 학회 참여를 장려하고, 해외 석학과의 교류를 확대해 한국 학문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이러한 철학과 실행은 이후 한국 연구 생태계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백세 어머니, 여든 아들'의 일상과 연구가 궁금하다. 현실에서 본 노화의 새로운 모습이 있다면.
▲100세 노모를 곁에서 모시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노화가 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적응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가 임플란트를 15개를 하시고 음식을 즐기며 활력을 회복했다. 영양 보충 이상의 의미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정서적 안정과 생활 리듬을 되찾게 했고, 주변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다. 장수의 본질이 존엄과 관계 속에서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있음을 실감했다. 연구실 데이터로는 포착되지 않는, 일상 속 생활·정서 회복이야말로 건강수명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점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의학박사이신데 인문학적 성찰로 나아간다. 과학자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인문학은 과학의 결과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 도구다. 데이터와 실험 결과는 인간·사회·문화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될 때 완결성을 가진다. 노화 연구 역시 세포 변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개인의 생애사·관계·문화 습속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초고령사회라는 인류 과제 앞에서 과학자는 데이터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장수의 비밀이 유전자인지 식사나 운동과 같은 습관인지 궁금하다.
▲유전도 일정 부분 작용하지만, 생활습관의 영향이 훨씬 크다. 한국 백세인의 경우, 신선한 채소와 생선 섭취가 공통적이었다. 즉, 절제된 조리법과 균형 잡힌 영양 섭취, 꾸준한 신체 활동이 장수와 직결된다. 생활습관 개선이야말로 장수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전략이다.
-노화 연구의 과학적 발견이 정책·문화·윤리 담론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장벽은 사회 인식과 제도의 보수성이다. 과학적으로 노화를 존엄한 생존 전략으로 규명했음에도, 정책·문화 현장에서는 여전히 노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의료·복지 제도는 여전히 병 중심으로 설계돼 예방·관리보다는 치료·수술에 자원이 집중됐다. 문화적으로는 늙음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는 태도가 뿌리 깊다.
윤리 담론 확장에서는 죽음과 노화를 공론화하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이 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와 인문학자, 정책가가 공동으로 노화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고, 대중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했다.
-초고령사회와 맞물려 한국 의료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시는지.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지만, 의료·돌봄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또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심각해 농어촌 고령층은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만성질환 관리가 어렵다.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 체계도 미흡해 질병이 악화된 후에야 치료가 이뤄진다.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있지만 수요 대비 시설·인력이 부족하고, 가족 돌봄에 의존하는 구조가 여전하다. 특히 의사 인력의 수도권 집중, 응급·재활·완화의료 인프라 부족이 문제다. 의료 서비스의 지역 균형, 예방 중심 정책, 장기요양과 재활·돌봄 서비스의 통합이 시급하다.
-의료 대란 과정에서 전공의와 학생들의 무력시위가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의료 현장의 어려움과 제도 개선 요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이 이 환자 안전보다 집단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듯한 방식은 국민 신뢰를 떨어뜨렸다. 내부 권익 보호를 넘어 사회적 책무와 공공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갈등 상황에서도 필수 진료와 환자 안전을 지키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신뢰 회복 없이는 의료 개혁 논의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박상철 교수는
생명과학과 의학, 노화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대한민국 의학계의 대표 석학으로, 대한민국 노화 연구의 살아있는 역사다.
서울대 의대에서 학부와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의대 교수시절 국내 노화 연구의 기반을 다졌다.
노화연구로 한국 최초의 다학제간, 종단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 아시아 최초로 국제노화학회장을 지내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가천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 원장, 삼성종합기술원 부사장,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등을 거치며 기초의학과 임상을 아우르는 융합 연구를 이끌었다.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이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종신회원이며,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후원회 회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 한국노화학회, 국제노화학회, 국제백세인연구단 등 여러 학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과학기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 소장으로도 국가 차원의 연구 기반 마련에 기여했다. 대표 저서로는 '백세 엄마, 여든 아들', '거룩하게 늙는 법', '한국의 백세인', '노화 혁명' 등이 있다.
광주의 대표적 향토사학자 고 박선홍 선생의 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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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들이 일군 ‘대동문화’, 지역 유산으로 계승”
조상열 광주대동문화재단 대표 조상열 대표는 지역의 유일한 민간 문화잡지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잡지 대표이자, 지역 전통문화지킴이, 인문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주필이 만난 사람]한류가 세계의 언어가 됐다. 그 성취는 기술이나 속도, 유행이 아니라 축적, 전통의 유니크함에서 비롯된다. ‘대동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현장에서 길어 올려, 잡지와 답사, 강연으로 이어온 시민 문화의 실험장이었다. 1990년대 답사 자료집에서 출발해, 지역 문화잡지의 명맥을 30년 가까이 이어온 이 기록은 행정이나 자본이 아닌 시민 메세나의 힘으로 일궈졌다. 메세나 그룹 대동문화재단 운영이사회, 이름 없는 전국 후원자들의 연대는 문화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이끌고 있는 조상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대세다. 저력이 무엇이라고 보는지.▲한류의 저력은 새로움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방식과 정서에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AI가 일상을 지배해도 문화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기억, 공동체의 경험, 전통이 힘을 만든다.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온 전통과 생활문화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결과다.-서양, 일본 등을 쫒던 국민들이 마침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 같다. 각별하실 것 같다.▲우리 사회는 서구와 일본을 기준으로 살아온 점이 있다. 전통은 낡았다는 반응이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감회가 크다. 다만 자부심이 일시적 유행으로 소비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좋아한다’를 넘어서 왜 소중한지 이해하고 지켜내려는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대동문화’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역의 중요 거점이다. ‘대동문화’를 설명해달라.▲‘대동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현장에서 발굴하고, 이를 잡지와 답사, 강연으로 풀어내는 문화공동체라 할 수 있다.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자랑이다. 광주를 거점으로 전국과 세계를 향하고, 전통을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자산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민간에서 문화잡지를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작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90년대 중반, 한문학원 강사들과 함께 전라도 역사탐방을 하며 운영한 답사 자료집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001년에 지역의 유일한 문화잡지로, 금호 그룹이 운영하던 ‘금호문화’가 22년 만에 폐간되고 언론사가 운영하던 ‘예향’까지 중단되자 지역 원로 언론인과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금호문화’ 폐간 이듬해에 대동문화가 문화잡지 형태로 본격 출범했다.-역사 탐방에서 시작됐다는 게 이채롭다.▲당시 한문학원이 번성하던 시절인데 강사들의 역량 강화가 절실했다. 한문은 글자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고전의 정신을 삶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제자·후배들이 각 지역에 학원을 차리면서 역량강화로 매달 공부를 하던 중 책상머리를 벗어나 ‘현장’을 찾아 나서게 됐다. 그렇게 소쇄원·낙안읍성 등으로 답사를 다니며 답사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 지역사회의 관심을 끈 것이다.조상열 대동문화회장이 26일 광 조상열 대표는 지역의 유일한 민간 문화잡지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잡지 대표이자, 지역 전통문화지킴이, 인문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민간에서 문화잡지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많은 분들이 도움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경영의 숨통을 틔워준 건 현대그룹 연수 사업이었다. 대통문화 역사탐방이 소문이 났던지 현대그룹 본사에서 ‘전라도 답사 연수’를 요청했다.2001년 첫 회의 참여자들 만족도가 최고점을 기록하며 그룹의 성공사례가 돼 전 계열사로 확산됐다. 14년을 성공적으로 내달렸는데 세월호 참사로 잠정 중단하면서 끝이 나벼렸다. 그 기간 현대그룹 광고까지 더해지면서 발간 체계를 안정시키는 결정적 기반이 됐다. 이후 현대는 물론 여타 기업의 인문강의 요청이 이어지며 대동문화가 전국으로 뻗어나갔다.-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그렇다. 광주의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와 시민들의 참여와 도움, 지원이 생명이다. 어느 날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님이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셔서 “이 귀한 걸 시민들이 하느냐, 내가 100만 원씩 내는 사람 50명을 만들겠다”고 제안하시고 실재로 55명의 운영이사회를 이끄셔서 2007년 3월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운영이사회가 출범했다. 이 후원을 기점으로 계간지였던 ‘대동문화’가 격월 체제로 끌어올려졌고, 대동문화의 핵심 자원이 됐다. 지금은 약 250명 규모로 확장됐다. 이밖에도 전 광주라마다 김대원 회장께서 수년 동안 사무실을 무상지원하는 등 많은 지역사회의 도움이 이어져 왔다. 시민후원과 출판사업, 광고 등이 주 수입원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전국 유일의 시민 메세나로 만들어지는 문화잡지로 기록돼야 할 것 같다. 시민들과 접촉면 확장이 중요해 보인다.▲대동문화는 말 그대로 시민 후원으로 운영된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중장년 이상 세대로 전승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젊은 세대 유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대학생 문화유산지킴이 장학생 제도를 도입했다. 참여대학생 중심으로 미래인재·청년부 준비모임’이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 장학금 역시 시민후원으로 전개된다.-‘대동 전통문화 대상’은 많은 상금 액수로 민간단위 수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대동문화가 소개하던 한옥 장인 등 ‘한 우물’ 파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이들을 직접 격려하는 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2019년에 제가 1천만 원을 내겠다고 하자 당시 3대 김기수 이사장께서도 기꺼이 1천만원을 후원해주는 등 많은 분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관(시·문체부) 지원은 시류에 따라 중단될 수 있어, 뜻있는 사람들이 기부로 모금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해 모금이 약 6천만 원, 상금은 총 2천500만 원 규모로 시작했다. 지금은 상금이 3천만원이다. 한번 시상식마다 약 7천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모든 것을 지역사회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대동문화재단이 하는 일들을 설명해달라.▲재단은 잡지 발간을 넘어 ‘현장 기반 문화사업’을 여러 축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문화재 돌봄센터(국가유산청·문화재청 및 광주시 위탁)와, 충장202센터·사직골문화센터·효천문화센터 등 지자체 위탁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위탁사업은 100%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그밖에 문화재청의 문화재지킴이 사업, 문체부 인문스토리 사업 등 보조사업 들을 수행해오고 있다.-회장님 개인사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앞서 오지호 선생님과 인연을 말씀하셨는데.▲오지호 선생은 내 삶의 방향을 정해준 정신적 스승이다. 학문 이전에 문화와 민족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인식, 그리고 지식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분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한문학원 운영도 이채롭다.▲오지호 선생님께서 운영하던 한문학원 문하생으로 인생을 출발했다. 이후 성장해서 독립학원을 운영한 것이다. 한문학원은 글자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이 경험이 이후 답사와 해설, 문화 활동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앞으로 꼭 남기고 싶은 일이 있다면▲특정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지역에서 문화가 스스로 숨 쉬는 구조를 남기고 싶다. 누군가의 이름보다 시민의 기억 속에 남는 문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마지막 과제다.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 · "지워진 존재를 다시 세우는 일··· 장애 예술, 존엄을 피워내다"
- · "연설보다 예술이, 구호보다 행위가 역사를 잇는다"
- · "정직함으로··· 광주 스토리 담고, 전국 브랜드로 키울 터"
- · "기후 위기에 자연 회복력이 더욱 중요···'삼인동 숲'이 산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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