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6일까지 이정기 ‘번역된 가상’
지역 작가 체계적 조명 위한 공간
첫 전시로 ‘뉴스트’ 공모전시 열어
유물로 남는 인간의 현재 조명해
인물 모습 유물로 형상화한 회화
사라지는 돼지저금통 이용 조형물
‘라이프 캐스팅 ’기법 활용해 눈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김상욱)이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을 집결하고 시민들과 더욱 가까이 호흡하기 위한 전용 전시 공간인 전시 7관의 문을 새롭게 열고 지역 작가 공모 전시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 7관 개관은 ACC가 지역 작가들을 체계적으로 조명하고 지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상징한다. 특히 지역 미술의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의 가치를 발굴하는 ‘지역 예술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러한 개관 취지를 알리는 첫 행보는 지역 작가 공모 프로그램인 ‘2026 ACC 뉴스트(NEWST)’다. 첫 전시로는 이정기 작가의 개인전이 선정돼 내달 26일까지 ‘번역된 가상’전을 선보인다.

이정기 작가의 작업은 “우리의 모든 것은 훗날 유물로 남는다”는 오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2000년 첫 개인전 이후 20여 년 넘게 이어온 이 주제는 이번 전시에서 ‘번역된 가상’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작가는 개인적 기억과 감정, 그리고 동시대 사회의 장면들을 미술이라는 언어로 번역해내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교차시키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시대의 유물-수면’은 거울을 활용한 작업 가운데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아픈 상흔을 바탕으로 참사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깨진 거울 조각과 인체 형상을 통해 비극의 기억을 우회적으로 환기한다. 당시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형상을 라이프 캐스팅(사람의 신체 등 실물을 그대로 본 뜨는 기법)으로 구현하고, 그 위에 깨진 거울 조각을 부착해 물빛 위에 떠오르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파편화된 기억과 감정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관람자의 해석과 감각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도록 열어둔 작업이다.

또한 전시에는 ‘현재인’, ‘사물의 풍경’, ‘시대의 유물’ 등 주요 연작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현재인’ 시리즈는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화석에 빗대어 표현한 작업이다. 작가는 실존 인물의 얼굴을 바탕으로 형태를 의도적으로 뭉개고 왜곡함으로써 빠른 속도 속에서 소진되고 고정되어가는 현대인의 존재 상태를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물의 풍경’ 시리즈와 ‘Piggybank’에서는 돼지저금통이라는 일상적 오브제가 등장한다. 한때 저축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돼지저금통은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시대 속에서 점차 기능을 상실한 채 유물로 전환된다. 작가는 이를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현재의 삶이 결국 낯선 과거로 남게 되는 과정을 상상한다.
‘시대의 유물’ 시리즈에서는 부모 세대의 얼굴을 차용해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이들을 하나의 ‘기념비적 존재’로 재구성한다. 작가의 부모를 기반으로 한 조형물의 형상을 회화로 풀어냄으로써 개인의 삶과 역사적 시간이 중첩된 층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근현대사에 기록된 영웅 중심의 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평범한 개인들이 곧 시대의 증언자임을 환기한다. 특히 눈을 감은 인물 형상을 통해 특정 인물성을 지우고 익명성을 부여함으로써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외에도 전시는 아내의 임신한 신체를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인간 존재와 재생산의 의미를 되묻는 ‘희귀한 유물’, 전쟁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는 텍스트 기반 작업 ‘사자의 서’ 등 다양한 층위의 시도를 포함한다.

이정기 작가는 “전시7관 개관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라는 점에서 영광스럽기도 하고 의미가 깊다”며 “그동안 이어온 작업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한편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관람객들과 나누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편 ‘2026 ACC 뉴스트(NEWST)’ 전시는 이정기 작가의 개인전에 이어 임수범·하승완 작가의 ‘이형의 뼈’, 양나희 작가의 ‘Useless…but Beautiful’, 서영기 작가의 ‘남겨진 밤’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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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과 퇴계의 우정, 광주서 기린다
월봉서원과 도산서원
광주에서 월봉서원과 도산서원의 연합강학회가 열리는 가운데 올해부터는 ‘고봉의 길 걷기’ 등 고봉과 퇴계의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려 눈길을 모은다.호남학당과 고봉학술원이 개최하는 올해 월봉서원·도산서원 연합강학회 및 학술문화행사 ‘고봉 Next 500, 월봉에서 무등으로 희망의 길을 잇다’가 8일과 9일 월봉서원 강수당, 전통문화관 입석당에서 열린다.행주기씨 문헌공종중과 고봉선생 숭덕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8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단칠정 등 유학을 논한 두 사람의 우정을 기리며 지난 2023년부터 광주와 안동에서 교차로 열리고 있다.광주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안동의 유학자 19명을 포함해 총 70여 명이 참여한다. 첫 날 열리는 올해 강학은 ‘퇴계·고봉 선생이 주고 받은 편지를 톺아보다’를 주제로 월봉서원 강수당에서 펼쳐진다. 참여자들은 고봉과 퇴계가 주고 받은 서신을 통해 주고 받은 학문적 내용을 함께 읽고 토론한다.둘 째날에는 ‘고봉의 길 걷기와 학술 문화행사’가 열린다. 올해 처음으로 기획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고봉이 퇴계의 죽음 이후 규봉암으로 올라 그곳에서 안동을 향해 예를 갖췄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강학 참여자들은 유생복에 망건까지 갖추고 무등산입구부터 증심사까지를 걸으며 두 사람의 우정을 기릴 예정이다. 또 걷기 행사 말미에는 기세규 박사가 시창을 한다. 고봉이 생전 남긴 667수의 시 중 무등산과 퇴계를 논한 시를 창할 계획이다.천득염 고봉선생 숭덕회 이사장은 “몇 해 동안 월봉서원과 도산서원은 정기적으로 강학을 갖고 퇴계와 고봉의 우정을 기렸다”며 “올해는 내년 고봉 선생 탄생 500주년을 앞두고 강학 외에도 우리가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고봉의 길’ 걷기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한다. 시민의 호기심을 자아낼 것으로 기대하며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고봉과 퇴계의 우정이 더욱 기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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