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기억과 연결된 현재' 8월17일까지
80년대 '임을 위한 행진곡' 시작
12·3 상징 '다시 만난 세계' 등
민주주의 현장 노래 조명 '눈길'
불의 맞선 시민 힘 미디어아트로

5월 광주의 문화현장은 서슬퍼런 감시 아래에서도 긴 시간 5·18민주화운동을 문화예술로 승화시켜왔다. 때론 직격으로, 때론 은유로 오월을 이야기해 온 광주 문화현장에는 어떤 작품들이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까. 더 이상 우리가 오월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그 시간에 스며드는 전시, 공연, 문화행사 등을 직접 감상하고 소개한다.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온데 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남녀모두 이대로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 마을/춥고 지친 밤 여기는 또 다른 고향/여기는 또 다른 고향/그리운 고향 마을/춥고 지친 밤 여기는 또 다른 고향/여기는 또 다른 고향'
전시 입구에 들어서자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 흘러나온다. 1978년 만들어진 이 곡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노조 설립을 독려하는 노래극으로 민중가요의 효시로 여겨진다.
서로를 독려하는 민중가요부터 추운 광장에 연대가 되고 온기가 된 대중가요까지, 노래를 키워드로 1980년·2024년의 계엄과 이에 맞서 싸우는 우리 국민의 힘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전시 '공명-기억과 연결된 현재'의 시작이다.
시립미술관은 매년 5월 즈음부터 민주인권평화전을 선보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가치인 민주, 인권,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로 그 방식과 구성은 매해 달라 사유의 폭을 넓힌다. 올해는 '음악'이 주가 됐다. 민주주의 현장을 지킨 노래를 통해 1980년과 2024년의 시공간을 넘나든다.
우리는 지난해 12·3을 겪으며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힘을,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의 의지를 느꼈다. 1980년에도 지난해에도 국민은 계엄에 숨지 않았고 광장으로 나왔다. 44년이라는 긴 시간을 건너오면서도 달라지지 않은 점은 또 하나 있다. 노래로 서로 연대하며 용기를 나눈 점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1980년에는 '민중가요'로 불리는 노래가, 2024년에는 'K팝'이라 불리는 노래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전시 1층은 1980년을 지탱한 민중가요를 아카이브를 통해 만나본다. 민중가요의 시작과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로 오며 민중가요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등을 희귀 앨범과 희귀 영상 등을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가벽을 통과하면 미디어아트로 민주주의의 힘과 5월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1층과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5개의 미디어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모두 메시지는 은유하되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들은 각기 희망과 치유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민주주의의 힘을 경험하게 하기도 하고 80년 5월 광주와 24년 12월 대한민국을 마주하게 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 임용현 작가의 '발화의 등대'는 관람객 참여로 완성된다. 등대 구조물 주변으로 놓인 마이크에 관람객이 소리를 내면 등대의 불빛이 밝아지며 4대의 모니터 속 세상이 변화한다. 더 많은 사람의 소리가 더해질수록 불빛은 더욱 밝아지고 모니터 속 세상의 변화는 더욱 빨라진다. 우리가 함께 내는 목소리의 힘을 은유하는 작품으로, 누구나 민주주의의 힘을 느낄 수 있다.

2층에서는 지난 계엄에서 만났던 국민 의식 변화와 달라진 시위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재치있는 문구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었던 시위 깃발을 비롯해 시위 현장에서 불렸던 케이팝 등을 영상과 설치물로 만난다.
같은 층에 설치된 권혜원의 '바리케이드에서 만나요'는 이 전시를 관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 세계 시위 현장에서 실제로 불려지고 기록된 노랫소리들이 담긴 이 작품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소리가 마치 시위 현장의 바리케이드처럼 거대한 저항의 힘을 갖고 있음을 관람객이 몸소 느끼게 한다. 국민 연대는 무형의 것이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형의 장벽과 같은 힘을 갖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희석 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지난해 비상계엄을 맞이하며 많은 사람들이 80년 계엄을 떠올렸을 만큼 1980년과 2024년은 닮아 있다. 하지만 또다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음은 80년 5월 광주가 가진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며 "두 지점은 연결됐을 뿐만 아니라 반향을 일으켰음을, 둘을 관통하는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자리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글·사진=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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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힘이 세다'···詩<시>로 승화된 '그날의 함성' 지난 2024년 진행된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 봄이 옵니다.두 손을 모아 목련이 피어나고햇살을 품은 벚꽃이 피어나고지난겨울 모진 바람 견딘 동백은 오래 붉습니다.(중략)과거와 현재가, 죽은 자와 산 자가가슴과 가슴으로 피워올린 양심의 꽃으로현재가 과거를 모셔 와산 자가 죽은 자를 모셔 와다시 오월을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이천이십오년 사월 사일 이른 열한 시 이십이 분과거와 현재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오월의 꽃! 오월의 힘! 뜨겁게 만발합니다!(이은주 시 '다시 오월' 중)지난 2023년 진행된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시는 칼보다 힘이 세다. 1980년 6월2일 김준태 시인은 당시 전남매일 신문 1면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실었다. 당시 계엄군 검열관은 105행의 시 가운데 많은 부분을 난도질했다. 제목에서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삭제됐고, 본문 33행만 살아남았다.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이 '시의 힘'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축소하고자 한 것이다.하지만 신문 1면에 실린 시는 반향이 컸다. 지면에서 잘려나간 여백은 독자들에게 군부의 탄압을 알려준 생생한 증거였고 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을 가늠케하는 거울이 됐다.지난 2023년 진행된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불의에 맞선 시인들의 '저항 정신'은 김준태 시인에 그치지 않았다. 시인들은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고 매년 5월18일이 되면 시로서 민주주의를 노래했다.시인들에게 '문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말은 하나의 명제다. 광주전남작가회의는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표하자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으며 탄핵을 촉구하는 '한줄 시국선언'을 게재하기도 했다.'내, 벼락이 되어 법귀, 권귀, 파렴치 악귀들을 내치리라!'(조진태 시인), '민주주의여! 한 발 한 발 그대에게 걸어가고 있으니 기다리시오'(성미영 시인)지난 2022년 진행된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특히 시인들에게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의미가 깊은 날이다. 매년 5월이 되면 앞다퉈 시를 짓고 이를 선보임으로써 '광주 정신'과 민주주의의 참 가치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광주전남작가회의는 지난 1988년부터 '오월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 중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와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 일대에서 열리는 걸개 시화전은 2016년부터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걸개 시화전은 시를 통해 '그날의 함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을 체감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지난 2021년 진행된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지난 1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올해 행사에는 광주와 전남을 비롯해 강원도,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0여 명의 한국작가회의회원들이 참여했다. 지난해 벌어진 12·3 비상계엄의 아픔과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을사년 뱀띠 해 여의도에 봄이 와도/한파가 심술부려 매화향 어지럽다/절개를 지킨 선비처럼/응원봉이 새벽 지키네'(김정헌 시 '응원봉 매화' 중)5·18국립묘지 방문객들은 작품을 보고 1980년 광주의 아픔과 끔찍했던 비상계엄의 상황을 되돌아보는가 하면 소중한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대전에서 광주를 찾은 정미현씨는 "5·18묘지 참배를 위해 들렀다가 작가들의 시를 보니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며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뒤에 시화전을 감상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오는 31일까지 진행되는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오는 31일까지 진행되는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전김미승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은 "시화전의 작품들은 5·18 정신의 계승을 비롯해 더 확장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며 "특히 옛 적십자병원 터에 마련된 시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과 당시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게재돼있으니 오월 영령들을 기리는 발길 속에 이러한 시들을 담아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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