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들 관리하던 도청 상무관
헬기사격 탄흔 남은 전일빌딩
시민 헌혈 줄잇던 적십자병원
YMCA·금남로 등 45년전 '생생'
12월까지 매주 토 인문투어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소설 '소년이 온다' 중)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소년 '동호'는 1980년 5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고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는다. 동호는 광주 곳곳에서 끔찍했던 참상을 눈에 담았으며, 동호와 함께 다니던 인물들도 끔찍한 아픔을 겪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곳들은 허구의 장소가 아니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에는 소년 동호가 걸었고 5·18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담고 있는 장소들이 남아있다.
광주시는 5·18민주화운동 사적지와 한강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북구 중흥동 일대를 묶은 '소년의 길'을 새로 조성해 지난 17일부터 인문투어를 운영 중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도보 여행은, 수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 장소와 사건들을 기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소년의 길'은 소설 속 동호와 한강 작가의 흔적을 쫓는 동시에 5·18을 기억하는 코스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지명들은 현재 5·18 사적지로 지정돼 있으며, 동호의 모티브가 된 고 문재학 열사 역시 한강 작가와 마찬가지로 북구 중흥동에 살고 있었다.
코스는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5·18 사적지가 다수 포함된 '소년이 걸었던 길(2.1㎞)'과 전남대와 중흥동 일대의 '작가가 걸었던 길(1.8㎞)'로 나뉜다. 2개 길 사이의 거리가 4㎞가량 떨어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동구 푸른길 공원과 동명동 카페거리를 통해 한번에 걸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소년이 걸었던 길'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광주YMCA, 옛광주적십자병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상무관, 옛전남도청, 5·18민주광장, 전일빌딩245 등으로 이어진다.
5·18민주광장에 서면 옛전남도청과 상무관이 앞뒤로 마주 보고 있다. 동호는 상무관에서 시취를 참아가며 수없이 실려오는 시신들의 모습을 마주했다. 정갈한 문장으로 묘사됐지만, 시신들의 참혹한 모습들은 중학생 3학년 소년이 참아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중간고사를 보고, 늦잠을 자고,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던, 어쩌면 평범한 중학생이 보낼법한 일요일을 사라지고, 45년 전 이곳은 절규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45년이 지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현재의 우리들은 당시 열다섯 소년이 마주한 광경을 감내할 수 있을까.

현재 상무관과 옛전남도청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라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전일빌딩245에 오르면 분수대와 함께 5·18민주광장 일대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45년 전 '민주평화'를 외치던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전일빌딩245 9~10층에 조성된 전시관인 '1980518 메모리얼 홀'에는 45년 전 헬기사격의 흔적과 함께 5·18의 진실을 알리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옛전남도청 일대에 조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18의 핵심 가치인 '민주·인권·평화'를 전하기 위한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진행 중이며, 24~25일에는 5·18과 제주4·3을 주제로 한 마당극제가 열린다.
옛광주적십자병원에서는 오월 한달간 '멈춘 공간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념 전시가 진행 중이다. 1980년 당시 수많은 시민들을 구호했던 이곳은 단순한 1996년 서남대병원으로 전환됐으나 경영난으로 2014년 폐쇄됐다. 5·18 45주년을 기념해 한시적으로 개방된 이곳에서는 과거 병원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시민들의 인터뷰에 따라 적십자병원의 미래 모습을 구현한 이미지들이 전시돼 있어 둘러볼 만하다.

'작가가 걸었던 길'은 전남대학교, 중흥도서관, 효동초등학교, 골목길 문화사랑방(가칭) 등으로 이어진다.
중흥도서관에는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가 기증한 '소년이 온다' 책과 한강 작가의 도서 등이 전시돼 있으며, 한강 작가의 모교인 효동초에는 건반 모양의 조형물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강 작가의 생가 인근에는 오는 12월까지 '골목길 문화사랑방'이란 이름으로 4층 규모의 북카페가 조성된다. 현재는 임시로 컨테이너와 테라스가 놓여져 있어 이곳이 한강 작가가 유년기를 보냈고 소년 동호가 살던 동네임을 알려주고 있다.
소년의 길 속 주요 장소를 걷는 인문투어 프로그램은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4시 두 차례 운영한다. 전일빌딩245에서 90분간 진행되며, 중흥동에서는 향후 골목길 문화사랑방이 조성된 이후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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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날 '소년'과 함께 도청에 있었다면···
ACC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공연에서 관객들은 시민군이 돼 45년 전 광주를 경험한다.
5·18민주화 운동의 최후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일대는 시간이 지나며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도청 건물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며, 지상의 분수대 도로에는 5·18민주광장이, 지하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들어섰다. 45년 전 거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현재의 모습이 낯설 수 있지만, 반대로 당시 광주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5·18이 잘 와 닿지 않는다.과거의 흔적이 사라져간 옛 전남도청과 ACC를 두고서도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과연 5·18 정신과 가치를 이어지고 있는가.' 하지만 ACC는 수많은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인권·평화라는 5·18의 핵심 가치이자 범인류적인 가치를 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지난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도 그중 하나다. 올해에는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4차례 무대에 올랐다.'광주에 없었다'는 5·18민주화운동의 치열했던 10일간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관객들이 직접 무대에 들어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특히 올해 공연에는 각 공연마다 518명의 관객이 참여했다.ACC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공연에서 관객들은 시민군이 돼 45년 전 광주를 경험한다.극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45년 전 광주로 들어와 당시의 시민이 된다. 객석에는 당시 광산군이었던 광산구를 제외하고 4개 자치구 표지판이 있다. 역사책에서 접한 5·18이 아니라 산수동에서, 유동에서, 계림동에서, 당시의 시민들이 5·18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느껴 볼 수 있다.무대 위 배우들이 전남대학교와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대치할 때, 관객들은 숨죽이며 이를 바라보다가 상황이 마무리되면 무대 위에 올라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계엄군이 무대 위 시민군을 진압하려 들 때마다 관객들은 잠시 객석으로 피신하지만 이내 다시 어깨동무를 하고 구호를 외치며 계엄군을 몰아낸다. 자신이 앉아 있던 플라스틱 음료 상자를 하나하나 모아 도청 앞에 바리케이드를 쌓기도 한다.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민주 평화, 독재 타도, 계엄 철폐'를 외치며 45년 전 광주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무대 분위기가 돌연 바뀌고 계엄군이 총검을 장착하자,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구호 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관객은 거리에 숨은 방관자가 된다.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이 끝난 이후, 관객들은 쓰러진 이들의 주검 위에 흰 천을 가지런히 덮어준다. 화면에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따라 '나는 광주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띄워진다.ACC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술극장의 '빅도어'가 열리며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야외무대로 나선다.45년 전 광주를 겪은 관객들은 이제 현실로 돌아온다. 공연이 마무리되면 예술극장 극장1의 '빅도어'가 열리며, 배우와 관객들은 야외무대로 함께 나선다. 무대의 광주와 현재의 ACC가 연결되는 순간, 1980년 광주에 없던 관객들은 현재의 광주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부산에서 온 정영국 씨는 "45년 전 나는 광주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보고 당시의 시민들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인 것을 깨달았다"며 "먼저 희생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불의에 저항했던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전주의 한 대안학교 교사인 김혜정 씨는 "마지막에 문이 열리고 야외로 나가는 부분은 ACC에서만 가능한 마무리였던 것 같다"며 "함께 온 학생들도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에서 당시의 오월을 생생하게 보고 느낀 것 같아 보람차다"고 말했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계자는 "앞으로도 ACC는 5·18의 핵심 가치를 국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나는 광주에 없었다'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라며 "올해 말 옛 전남도청 복원에 맞춰 내년에는 더욱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 · 펜은 칼보다 힘이 세다'···詩<시>로 승화된 '그날의 함성'
- · 80년 5월과 24년 12월, 노래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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