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천 통해 판옵티콘 구조 형성
실험영화 선구 한옥희 감독 작품
봉준호 감독 대학 초기시절 영화
亞 전쟁·이주·폭력 풀어낸 작품도
광주극장·영화마을 구현 '볼거리'

영화라는 장치가 만들어내는 감각과 역사, 그리고 기억을 공간 전체로 확장해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펼쳐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김상욱)이 19일부터 9월27일까지 복합전시2관에서 아시아 실험영화의 흐름을 집약한 대규모 전시 ‘ACC 필름앤비디오-아시아의 장치들’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미디어 게이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 공간에서는 여성 실험영화 선구자인 한옥희 감독의 작품 이미지를 기반으로 제작된 트레일러가 상영돼 전시 전반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입구 천장과 벽면에는 흑백 영상이 강렬하게 펼쳐지고 일본 작가 이토 다카시의 작품이 배치돼 기존 영화와는 다른 실험영화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입구 상부에 연출된 하얀 천은 이번 전시의 상징적 장치다. 이는 영화 스크린의 경계를 의미함과 동시에 과거 실험영화들이 검열을 피해 몰래 상영되던 시절의 이동 영사 분위기를 복합적으로 재현한다. 관객들은 하얀 천을 따라가며 거대한 감시 탑을 연상시키는 ‘판옵티콘’ 구조의 전시장 내부로 발을 들이게 된다.
전시의 중심은 원형 구조물을 활용한 ‘시네마 빌리지’다. 기존 공간을 변형해 마치 감시탑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재구성했으며 바닥에는 한국 실험영화의 흐름을 정리한 연대표가 깔려 있어 관람객이 걸으며 읽는 역사를 경험하도록 했다.

1층은 아시아 여성 서사로 출발한다. 그동안 역사에서 소외되거나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실험영화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한옥희 감독의 작품이 핵심이다.
한 감독은 1970년대 보수적 유신체제 속에서도 여성 영화인의 창작과 실험영화 제작, 상영 활동을 선도한 개척자다. 특히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실험영화집단인 ‘카이두 클럽’의 리더로서 여성 영화인의 창작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시각예술 실험을 주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ACC가 감독의 자택에서 직접 발굴·복원한 1975년작 ‘세 개의 거울’을 포함해 총 6편이 공개된다. ‘카이두 클럽’의 아카이브도 함께 소개돼 당시의 활동과 맥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층에서는 관람객 편의를 위한 안정 담요와 점자책도 비치돼 눈길을 끈다. 감각적 자극이 강한 영상 환경 속에서 관람자가 보다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람객들이 가장 궁금해할 대목은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노란문’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 시절 활동했던 영화 동아리 이름을 딴 공간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면 봉 감독의 첫 작품인 ‘백색인’을 감상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공간은 광주극장 재현 구역이다. 실제 광주극장에서 사용하던 의자, 35㎜ 필름, 영사기, 손간판 등을 그대로 옮겨와 지역 영화사의 기억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매일매일 관객 수를 손으로 기록했던 꼼꼼한 관리 대장을 통해 지역 공동체와 함께해온 극장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층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아시아의 정치·사회적 격변을 다룬다. 다양한 국가의 작가들이 전쟁, 검열, 이주, 폭력 등의 주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이어진다. VR을 활용한 교도소 독방 체험 작품, 애니메이션, 다채널 영상 설치 등 매체적 실험도 두드러진다.
특히 이 층에서는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영화 마을’처럼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일상적 공간들이 연결돼 관람객은 각기 다른 이야기 속을 이동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포스터 거리도 마련돼 실험영화가 지니지 못했던 홍보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 장치로 확장했다.

전시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3층 공간은 파노라마 풍경처럼 보이게끔 제작된 와이드 스크린이 압권이다. 이곳에서는 도시 속 타워 크레인의 모습과 5·18 민주화운동의 기록 영상을 담은 ‘둥글고 둥글게’가 교차 상영된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 ‘기생충’의 음악 감독 정재일이 참여해 깊이감 있는 음향과 함께 한국 근대화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김상욱 ACC 전당장은 “이번 전시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아시아의 다양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자리”라며 “특히 한국 최초 여성 실험영화 감독인 한옥희의 작품을 발굴하고 복원해 소개하는 점도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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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5·18 46주년 맞이 GV 프로그램···한국 현대사 돌아보는 '자리'
영화 ‘남태령’ 스틸컷.
광주극장이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맞아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하는 특별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GV) 프로그램을 잇따라 선보인다. 이번 행사는 민주주의와 저항, 기억과 상처를 다룬 영화들을 통해 광주와 한국 사회가 지나온 역사의 장면들을 다시 돌아보는 자리로 마련돼 눈길을 끈다.먼저 오는 18일 오후 7시 30분에는 영화 ‘남태령’ 스페셜 시사회와 미니 GV가 열린다. 김현지 감독의 작품인 ‘남태령’은 SNS 공간에서 우연히 모인 시민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함께 연대하며 만들어낸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한겨울 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동지’가 돼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경쾌하고 생동감 있는 시선으로 풀어낸다.영화는 “이렇게 귀엽고 매콤한 투쟁, 이게 남태령 코어야!”라는 문구처럼 오늘날 청년 세대의 새로운 연대 방식과 광장의 감각을 담아내며 주목받았다. 상영 후에는 김현지 감독이 직접 참석해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은 한채원 이서점 대표가 맡는다.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 스틸컷.이어 20일 오후 6시 30분에는 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 특별 상영과 함께 고 김재규 장군 46주기 추도 행사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기념해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을 다시 바라보기 위해 마련됐다.행사는 함세웅 신부의 집전으로 진행되는 추도식으로 시작된다. 이후 상영되는 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은 10·26 사건 당시의 언론 보도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의 발표 장면을 바탕으로 박정희와 김재규의 관계를 추적하며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재조명한다.영화는 조선경비대 시절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과 유신체제, 부마민주항쟁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교차 구성하며 김재규의 선택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까지 내리려 했던 박정희 정권 말기의 상황 속에서 김재규가 어떤 결단에 이르게 됐는지를 중심적으로 다룬다.영화 상영 후에는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돼 작품의 기획 의도와 역사적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김재규장군명예회복추진위원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고 전국시국회의, 광주전남송죽회, 광주전남민주동우회, 1026함께보기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함께 참여한다.영화 ‘둥글고 둥글게’ 스틸컷.영화 ‘꽃잎’ 스틸컷.오는 23일에는 오후 1시 40분부터 오후 6시 20분까지 영화 ‘둥글고 둥글게’와 ‘꽃잎’ 연속 상영 및 GV가 진행된다.‘둥글고 둥글게’는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한 시청각 프로젝트로, 장민승 감독이 연출하고 정재일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5·18민주화운동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곡점을 아카이브 영상과 음악, 전시적 연출을 결합해 입체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특히 정재일 음악감독이 시편을 기반으로 작곡한 라틴어 합창곡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풍경과 광주의 기억을 깊이 있게 되새기게 한다. 영화와 공연, 전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 역시 관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어 상영되는 ‘꽃잎’은 장선우 감독의 작품으로 5·18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로 무너진 한 소녀의 삶을 통해 개인의 상처와 사회적 폭력을 동시에 응시한 작품이다. 1996년 개봉 당시 강렬한 메시지와 실험적 연출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올해 개봉 3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두 작품 상영 후에는 장선우 감독과 장민승 감독이 직접 참석하는 GV가 이어진다. 진행은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맡아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의 역할과 의미, 기억의 방식 등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관람료와 상영 시간표 등 자세한 내용은 광주극장 네이버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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