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은총으로 축적된 결실

입력 2026.03.17. 14:28 김혜진 기자
정순아 작가 개인전 '은총'
오늘까지 서울 JBOX 갤러리
시간과 땅이 만든 밀도 황금색 형상화
사라지지 않는 가치 기록 존재의 심연
정순아 작 ‘황금빛 기억’

은총(Grace)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힘이다.

은총은 또 우리가 딛고 서는 자리에서 씨를 묻으면 다시 생명을 밀어 올리는 힘의 맥락과 동일하다. 침묵 속에서 끊임 없이 품고, 결국은 다시 내어주는 존재로부터 발현되는 그 무엇이 은총의 구체적인 상인 셈이다. 그리고 은총위에 살고있는데 흙을 만지고, 땅을 긁어 그 숨결을 화면에 옮긴다는 설명이다.

정순아 작가가 6∼16일까지 ‘은총’을 주제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JBOX 갤러리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 ‘은총’을 상징하는 황금빛을 매개로 수확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땅이 스스로 증명한 시간의 결과로 나에게는 땅의 언어이자 신호로 다가오는 신작 20점을 선보이고 있다.

황금벼를 그려온 시간은 어느새 수년이 되었다. 처음부터 금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땅에서 자라나는 것들, 노동과 계절을 견디며 축적되는 생명의 빛에 마음이 머물렀다. 벼는 햇볕을 먹고 자라며 스스로 황금이 된다. 내가 바라본 황금은 금속의 값이 아니라 시간과 땅이 만들어낸 밀도이다. 황금이 숫자로 환산되는 가치보다 앞서 오래전부터 땅위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을 견디며 축적된 것, 사라지지 않는 가치에 대한 기록이다. 자연이 주는 풍성함은 태양, 바람, 물, 달, 별 그리고 인간을 오랫동안 품은 땅의 결실이다.

그는 최근 10년여 동안 판화작업을 통해 작품이 표현하는 도시의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들이 메마른 느낌의 건조한 감성을 표현, 큰 주목을 받았다.

작품을 보노라면 생명의 숨결, 시간의 기억, 누군가는 흙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그 위에 집을 세우고 그리고 길을 내며 삶의 목표를 향해 가는 은총의 힘이 엿보인다.

정순아 작가는 조선대 미대 회화과와 종대학원을 나와 개인전 17회, 뉴욕 등 국제교류전 및 단체전 300여회를 열었다. 한국미협과 한국판화협회, 아트그룹 구미호 회원이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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