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들판 위 검은 날갯짓과 효를 그리며···

입력 2026.01.07. 14:23 김만선 기자
[박문종의 그림이 있는 풍경⑫]
모정의 세월-까마귀를 찾아서
흰 눈길 뚫고 다다른 너른 들에서
마주한 까마귀 떼에 반가움 느껴
어린시절하면 뗄 수 없는 존재들
이젠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어
옛부터 오묘함과 권위 품은 존재
어미를 향한 효심의 상징이기도
무등산이 보이는 담양 수북들.

이삿짐을 싣고 광주를 벗어나 담양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1997년 초겨울이었다. 눈이 폭신하게 내리는 날이었는데 눈길을 뚫고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작은 트럭 한 대뿐 송강정 쌍교 건너 봉산들에 이르자 너른 들이 펼쳐지는데 들은 하얗다 못해 백지장이었다. 거기에서 까마귀 떼를 만난 것이다. 새까맣게 몰려있는 까마귀를 보면서 실로 오랜만이어서 옛 친구를 만난 것마냥 반가웠다. 트럭 운전사에게 부탁해 차를 세우게 하고 논으로 걸어 들어갔다. 먹이 활동을 하던 새들이 놀라 일어나는데 그 속에 묻힌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1963)처럼 말이다. 영화에서처럼 공포스럽기보다는 도시에서 한 발짝인데 이런 자유로울 데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도 들을 앞에 두고 살게 되니 오다가다 조우하게 되는데 들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가끔씩 퍼포먼스가 있는데 군무가 그것이다. 그럴 때면 길가다 넋 놓고 본다. 리더 격인 새가 하늘 높이 치솟으면 무리가 뒤따라 비행을 하는데 여유롭게 서서히 원을 그리며 선회를 하는 것이었다.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도 같고 그 동작은 한동안 반복된다.

드로잉.

시월 들어 대기에 찬 기운이 느껴질 때쯤 하늘은 파랗다 못해 잿빛일 때 까마귀들이 들이닥치는데 선발대가 먼저 당도한다. 서너 마리 정도가 척후병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 대군단이 등장하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한 번은 까치 무리와 대치하는 장면을 목도한 적도 있는데 까치도 개체 수가 상당해서 겨울에는 운집하는 습성이 있다. 전깃줄에 새들의 나래비가 끝이 없다. 까치가 텃세 부린 것일까? 서로 세력 싸움인 것이다. 편갈라 줄다리기하듯이.

또 한 번은 마을 주점에서 친구와 노닥거리다가 새들의 습격을 받는다. 마침 술청 창문을 통해 마을 대숲과 연결된 구조여서 우연찮은 탐조가 됐는데 거기가 녀석들의 잠자리였던 것이다. 술잔 놓고 앉아 술이 눈으로 들어간지 코로 들어간지 온통 신경이 대숲에 가있다. 스산한 겨울바람 소리. 새들의 푸럭이는 나래 소리. 비밀스러운 까마귀들의 잠자리를 그렇게 훔쳐보게 된 것이다.

새도 해 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 먹이활동을 하고 해 저물면 들어와 쉰다. 식구가 하나 둘도 아니고 군단이 움직이다 보니 수선스럽기도 할법한데 들고 나는 것이 소리 소문 없이 은밀해서 잘 훈련된 부대처럼 일사불란하다. 대숲에 숨을 때는 얼마나 잽싼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효자도 47x75cm 먹.채색 1993.

내 사는 마을은 대밭이 구름 같아 그 위에서 휘돌다가 사라지는 광경은 보기 드문 것이다.

까마귀는 익조일까? 흉조일까? 우문을 던져본다.

어린 시절 겨울에는 이 새들 속에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늘이고 땅이고 까마귀 떼였으니 농사가 많은 고장이어서 한겨울에도 들에 보리싹이 파릇한데 피해봤다며 내쫓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까마귀는 영리한 새라고 한다.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건지 적당한 거리 유지가 생존 본능이라고나 할까.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 말이다. 그 많던 까마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들 미술시간에 '까마귀를 찾아서'하고 녀석들의 행적을 추적해본 적도 있었다.

결국 찾지 못했다. 들어가 쉴 대숲이 사라지고 없으니 거기에 원인이 있는 것도 같다. 요즘 농촌 농사가 허술해 이삭이 많은데도 말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까막새 '재수 없는 새'라는 오명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우선 스타일이 비호감이다. 우중충하고 까칠한 블랙 콤플렉스 아닌가? 어두움 말이다. 천자문에 의하면 검을 현(玄)은 우주 만물의 오묘함을 이르는데 오방색이 섞이면 검은색이듯 심오한 색인데 근원을 말한다고 한다.

삼족오(三足烏)는 세 발 까마귀로 까마귀의 면모로 대변하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다. 태양신의 신탁을 수행하는 신화 속 존재로 절대 권위의 상징물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중국 후한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세발 3 숫자는 동양의 절대 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는 국가 상징물로 삼았다는데 붉은 바탕에 둥근 원안에 들어앉은 세발 까마귀의 기상이 표장으로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다시 봐도 디자인이 세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에도 검토된 바 있다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다.

까마귀는 '효성스러운 새'라는 이미지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이 그것인데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국가 덕목 최우선에 두고 있다. 당연히 관련 민담이나 설화가 많은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문자화(文子畵·일명 '꽃 글씨'라고도 했다고 함)가 계도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민간에 널리 배포되었는데 근세에 들어서까지 마을 사랑방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액자나 족자형 그림이다. 기존 붓글씨체에 획을 선택적으로 지정해 알맞은 그림으로 대체하는 방식인데 하나의 장르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잉어 죽순 설화가 주류가 되는데 요즘 흔히 쓰는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물고기가 잡숫고 싶다는 병석의 어머니를 위해 자식은 강가로 간다. 한겨울 강에서 물고기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얼음장을 깨고 잉어가 나왔다든가. 또 한겨울 죽순이 어디 있은 것인가? 대밭에서 느닷없이 죽순이 치솟았다든지 그 간절함에 하늘도 감복한다. 불가해한 일임에도 무형의 힘에 의해 실현하고 있다. 문자화에는 까마귀도 가끔 등장하는데 자오반포(慈烏反哺)고사가 있다.

효금도 1976년작 지본담채 31.5×63 의재 허백련.

까마귀는 부화한지 60일 동안은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이후 어미 새가 늙어 먹이 활동을 못 하게 되면 새끼였던 새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 했다(본초강목). 근세에 들어 들판의 까마귀도 보기 어렵게 됐지만 그림으로도 드문데 의재의 효금도(孝禽圖)를 꼽을 수 있다. 단순한 구도에 까마귀 한 마리 대숲 마른 나뭇가지에 앉은 그림인데 화제글씨가 절반이나 된다. 여기에 한글 해설문을 옮기자면,

'자애로운 까마귀가 어미를 잃으면 깍깍 슬픈 소리를 토하고 그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한다. 뿐 아니라 해를 지나도 옛숲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 밤마다 밤중에 울고 있으니 한가한 사람이 이에 감동하여 옷깃을 적시더라.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부고를 전하는 것도 같고 어미 새에 다하지 못한 보은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백조가 어찌 어미 새가 없으리요마는 너만 유독 상흔이 깊은 것은 어미의 사랑을 내가 다하지 못하여 슬퍼하는 때문이다. 옛날 오기(吳起) 장수가 있는데 모친상을 당하고도 가지 않았으니 오기는 깊이 슬퍼하는 그 마음이 있지 않은 무리요 새만도 못하다 할 것이다. 까마귀가 극진히 어미를 사랑하니 새 가운데 증삼(曾參·증자:효의 대명사격)이라 하겠다.'('의재화집')

오기는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장수인데 병법에도 출중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상을 당하고도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효자로 묘사되고 있다.

'모정의 세월'이라는 옛 가요가 있다. 이맘때 심금을 울리는 노래인데 거리에서 어느 가게인지 라디오 스피커로 크게 틀어놨을까 세밑에 옷깃 세우고 종종걸음하는 사람들 그리운 얼굴 가족 품으로 돌아갈 때 그 노랫소리에 문득 멈춰 서고 만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 듯 어머니….'하는 묵직한 남자 가수의 노랫말이 사무친다.

글·그림=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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