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소설···인문학 매력에 빠지다

입력 2025.02.05. 16:10 최소원 기자
[문화현장-인문학 모임 20세기소설영화독본]
영화인 조대영씨 2009년 결성
회원 12명… 20대서 70대까지
소설가·동화작가·주부 등 다양
2주마다 모여 작품 감상후 토론
"세대간 소통 통해 시야 넓어져"
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 스틸컷

'텍스트힙'이란 '텍스트'와 '힙하다'가 합성된 신조어로, '독서를 하는 것이 멋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Z세대 사이 '텍스트힙'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을 빼놓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 우리는 매일같이 범람하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숏폼과 같은 미디어 매체가 커다란 역할을 하는데, 짧은 시간 내에 시청각적으로 간편하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 세대들에게는 텍스트보단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는 우리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하다. 매년 청소년들의 떨어지는 문해력을 주제로 한 기사가 쏟아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독서'뿐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광주극장 뒤편에 위치한 '영화의 집'

비슷한 맥락에서 인문학 역시 '교양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등을 포함한 인문학은 동물과 달리 인간이라는 생명체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지식이며 인류의 산물이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은 광주의 영화인 조대영씨가 지난 2009년 만든 광주의 인문학 모임이다. 2주 간격으로 원작 소설을 읽고 회원들이 함께 모여 영화를 본 후 토론을 이어가며, 인간과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로 17년을 맞은 20세기소설영화독본은 2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이 소설과 영화를 매개로 하나가 되어 활동한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들이 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를 감상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함께하는 수요일 밤

20세기소설영화독본의 2025년 첫 프로그램 작품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로 선정됐다.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상주의자인 돈키호테 데 라 만차와 현실주의자인 산초 판사가 등장하는 모험소설이다. 시골 지주인 알론소 키하노가 기사도 소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망상이 심해져서 자신을 진짜 기사 돈키호테로 생각하게 되고 가상의 둘시네아 공주를 그리며 세상의 악을 무찌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았다. 인간 본성과 함께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현재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고전이다. 회원들이 원작 소설과 함께 감상한 영화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로, 원작 탄생 400주년 기념작이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들이 영화를 감상한 후 토론을 하고 있다.

수요일 밤 광주극장 뒤편에 위치한 '영화의 집'에 모여든 회원들은 커다란 스크린 앞에 앉아 숨죽여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크레디트의 끝을 알리는 배급사 로고가 올라간 후에야 전등이 환하게 켜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회원은 12명으로, 최연소 20대 회원부터 최연장자인 70대 회원까지 한 데 자리했다.

동화 작가인 김영미씨는 13년째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참여하게 된 김씨는 13년간 결석 두세 번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참여해 소설 독파와 영화 감상을 즐겼다. 그는 "원래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데 모임의 주제가 딱 내 취향과 맞아서 올 때마다 실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건강만 따라준다면 계속해서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들이 영화를 감상한 후 토론을 하고 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회원도 있었다. 25세로 모임의 최연소 회원인 박영현씨가 그 주인공. 박씨는 모임을 소개받아 지난해 하반기부터 참여하고 있다. 그는 "원래 영화와 독서 모두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모임을 통해 영화는 확실히 좋아하게 됐다"며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하게 모임에 나옴으로써 좋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모임장인 조대영씨는 "영현씨와 같은 젊은 회원으로 인해 모임에 활기가 돌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의 의견과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어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워간다"고 설명했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들이 영화를 감상한 후 토론을 하고 있다.

◆책과 영화로 채워진 17년

정년퇴직을 하고 제2의 삶을 살아가며 인문학의 매력에 '퐁당' 빠진 회원도 있었다. 최연장자인 김용완씨는 2018년 겨울의 어느 날, 신문에 소개된 20세기소설영화독본 모임을 보고 조대영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일하느라 먹고살기 바쁠 때에는 시간이 없었는데 정년을 한 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젊을 때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책을 정말 좋아했는데,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영화와 함께 접하니 참 좋다. 모임이 1년에 24번 있는데, 그럼 최소한 24권 이상의 책은 읽게 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들이 영화를 감상한 후 토론을 하고 있다.

1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모임을 이어가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몇 차례 벌어졌다고 한다. 영화 상영을 담당하는 박명일씨는 몇 해 전 모임에서 선정된 소설을 읽다가 표지의 삽화가 잘못 삽입된 것을 발견하고 직접 출판사 사무실에 전화해 수정을 요구했다. 또한 회원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다 번역 실수를 발견해 영화사 측에 내용을 전달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오늘 감상한 돈키호테만 해도 배우의 대역이 두 명이나 있었다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다"며 "엔딩 크레디트까지가 영화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들이 책을 읽고 있다.

회원 중에는 소설 '보스를 아십니까'를 펴낸 김만성 소설가와 동화 '형은 고슴도치'를 발간한 동화 작가 임성규씨도 있었다. 이들은 20세기소설영화독본 모임을 통해 작품 활동에 큰 영감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김만성 작가는 "소설은 문자로 언어를 다루는 것이고, 영화는 영상으로 언어를 다루는 건데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문자 언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새로이 알게 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회원의 도서. 소설을 공부한 흔적으로 빼곡하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계속되길"

영화를 감상한 후 회원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읽어온 원작 소설과 함께 감상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토론은 원작과 영화의 차이부터 원작 소설이 집필됐던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의 삶과 사회·정치·철학을 아우르는 이야기까지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 스틸컷

모임장 조대영씨가 "돈키호테라는 캐릭터가 원작에서는 입체적으로 표현되는데, 이와 달리 영화에서는 단순한 캐릭터로 표현하는 것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운을 떼자 회원들이 번갈아가며 각자의 해석과 감상을 전했다.

한 회원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캐릭터를 주제로 소설을 쓴 이유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부정부패가 심했기 때문에 이를 풍자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서양 중세시대 기사 소설의 문학사를 설명하기도 했다.

20세기소설영화독본 모임을 설립한 배경에 대해 조대영씨는 "1991년 영화를 주제로 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 소설과 영화를 접목한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10여 명의 회원들로 시작해 17년 동안 모임을 이어가면서 계속해서 구성원들이 바뀌었다. 이렇게 거쳐간 회원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고.

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 스틸컷

조씨는 새로운 회원을 계속해서 받고 싶다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모임을 나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읽고 영화를 어떻게 보고 어떤 해석을 했는지 소통하며 새롭게 배워간다"며 "다양한 연령층의 회원들이 함께해서 인문학적 사고를 키워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문학 모임 20세기소설영화독본은 광주극장 뒤편 '영화의 집'에서 격주 수요일 오후 7시마다 진행된다. 6개월 회비는 5만원이며, 모임에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은 책을 읽고 영화의 집을 방문하면 된다. 올해 상반기 선정 작품으로는 '헬프', '가여운 것들', '케빈에 대하여', '더 디너',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이 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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