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지기 남우진·기애자 부부
1939년 지어진 유서깊은 고택
30여년 버틴 ‘장소의 힘’ 느껴
고택 7채 매입 문화공간 탈바꿈
수백년된 회화나무·금목서 등
독보적인 스토리텔랑 자원삼아
역사·자원 공존 ‘리사이클 정원’
연 58만명 방문 전남지역 대표
유니크베뉴 성장…지역에 활기

고목에 연둣빛 새순이 얼굴을 내밀었다. 겨우내 검은 빛으로 죽은 듯 쓸쓸히 자리를 지킨 그 나무다. 바람이 세게 불어도 폭설이 쏟아져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시간을 품고 있었다. 초록의 무성한 잎에서 샛노랑으로 변해 지난 가을에는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하늘로만 향한 앙상한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길과 관심에서 벗어나 겨우내 뿌리 깊이 간직한 새 생명을 봄바람의 부름에 친절하게 눈을 뜨게 한 경이감을 느낀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작은 손짓처럼 살랑이며, 소식을 전한다. 고목의 새순뿐만 아니라 수줍게 고개든 들꽃이며 새들까지 총출동했으니 시끌벅적하다. 봄의 애찬이 절로 나온다. 나주시 향교길에 있는 3917 마중의 풍경이다. 쑥쑥 돋아난 연둣빛은 마중의 봄을 알리는 상징색이다.
마중은 한때 방치된 곳이었다. 지금이야 한 해 50여만명이 찾아오는 핫플레이스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의 발길이 끊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 소멸의 흐름에서 피할 수 없는 대목이라 그렇게 ‘정해진 미래’를 가듯 동네는 활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이곳에서 한때 나주를 대표하는 명명가들이 살았고 나주 역사의 중심지였음을 감안하면 세월 무상이고, 지역민이 갖는 상실감은 컸다.
무심하게도 100년 이상 된 금목서와 은목서, 회화나무, 느티나무 연리지 은행나무 등만 계절마다 자연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주인이 떠나 집은 비워있고 계절에 맞춰 피고 지는 고목들의 잎사귀와 재잘거리는 참새와 맨드라미와 봉숭아꽃만이 쓸쓸히 피웠다가 졌을 뿐이다. 그저 담 하나를 사이에 자리 잡은 나주향교를 찾는 이들이 무심코 지나치거나 아름드리나무를 보고 아쉬운 장탄식이라도 쏟아내면 최고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흘려보낸 시간이 30여년이었다. 이렇게 방치된 이곳이 다시 생명력을 얻고 펄떡펄떡 살아 있는 공간이 됐다. 불과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 출신 남우진 대표가 2015년 나주에 곰탕을 먹으러 왔다가 우연히 들러보고 필이 꽂혔다. 사람이 발길이 끊겼다고는 하나 장소의 힘이 느껴졌다. 기업컨설팅을 하고 있던 남 대표에게는 버려진 자원이 신기해서다. 바로 옆에 향교가 있고 나주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근현대의 장소적 역사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금화장학회 사무실로 이용된 현재 목서원으로 명명한 고주택 부지를 시작으로 일대에 있던 주택 7채 부지를 차례대로 매입, 하나씩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켜 나가고 있다. 이때가 2017년이다. 간판도 ‘3917 마중’으로 달았다. 마중이 1939년 나주 근대적 장소에서 2017년 현대 공간으로 새롭게 깨워 남을 담고 있는 브랜딩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던 시기가 오버랩된다.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마중의 개념은 장소적 재활용으로 빛을 더하고 있다. 마중은 리사이클링 정원이다. 재활용이라는 뜻의 리사이클링에서 보듯 세월을 품고 있는, 늠름하고 웅장한 자태와 굽은 가지,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며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200년 이상 된 회화나무와 은행나무, 1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금목서, 은목서 등은 여전히 새싹을 틔워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무들의 이력도 그렇거니와 장소성까지 더해져 마중의 스토리텔링은 더욱 풍성해진다. 마중이 자리 잡은 이곳은 고려시대에는 절터였고 조선시대에는 바로 옆에 향교가 들어설 만큼 명당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1939년에는 나주 정씨의 재력가가 한국식, 일본, 서구 등을 망라한 건축 양식으로 주택을 지었다. 2천400평 대지에 들어선 디귿자형(ㄷ)의 이 주택은 전라남도 제1호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돼 지역건축 역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사이트가 되고 있다. 그러다 재일교포인 금하 서상록씨가 매입해 이천서씨 금하장학회 사무실로 운영됐다. 1971년 설립된 금하장학회는 1991년 서상록씨 사망으로 이 공간은 한때 공가로 있었다. 남 대표가 지난 2015년 매입해 온기를 불어넣을 때까지 긴 잠을 자야 했다. 남씨의 눈에는 장소와 그 터 위에 자리 잡은 주택과 나무들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마중의 수목들은 고목들이 주류를 이루고, 여기에 회화나무 군락은 조선시대 심어진 것으로 추정돼 역사성을 더한다. 특히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연리지는 마중의 또 다른 랜드마크이다. 200년 된 회화나무와 10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접붙인 것인데 우람하게 하나 된 모습의 연리지는 마중의 수문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사실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귀목으로서 악귀를 쫓고 정신을 맑게 하는 나무로 귀하게 취급됐다. 회화나무의 경우 왕이 하사하지 못하면 민간에서는 심을 수 없는 나무였으니, 이 나무 말고도 군락지가 있는 것으로 볼 때 많은 이야기들을 유추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아울러 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도 계절마다 연출하는 맛이 달라 마중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사계절 고목들의 색다름이 마중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향교쪽 은행나무와 마중 은행나무는 각각 암수로서 매년 11월15일에서 20일 사이에 진노랑 은행잎 비를 환상적으로 뿌려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을 명소 콘텐츠 중의 한 곳이다.
고목들의 정원인 마중에서 시그니처는 고주택 중앙에 있는 금목서이다. 1971년 금화장학회 설립 기념식수로 심긴 나무이다. 이때 20~30년 된 것을 심은 것으로 전해져 현재 수령으로선 100살이 넘었다. 추위에 약한 금목서는 당시 남방한계선이 남쪽으로 서울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나무였다. 귀한 나무이다 보니 금목서는 철저하게 수형이 관리됐고, 몸매가 잘 관리된 채 하늘로 쭉쭉 뻗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을에는 멋진 향기를 선사했다. 미녀가 쏘는 향기랄까. 모두에게 귀하게 사랑받는 나무였다.
남 대표는 “금목서의 서의 한자 뜻은 코뿔서 서자이다. 나무를 밑동에서부터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할 수 없다. 이 나무 관리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는 지금의 수형에서 알 수 있다”면서 “아마도 우리나라에 있는 오래된 금목서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수형을 갖고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마중은 현재 4천평 부지에서 다양한 콘텐츠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주 정씨가 지은 고주택 2천400평 부지는 목서원으로 명칭을 달고 숙박 체험공간으로 사람들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다. 추가로 매입한 6채 1천400평에는 또 다른 문화와 융합된 소프트웨어를 입혀 힐링 여가지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추억 찾기 공간으로서 역할도 자리 잡고 있다. 마중의 부지 4천평 일대는 60~70년대에는 자취생, 공단 공원, 살림집 등 300~400명이 살만큼 촌락을 이뤘다. 산업화의 거센 물결에 힘입어 도시로 떠났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보니, 이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역인재 양성에 큰 힘이 된 금하장학생 출신들도 적지 않아 장학회 추억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남 대표의 설명이다.

마중은 장소적 역사성을 인정받아 전라남도 유니크베뉴 등으로 등록됐다. 나주를 찾는 이들의 필수 코스가 됐고 한해 방문객이 58만명에 달하는 핫플레이스 변신했다. 지역자산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남 대표는 고목뿐만 아니라 허브, 대나무, 은목서와 금목서 등 나무와 화훼류를 심고 전통주택과 어우러진 정원에 주력하고 있다. 정원은 인위적인 면은 거의 없다. 자연 그 자체에 중심을 두고 수목, 화훼류를 보충했다. 굳이 구분하자면 영국식 정원에 가깝다고나 할까.
남 대표는 정원을 통해 6차산업의 새로운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지역과 함께 가야 한다는 그의 목표가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나주에 바탕을 둔 지역자산에 나주의 특산물인 배를 활용한 음료와 제빵을 만들고 체험거리와 굿즈 등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있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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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 생활예술 장르로 자리매김 위해 최선"
“분재(分裁)가 생활예술 장르 중 하나로 널리 보급되고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열린 전시회도 이같은 취지와 목표를 담아 열었습니다.”분재작가 고하정씨는 분재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목표를 이같이 피력했다.그는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 자리한 무등갤러리에서 ‘녘: 축적된 사간’을 주제로 분재작품 전시회를 열어 큰 주목을 받았다.이 전시에는 그의 대학동기인 이경래 작가와 정미정씨가 참여, 조형·공간연출과 음악감독을 각각 맡아 협업으로 색다른 작품들을 선보였다.분재는 나무나 화초를 화분에 심어 줄기와 가지를 다듬어 작게 가꾸는 취미, 혹은 그렇게 가꾼 나무나 화초를 말한다.국내 분재 역사는 약 3천년에 달하며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본격회된 것은 7세기 무렵이다.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불교와 귀족 및 양반문화가 번창하면서 뿌리를 내렸고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지나며 쇠퇴하기도 했으나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 등으로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 취미로 퍼지며 점차 대중화됐다.고하정 작가는 전남대 예술대 미술학과를 나와 활동하던 중 분재학 박사이자 동강대 조경학과 교수인 문치호 한국분재문화연구원 대표와 인연을 맺으며 분재를 접하게 됐다,그는 이후 문 교수를 통해 분재를 배웠고 지난 2023년 한국 분재대전 은상(산림청장상), 2024년 한국 분재대전 대상(농림수산부장관상), 지난해 한국 분재대전 최우수상을 잇따라 수상,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았다.여기에는 대학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한 특기를 살려 자신의 작품성에 독창성과 예술성, 미적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도 원동력이 됐다.그의 작품을 보면 일반 분재작가와는 다른 미학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전시작 중 하나인 ‘푸른 신장-반조청심(反照靑心)’에는 자신을 다시 비추어 푸른 마음을 다잡다라는 뜻처럼 작품을 보며 안식과 치유를 얻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하정 작가는 “분재는 배우기 어렵과 접근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깨뜨리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생활예술로 확산됐으면 한다”며 “창작활도 외에도 교육과 수업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그는 최근 광주 남구 양림동에 ‘분재카페’를 열고 마음에 담아뒀던 생각과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고 있다.이 카페는 커피와 음료를 필기도 하지만 분재 창작과 교육울 통한 작가 양성 및 대중화, 공간을 찾는 많은 이들이 분재작품을 통해 소통과 치유, 몸과 마음의 회복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얻어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운영에 초점을 두고 있다.그는 “분재의 매력은 일상 속에서 자연을 접하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자연예술’이라는 점”이라며 “지연과 식물을 통해 삶의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분재예술이 더욱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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