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산과 오류제 한눈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맛집'

입력 2025.09.10. 16:15 이용규 기자
[남도정원산책] 해남 문가든

6남매의 외아들은 가족을 위한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에는 아버지의 흔적은 비롯해 가정과 가족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족정원을 만든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나무가 좋았고, 대학을 마치고 임업 관련 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도 자연스러웠다. 나무와 식물들과 어우러져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요즘, 최고의 만족감을 누린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정원이 세상에 선보인지는 5년째. 최대한 인공 요소를 배제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입소문나면서 MZ세대에는 '풍경 맛집', 중장년에는 '나들이 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해남 계곡면소재지에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문가든' 얘기다. 처서가 지난 정원에는 가을이 찾아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300여종의 나무와 초화류가 있는 문가든에서도 이 시기 주인공인 배롱나무의 붉은색이 여름의 끝자락을 단독으로 장식하고 있다. 모내기할 무렵 피기 시작해 100일간 피웠다 지기에 백일홍으로 불리우는 그 나무이다. 정원 안 우물가의 백일홍나무는 정원지기 문홍식 대표가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던 해 기념으로 심었던 나무라고 하니 벌써 40여 년 흔적이 줄기에 묻어난다.

문가든의 분위기는 뭐랄까. 정원지기의 성품을 닮았다.

특별히 잘난 체하는 나무와 꽃도 없고, 300여종의 식물들이 사계절 제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원지기 문 대표 부부의 세심한 손길과 관리로 가능한 일이었다. 꼼꼼하고 매사 완벽한 성격의 문 대표는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꽃과 나무에 모든 애정을 쏟아붓는다.

문 대표는 "5년 동안 정원을 만들면서 풀 한포기, 나무한그루, 정성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더욱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나무와 꽃에서는 문 대표 부부의 애정과 사랑이 그대로 전해진다. 정원지기 부부의 사랑과 관심으로 해를 더해가는 나무와 꽃들은 가족단위, 친구와 함께 찾아온 이들에게 여유로움을 누리게 하는 매력 요소로 작용한다. 문가든의 나무와 식물은 캔버스가 되고 식물은 물감이 된다. 때론 점이 되고 형태고 그림자가 된다.

문 대표 부부는 이를 적절하게 활용해 대지 위에 그들만의 정원 문법으로 풀어내는 작가도 되고 예술가가 되기도 한다.

정원 입구의 카페 안에서 앉아 유리창문으로 비치는 꽃과 나무는 원경의 흑석산 풍경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카페 2층에서 바라보는 뷰 역시 압도적인 풍광이 일품이다. 큼직한 창으로 흑석산을 낀 아름다움이 그대로 안겨진다. 카페 벽 위에 쓰인 "정원산책을 나갈까요" 글귀에 따라나서 본다.

몇 발자국을 떼니 숨겨진 보물단지 같은 저수지 오류제가 눈앞에 펼쳐진다. 카페 안에서 나무를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문가든의 비밀 장소이고, 최고의 핫플레이스다. 정원지기가 "산책을 떠나보실까요"라고 카페 손님들에게 재촉하는 듯한 문구를 붙여놓은 궁금증이 풀렸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정박된 보트 앞에서 바라보이는 흑석산의 풍경은 "원더풀" 감탄사를 쏟아내기에 충분하다. 물 위의 보트와 흑석산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들은 SNS에 자주 게재된다. 한 번이라도 다녀간 이들이 문가든의 전경에 반해 올린 사진들이다. MZ세대들에게 문가든이 '풍경 맛집'으로 통하는 이유이다.

문가든의 시그니처인 오류제는 정원의 품격을 높여주고, 색다른 공간을 연출하는 중심이다. 이를테면 대부분 정원 구역을 힐링존, 사색의 길, 허브존 등으로 명명하나, 아버지의 정원인 '춘포의 땅', 어머니를 생각한 '어머니의 길', 리디아 광장, 베로니카 꽃길, 유당숲, '지호의 꿈' 등 가족사랑이 담긴 9개의 공간을 조성했다. '춘포'는 문 대표 선친의 호이고, '지호'는 문 대표 손주의 이름이다.

"정원의 역할로선 커뮤니티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 동기간들이 가족 정원을 조성한 이후 자주 모이고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개인주의 시대에 뭉치는 것을 잘하니 우리 집의 정원 조성은 성공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족 사랑이 넘쳐나는 문가든은 산림조합중앙회 전남본부장을 역임한 문 대표가 퇴직 후 귀향을 결심하고 이 땅을 마련하면서 시작됐다.

선친이 1988년 밭과 과수원으로 경작하다 팔았던 이 땅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본 문 대표가 땅 주인을 설득해 사들여 퇴직 준비를 해나갔다. 우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었다.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도회지에 투자를 하는 것이 옳으나 경제적 접근보다 이 땅을 최우선 고려했다.

문 대표는 자신의 부모가 이 땅을 팔아 결혼 밑천을 해줬으니 이 땅을 꼭 사고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 땅 주인이 문 대표의 뜻에 공감, 이 땅을 내줘 계획대로 집을 지어 인근에 살고 계시는 부모를 모셨다. 문 대표의 선친은 아들이 지은 집에서 몇 년 동안 머무르다 세상을 떠났다. 6·25 참전 용사인 그의 선친은 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으나 유해를 정원의 양지에 수목장 했다.

여름의 끝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가우라.

문 대표는 틈틈이 노후 준비용으로 나무를 심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나무를 판매할 즈음, 임업기관에 근무하는 것이 많은 장애가 됐다. 나무 판매에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고 경계했다. 자기가 자기 땅에 심어놓고도 판매는 극도로 신중했다. 그의 성품이 그대로 투영되는 대목이다.

2018년 퇴직 후에도 나무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사업수완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화위복이었다. 노후 준비용으로 심어둔 나무들이 팔리지 않아 꽤나 부담이 됐지만, 넓은 대지 위에 요긴하게 심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정원을 만드는 큰 자산으로 작용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준비된 행운이라고 할까.

문가든은 날마다 자연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 대표는 철저하게 자신이 묘목부터 키워낸 나무 중심으로 정원을 가꾸는데 주력하고 있다. 외부에서 들여온 나무와 꽃들로 인해 부득이하게 그가 애정을 쏟아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린 터전을 내놓아야 할 불편함과 정원 전체의 나무와 식물들의 조화로움을 염려한 까닭이다.

"외부에서 오래된 나무를 들여오는 것도 좋으나, 나무나 꽃마다 다 자기자리가 있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큰나무라고 무조건 들여온다면 또 어디에 심어야할 지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2021년 문을 연 문가든은 2020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근린정원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해남군 최초 전남 18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지난 2024년에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문가든은 세대를 뛰어넘어 매년 4만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힐링지로서 자리를 잡았다.

호수를 떠나 여기저기 쉼터에 잠깐만이라도 앉아 있기만 해도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매력이 넘쳐나서다. 문 대표가 생각하는 문가든의 완성도는 몇 점이나 될까? "모든 이들이 지나가다 차한잔 마시고 숲을 거닐며 넉넉한 힐링지로 만들어가는데에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욕심부리지 않고 여유를 갖고 한발 한발 내딛도록하려고 합니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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