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남매의 외아들은 가족을 위한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에는 아버지의 흔적은 비롯해 가정과 가족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족정원을 만든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나무가 좋았고, 대학을 마치고 임업 관련 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도 자연스러웠다. 나무와 식물들과 어우러져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요즘, 최고의 만족감을 누린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정원이 세상에 선보인지는 5년째. 최대한 인공 요소를 배제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입소문나면서 MZ세대에는 '풍경 맛집', 중장년에는 '나들이 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해남 계곡면소재지에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문가든' 얘기다. 처서가 지난 정원에는 가을이 찾아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300여종의 나무와 초화류가 있는 문가든에서도 이 시기 주인공인 배롱나무의 붉은색이 여름의 끝자락을 단독으로 장식하고 있다. 모내기할 무렵 피기 시작해 100일간 피웠다 지기에 백일홍으로 불리우는 그 나무이다. 정원 안 우물가의 백일홍나무는 정원지기 문홍식 대표가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던 해 기념으로 심었던 나무라고 하니 벌써 40여 년 흔적이 줄기에 묻어난다.
문가든의 분위기는 뭐랄까. 정원지기의 성품을 닮았다.
특별히 잘난 체하는 나무와 꽃도 없고, 300여종의 식물들이 사계절 제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원지기 문 대표 부부의 세심한 손길과 관리로 가능한 일이었다. 꼼꼼하고 매사 완벽한 성격의 문 대표는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꽃과 나무에 모든 애정을 쏟아붓는다.
문 대표는 "5년 동안 정원을 만들면서 풀 한포기, 나무한그루, 정성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더욱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나무와 꽃에서는 문 대표 부부의 애정과 사랑이 그대로 전해진다. 정원지기 부부의 사랑과 관심으로 해를 더해가는 나무와 꽃들은 가족단위, 친구와 함께 찾아온 이들에게 여유로움을 누리게 하는 매력 요소로 작용한다. 문가든의 나무와 식물은 캔버스가 되고 식물은 물감이 된다. 때론 점이 되고 형태고 그림자가 된다.
문 대표 부부는 이를 적절하게 활용해 대지 위에 그들만의 정원 문법으로 풀어내는 작가도 되고 예술가가 되기도 한다.
정원 입구의 카페 안에서 앉아 유리창문으로 비치는 꽃과 나무는 원경의 흑석산 풍경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카페 2층에서 바라보는 뷰 역시 압도적인 풍광이 일품이다. 큼직한 창으로 흑석산을 낀 아름다움이 그대로 안겨진다. 카페 벽 위에 쓰인 "정원산책을 나갈까요" 글귀에 따라나서 본다.

몇 발자국을 떼니 숨겨진 보물단지 같은 저수지 오류제가 눈앞에 펼쳐진다. 카페 안에서 나무를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문가든의 비밀 장소이고, 최고의 핫플레이스다. 정원지기가 "산책을 떠나보실까요"라고 카페 손님들에게 재촉하는 듯한 문구를 붙여놓은 궁금증이 풀렸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정박된 보트 앞에서 바라보이는 흑석산의 풍경은 "원더풀" 감탄사를 쏟아내기에 충분하다. 물 위의 보트와 흑석산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들은 SNS에 자주 게재된다. 한 번이라도 다녀간 이들이 문가든의 전경에 반해 올린 사진들이다. MZ세대들에게 문가든이 '풍경 맛집'으로 통하는 이유이다.
문가든의 시그니처인 오류제는 정원의 품격을 높여주고, 색다른 공간을 연출하는 중심이다. 이를테면 대부분 정원 구역을 힐링존, 사색의 길, 허브존 등으로 명명하나, 아버지의 정원인 '춘포의 땅', 어머니를 생각한 '어머니의 길', 리디아 광장, 베로니카 꽃길, 유당숲, '지호의 꿈' 등 가족사랑이 담긴 9개의 공간을 조성했다. '춘포'는 문 대표 선친의 호이고, '지호'는 문 대표 손주의 이름이다.
"정원의 역할로선 커뮤니티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 동기간들이 가족 정원을 조성한 이후 자주 모이고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개인주의 시대에 뭉치는 것을 잘하니 우리 집의 정원 조성은 성공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족 사랑이 넘쳐나는 문가든은 산림조합중앙회 전남본부장을 역임한 문 대표가 퇴직 후 귀향을 결심하고 이 땅을 마련하면서 시작됐다.
선친이 1988년 밭과 과수원으로 경작하다 팔았던 이 땅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본 문 대표가 땅 주인을 설득해 사들여 퇴직 준비를 해나갔다. 우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었다.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도회지에 투자를 하는 것이 옳으나 경제적 접근보다 이 땅을 최우선 고려했다.
문 대표는 자신의 부모가 이 땅을 팔아 결혼 밑천을 해줬으니 이 땅을 꼭 사고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 땅 주인이 문 대표의 뜻에 공감, 이 땅을 내줘 계획대로 집을 지어 인근에 살고 계시는 부모를 모셨다. 문 대표의 선친은 아들이 지은 집에서 몇 년 동안 머무르다 세상을 떠났다. 6·25 참전 용사인 그의 선친은 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으나 유해를 정원의 양지에 수목장 했다.

문 대표는 틈틈이 노후 준비용으로 나무를 심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나무를 판매할 즈음, 임업기관에 근무하는 것이 많은 장애가 됐다. 나무 판매에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고 경계했다. 자기가 자기 땅에 심어놓고도 판매는 극도로 신중했다. 그의 성품이 그대로 투영되는 대목이다.
2018년 퇴직 후에도 나무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사업수완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화위복이었다. 노후 준비용으로 심어둔 나무들이 팔리지 않아 꽤나 부담이 됐지만, 넓은 대지 위에 요긴하게 심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정원을 만드는 큰 자산으로 작용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준비된 행운이라고 할까.
문가든은 날마다 자연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 대표는 철저하게 자신이 묘목부터 키워낸 나무 중심으로 정원을 가꾸는데 주력하고 있다. 외부에서 들여온 나무와 꽃들로 인해 부득이하게 그가 애정을 쏟아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린 터전을 내놓아야 할 불편함과 정원 전체의 나무와 식물들의 조화로움을 염려한 까닭이다.
"외부에서 오래된 나무를 들여오는 것도 좋으나, 나무나 꽃마다 다 자기자리가 있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큰나무라고 무조건 들여온다면 또 어디에 심어야할 지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2021년 문을 연 문가든은 2020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근린정원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해남군 최초 전남 18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지난 2024년에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문가든은 세대를 뛰어넘어 매년 4만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힐링지로서 자리를 잡았다.
호수를 떠나 여기저기 쉼터에 잠깐만이라도 앉아 있기만 해도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매력이 넘쳐나서다. 문 대표가 생각하는 문가든의 완성도는 몇 점이나 될까? "모든 이들이 지나가다 차한잔 마시고 숲을 거닐며 넉넉한 힐링지로 만들어가는데에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욕심부리지 않고 여유를 갖고 한발 한발 내딛도록하려고 합니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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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넘으면 만나는 솔과 매화의 노래
그는 화순 너릿재만 넘으면 행복한 사람이다고 한다. 너릿재는 화순과 광주 학동의 경계에 있는 고갯길이다. 광주에서 화순, 화순에서 광주방면으로 오고가는 길목이다. 그에게는 전자가 해당된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 있는 집보다는 화순 이양의 정원으로 갈 때 신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화순 이양의 정원에 새벽에도 왔다 가곤 한단다. 그의 이름은 임병락. 올해 62세인 그는 야생화를 좋아하고 소나무와 매화나무에 빠져 정원을 만들었다. 그가 아끼는 보물단지는 화순 이양에 자리 잡은 솔매음정원이다. 소나무와 매화를 좋아해 솔매음정원으로 명명했다. 언뜻 솔내음정원으로 들린다. 솔매음정원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하면 강원도 인제에 있는 솔내음정원으로 안내된다.승용차로 굽이굽이 산고개를 넘어 보성 복내 방면의 도로를 따라 갔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 어려움은 없었지만 꽤 오지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찾아간 간 날은 오후 3시를 조금 넘었음에도 해가 많이 짧아진 겨울이라 찬 공기가 온몸에 파고들어 왔다.화순 솔매음정원은 이양면 옥리에서 보성 복내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있다. 정문에는 지난 2022년 지정된 전남도 민간정원 19호 표착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집' 글귀의 표지판이 문 앞에 붙어있다. 정원에 들어서니 입구 양옆으로 땅바닥을 향해 드리워진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소나무의 밑동은 꽈배기 형태로 기괴한 자태가 장관이다.초입에서 만난 현해(懸解) 소나무에 놀란 것도 잠시 팽나무, 매화나무들이 연달아 시선을 압도한다. 나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정문에서 안채까지 100m 정도인데, 기품 있는 수형의 향나무와 또 다른 기기묘묘한 소나무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소나무와 매화나무가 어울러진 정원의 겨울 풍경은 청아함이 듬뿍 묻어난다. 매화꽃과 향기가 만발할 내년 초 봄에 방문하고 싶은 간절함이 커졌다. 정원에서 화사하고 은은한 빛깔의 꽃과 향기를 뿜는 것을 상상만 해도 마음속에서는 벌써부터 향기가 진동하는 것 같다.정원은 안채 뒤 산으로 이어진다.단절 없이 자연스러운 구조이다. 비밀의 정원이다. 안채 정원이 주인장의 안목과 열정으로 소나무 수집품을 모아 놓은 곳이라면, 산 쪽의 간은 정원지기의 또 다른 놀이터이다. 이곳은 세월을 품고 소나무며 편백, 단풍 등 다양한 수종들이 주인공들이다.산길 주변은 얼마나 손길을 쏟았는지 단정하고 정갈함이 묻어난다. 솔매음정원의 주인공은 소나무와 매화나무이다. 궁극적으로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수종들이다. 궁극적으로 소나무와 매화를 중심으로 자연의 음표를 만들어 새들이 깃들어 지저귀는 무공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숲속 공연장을 연출하는 것이다.솔매음정원에는 조선솔, 백송, 황금송 등 소나무 76종이 있고 한중일 3국의 유명한 매화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특별하게 소록도 처진 매화의 후계목은 3m 정도 자랐다. 소록도 처진 매화 후계목은 지난 2003년 매미 태풍 때 부러져 고사하기 전 씨앗에서 발아한 묘목을 가져다 키운 나무이다.솔매음정원의 나무들은 스토리도 다양하다.임 대표가 얼마나 나무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문 입구에 심어진 드러누운 형태의 소나무 2그루는 목포-보성 경전선 철도 공사 구간인 보성읍에 있었던 나무였다.원래 4그루였는데 다른 조경가와 나눠 2그루씩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 옮겨온 이력을 갖고 있다. 보성읍에서 이 나무들을 옮겨오는 데에는, 옆으로 길게 퍼진 줄기가 1차선 도로 폭보다 넓어 줄기 일부를 잘라 냈다. 어쩔수 없이 제거했지만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아깝다고 했다.임 대표가 결혼 기념식수로 심은 향나무는 당시 광주 지역구 국회의원과 경합하면서까지 손에 넣은 나무여서 볼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다.그때 수백만에 달한 나뭇값은 엄청 큰돈의 가치가 있었다. 임 대표는 당시 아버지께서 벼를 매상해 나뭇값을 보태주셨는데, 나중에 용달차에 싣고 오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구입 당시에도 수형이 아름다웠던 향나무는 40년이 흐른 뒤에도 부부의 연륜만큼이나 기품 있는 자태로 정원을 빛내고 있다.임 대표에게 경중을 가릴 나무가 있겠느냐마는 탤런트 고현정씨 문중의 산에서 옮겨온 소나무도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옆으로 멋진 수형을 보인 소나무 2그루는 고씨 문중의 반대를 물리치고 어렵게 구매가 성사돼 겨울에 일주일 작업 기간을 거쳐 옮겨 심었다.그러나 아쉽게도 한 그루는 결국 임 대표와 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렵게 구한 이 나무는 임 대표의 손에서 죽은 나무 중 하나에 속한다.화순 이양 출신인 임 대표는 어려서부터 나무가 좋았다. 선친이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여서 동네에 나무를 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 온지라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신혼 초 아내가 근무하는 고흥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무를 키우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당시 이 학교에서 재배하던 구상나무 52그루를 구입해와 집 뒤의 산에 심었다. 이 나무들은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그러다 법학을 전공하고 경찰학원에서 형사법 강의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학원계에서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뛰어들었다.인기 절정의 강사료와 날개 돋친 듯 팔린 교재 인세 등 적잖은 목돈은 경제 활동을 중단했음에도 그가 나무를 구입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자금줄이 됐다. 임 대표가 꿈꾸는 솔매음정원은 특색 있고 지속가능한 우리나라 식물학습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우선 10년 후 솔매음정원에서 목련축제 개최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목련 집산지인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가지 않고도 목련의 향연을 즐기도록 함이다.현재 이곳에는 162종의 목련이 자라고 있다. 또한 울릉도 식물원을 만드는 것이다. 솔매음정원에는 울릉도 서식 식물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데 안뜰 뒤편에 울릉도원을 집약시켜 우리나라 식물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 한다.솔매음정원에는 구상나무, 꼬리말마풀, 특산식물 50종과 위기 멸종 식물이 자라고 있다.솔매음정원에서는 우리나라 꽃을 비롯한 식물 감상을 넘어 학습정원으로 지속 가능한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전통 한옥에도 관심이 많은 임 대표는 정원 입구에 탐진 최씨 104년 된 현승재를 통째로 광주 동구 선교동에서 옮겨와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내년 봄이면 이 한옥은 멋진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변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솔매음정원은 정원계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한 구성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전주 시민정원사들은 매년 3월초 솔매음정원 투어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을 한단다. 이 때는 변산바람꽃과 복수초가 피고 노랑색 꽃과 향기를 뿜는 남매가 이들의 활동을 깨우는 시기이다."정원을 만들어놓으니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고 인연을 쌓고 소통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잘한 것이 정원을 만든 것입니다".정원주 입장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새벽에도 찾아올 만큼 그의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정원을 향한 열정이 향기와 꽃을 피우며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으고 있다.혹시 내년 봄 솔매음정원 매화꽃 향기가 전해져 발길을 재촉한다면, 주저치 말고 떠나 보시길. 인상좋은 정원지기의 꽃세상을 들어보는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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