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취약한 전남광주, 그늘권 제도화 절실하다

입력 2026.09.16. 10:02 이삼섭 기자
폭염 재난 시대, 햇볕 피할 권리 ⑤끝 그늘은 생존 수단
전남광주, 폭염 일수 전국 상위권…습도 높아 더욱 취약
최소한 생존 장치 역할할 행정 지침·조례 등은 공백 지속
주요 도시 '기본권' 수준 격상·도시 기본 원칙 도입과 대비
전남 여수시 죽림초 횡단보도에 위치한 그늘막. 폭염 속에서 그늘은 시민을 지켜주는 필수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뉴시스

갈수록 무더위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등 사회적 약자에 더 가혹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폭염은 자연재난임과 동시에 사회적 재난이다. 도시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아래, 시민들을 보호하는 첫번째는 작은 ‘그늘’이다. 누구나 그늘 아래서 잠시나마 보호 받을 수 있다. 폭염이 재난이 된 시대, 그늘은 누구나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자 생존권이다. 무등일보는 우리 도시가 방치해 온 ‘그늘 불평등’을 고발하고, 기본적 권리로서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전남광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폭염에 훨씬 취약한 구조다. 남·서해안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과 내륙 분지형 지형(광주권)이 결합된 기후 요인 등으로 습도가 높은데다, 온열질환에 취약한 고령층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 일상에서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해 줄 제도와 장치는 여전히 사후약방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늘을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닌, 시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기본권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5일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등에 따르면, 전남광주 지역의 폭염은 발생 빈도에 지속성 모두 증가 추세다. 구체적으로 2020년∼2023년 5~9일 수준이던 폭염 일수는 2024년에는 33.1일, 지난해 32.4일 등으로 폭증했다. 최장 폭염 지속 일수 역시 2020년 7일에서 2024년 24일, 지난해 25일로 크게 늘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올해까지 여름철 내내 폭염에 노출된 셈이다. 전남광주 지역의 폭염 일수는 전국적으로도 상위권이다. 전국 10개 권역과 비교해 2024년부터 올해까지 연달아 1, 2, 3위를 차지할 정도다.

전남광주가 유독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데는 습도에 있다. 폭염은 평년보다 기온이 매우 높아 심각한 더위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인 상태로, 일 최고 체감온도 33℃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때 폭염주의보가 발동된다. 체감온도는 기온뿐만 아니라 상대습도와도 밀접하다. 1990년 이후 풍향이 북서풍에서 남서풍으로 바뀌며 여름철에 서·남해안으로부터 다량의 수증기가 유입되면서 동일한 조건에서도 시민들이 실제 체감하는 온도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이다.

광주연구원에 따르면 2021~2023년 간 평균 상대습도는 광주가 80.5%로, 대구(66.7%)보다 13.9%p 높았다. 그러면서 체감온도는 광주가 36.2도로, 대구의 35.6도보다 0.6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분지 지형(광주권)의 경우 여름철 지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보행자의 체감온도를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실제 2021~2024년 전국 광역지자체의 인구 1만명당 온열질환 신고 건수를 살펴보면, 전남(현 전남권) 신고 건수는 13.9건으로 제주 다음으로 많았다. 광주(광주권) 또한 5.3건으로 특·광역시 중에서는 울산(6.5건) 다음이었다.

하지만 그늘이 있다면 달라진다. 가로수나 그늘막은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지표면 복사열을 억제해 체감온도를 낮춘다. 서울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가로수 그늘은 주변보다 15.4도(℃), 인공 그늘막 그늘은 주변보다 8.4도 낮았다. 폭염이 일상적 재난이 된 시대, 그늘이 도심 속 최소한의 생존 수단이자 복지가 된 이유다. 그러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행정은 그늘을 폭염 기간 동안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임시 편의시설’(그늘막)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무등일보가 전남광주 지자체의 폭염 관련 대응과 조례를 살펴본 결과, 대부분 무더위 쉼터 개방, 취약계층 냉방비 지원, 살수차 운행 등 단기 응급 대응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늘막 설치 계획이나 폭염·그늘지도 등도 전무하다. 그러다 보니 그늘막이 불균형하게 추진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실제 무등일보가 광주특별시 5개 자치구 그늘막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단독주택과 빌라·다세대 주택 등이 밀집한 노후화한 지역일수록 설치가 적었다. 실제 폭염에 따른 피해 가능성이 높은 광주지방기상청 ‘폭염 종합취약도’를 살펴보면, 이들 지역(봉선1동·신안동·오치2동 등)이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최고의 ‘자연 그늘’인 가로수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옛 광주시 조례에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 조례’가 있지만, 기후 재난에 대비한 중장기적인 계획 수립이 아닌 수종 선정이나 전지 작업, 안전 관리 등 관리 중심의 기준에 갇혀 있다. 가로수 등을 통해 도시의 그늘을 얼마큼 확대할 것인지나 폭염에 대비해 그늘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수형 관리 지침 또한 없다. 과도한 가지치기를 막을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부재하다. 윤한솔 광주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도로 확장이나 개발 설계 초기 단계부터 기존 대형 가로수를 우회하거나 그대로 살리는 설계를 우선 검토하도록 하는 등 가로수 그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확대하는 조례가 필요하다”며 “나무의 수령이나 그늘 면적까지 고려한 기준을 마련해야 실제로 시민들이 체감하는 그늘, 즉 그늘권이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이 밀집한 노후화 주택가의 경우 그늘이 부족해 폭염에 더 취약하다. 한 주민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전봇대 그늘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반면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은 그늘을 ‘기본권’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서울시가 폭염 속에서 시민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일상 보행 동선의 그늘을 끊김 없이 연결하는 ‘그늘보행권’ 정책을 도시정책 기본 원칙으로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뉴욕은 2040년까지 도시 전체의 수관피복률(나무 등을 통한 그늘 형성 정도)를 4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싱가포르는 주요 보행로를 중심으로 건축물 처마와 지붕형 그늘막, 가로수를 결합해 직사광선 노출 없이 도시를 이동할 수 있는 ‘그늘 회랑’을 만들고 있다.

다만, 광주특별시는 폭염 재난에 대비해 도시에 그늘을 형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관련 대책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특별시 관계자는 “폭염이 매년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도심 그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며 “직사광선이 심한 보행로 등을 중심으로는 디자인적 요소와 보행 편의를 결합한 ‘그늘 회랑’ 도입 등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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