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후퇴하는 성평등민주주의

@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입력 2023.06.25. 15:55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젠더사회규범지수(GSNI) 보고서(6월 12일 발간)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37개국 가운데 성평등에 반하는 편견이 가장 많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UNDP는 조사대상 국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교육, 신체 등의 영역에서 젠더 편견(gender vias)에 대한 인식수준을 조사해 2010∼2014년과 2017∼2022년 두 시기를 비교했다. 그 결과, 한국은 남녀 모두'성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인구' 비율이 칠레에 이어 가장 많이 감소한 나라로 나타나(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한국인의 비율은 10.12%에 그침, 스웨덴 68.24%·뉴질랜드 65.56%) 성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은 후퇴하고 성평등에 대한'백래시(반발)'는 급격히 증가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보고서를 발간한 UNDP는 젠더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성평등 인식수준을 높이는데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성평등 인식수준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성평등 인식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는 차별을 감지하는 능력인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국정운영이 필수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며 성평등 정책의 콘트롤타워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과거에 비해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젠더에 기반한 폭력(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스토킹, 교제폭력, 디지털성범죄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치적 대표성, 노동시장, 가정생활,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남성에 비해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유리천장지수는 가장 낮으며 (유리천장지수가 낮을수록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을 의미함)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과 사회참여 비율은 남성에 비해 낮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사 및 양육(돌봄)의 분담문화 확산은 더디기만 하다. 사회 안전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도 여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 이 모든 현황들이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성별격차지수에서 한국이 성별격차가 높은 나라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이 성평등 수준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구조적 성차별'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성평등 실현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성평등정책의 근간이 될 '제3차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에서는 의도적으로 여성과 성평등 용어를 삭제하더니,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비동의 간음죄'는 여성가족부 검토 9시간 만에 법무부와 여권의 반대로 철회되었다.

또한 작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평등을 '성에 대한 편견', 성소수자를 '성별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로 바꾸고, 이미 수십 년 동안 사용되어 오던 '섹슈얼리티(sexuality)'용어를 삭제했다. 이를 두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전반에 인권과 평등,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반영하고, 특히 젠더(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를 근절하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교육과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으며 대한성학회는 "WHO, UN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국제기준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 건강 복지를 위해하는 심각한 퇴행"이라고 주장하였다.

국민의 성평등 인식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고 평등 및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성평등 교육을 확대해 나가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는 성평등 백래시를 부추기고 젠더 갈라치기를 통해 갈등과 반목, 혐오가 난무하는 분열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차이와 다양성,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화합과 포용사회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통합과 포용사회 조성을 지향한다면, 그 어느 때 보다도 젠더갈등과 혐오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와 성평등교육을 확대, 강화해 나가야 한다. 성평등의 실현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다.?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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