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N살의 광주 활동가 "부끄러워서 행동합니다"

입력 2022.11.01. 18:27 이삼섭 기자
[지방청년희망보고서⑨] 김유빈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이사
이주노동자 '착취' 접하며 사회운동 결심
여성·평화·환경·지역 문제 등 다양히 활동
'유출' 대신 '거주'에 청년 문제 집중해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도시 꿈꿔
김유빈 활동가는 5·18을 처음 마주한 것을 시작으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 사진은 올해 1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신년 시민사회합동시무식에서 청년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지방청년희망보고서⑨] 김유빈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이사

김유빈씨는 나이는 위계가 있다며 본인의 나이를 3N살로 표기해달라고 했다. 누군가의 호명으로 정체되는 '청년' 대신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바랬다. 지역 문제에 관심 갖고 활동하고 싶은 그는 지역의 경계지음은 거부했다. 공무원이 적성이라는 그는 앞에 나서 목소리를 내고 설득하고 때론 싸워야 하는 활동가를 하고 있다. 여성·청년·환경·정치·지역 의제·기타 모든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행동한다. 분리 대신 연대, 무관심 대신 관심, 정형화 대신 다양화된 사회를 꿈꾸며 오늘보다 내일의 광주가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위계를 경계하는 '부산계 광주' 활동가

"평상시처럼 소개하면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에서 활동하는 김유빈입니다. 따로 더 소개하면 여성이나 평화,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싶은 유빈이고요."

유빈 씨는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선이 명확히 그어진 한 영역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5·18 관련 활동으로 시작해 여성, 청년, 평화, 환경, 지역 의제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렇기에 '활동가'가 그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고 한다.

비슷하게 유빈 씨는 나이 또한 밝히기를 조심스러워했다. 나이에는 위계가 있어 서로 알게 되는 순간 서열이 생긴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한국의 서열 문화의 시작이 나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이에서 비롯된 위계는 수평적 소통 문화를 막고 차별, 폭력, 억압 등의 그늘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특히 광주라는 지역이 폐쇄성이 짙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부터 나이를 아는 순간 연장자에는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연하에는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가 먼저 경계하기로 했다. 만나면 나이를 밝히는 게 어쩌면 '덕목'과도 같은 사회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다.

고향 또한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태어나 유년기 전남으로 이주해 온 그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게 어려웠다. 태어난 지역이지만 소속감도, 기억도 거의 없는 부산을 고향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한가를 매번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찾은 답이 '부산계 광주 사람'이다.


◆해외서 마주한 부끄러운 한국의 '자화상'

"사회에서 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라는 생각은 기본으로 있었어요. 나 혼자만을 위해 살다 죽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활동가를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으레 그렇듯 그도 처음부터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서는 걸 싫어하고 가만히 앉아 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활동가는 그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도전'이었다.

"나서서 얘기해야 하고, 끊임 없이 생각해야 하고 의견이 다를 때는 듣기도 하지만 설득도 해야 하죠. 행동해야 하는 직업이라 매번 저에게 도전이지만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요."

한 때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았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 공무원 시험 준비까지 했었다. 그러나 어느 계기에서 그의 진로에 변화가 크게 바뀌게 됐다. 바로 5·18기념재단에서 자원활동가로 첫 일을 하게 된 것.

5·18기념재단 근무 당시 자매결연을 맺은 태국의 한 NGO단체에 파견을 나갔던 때였다. 그곳에서 일하던 현지인 동료가 한국에서 발생했던 이주노동자 폭행·노동착취로 인한 사망한 사건에 대해 그의 생각을 물어 왔다. 그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너무 부끄러운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비단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한국 내에서 만연한 불평등, 폭력 등은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그 때 책상에 앉아서 될 일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시민사회에서 활동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마침 과도 인류학이다보니 교수님들 중에 시민사회에 활동하고 계신 분이 많았어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싶다하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싶은 청년들이 없었어가지고…."

김유빈 씨는 모든 시민이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남북철도잇기 한반도평화대행진' 당시 모습

◆부끄러운 게 싫어서 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다 보면 공부해야 할 것도, 지칠만도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 끊임 없이 드는 '부끄러움'이 유빈 씨를 쉼 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됐다. 예컨데 유빈 씨가 환경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스스로 환경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연대의 의미로 환경단체 회원이 됐다.

"여러 의제를 하다 보면 산발적으로 공부하는 게 사실은 힘들어요. 하지만 알고 나서도 가만히 있는 게 더 어려워요. 이게 어떤 마음일까 최근에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은 부끄러운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알면서도 행동하고 나서지 못하는 모든 것에서 부끄러운 걸 느끼는 것 같아요. 모든걸 행동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가 알고는 있어야 겠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알고 난 이후 여건이나 기회가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이고요."

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가치지향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질문이 많은 사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게 싫은 사람이고, 모르는 것에 실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경우라도 잘 모르면 제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게 돼요. 그래서 책을 엄청 많이 사요 사회과학책을 특히. 근데 잘 안 읽게 돼요." 유빈 씨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청년 유출에만 집중…지역 목소리 들어야

많은 활동 중에서도 특히 유빈 씨는 최근 '청년 삶 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 사회가 광주 밖으로 유출되는 청년에게만 집중하면서 정작 오늘 지역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에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하지 않는다는 문제 의식에서 하게 됐다.

"지역에서 자꾸 청년 문제라고 하면 소멸, 유출과 같이 지역을 떠나는 청년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살려는 청년들이 많은데 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청년 유출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역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이 분리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빈 씨가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장 가는 의제는 평화다. 어떤 활동을 하든 가장 기본적으로는 평화가 기본적으로 바탕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활동을 넘어 모든 시민들이 당연하게 하고 있는 생활이 영위가 되려면 평화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그도 평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평화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분단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기본 담론인데, 이를 노력해서 의제화해야 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아요. 분명 정전국가인데 약간 풀어진 느낌이랄까요. 경각심이 필요한 의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보듯이 평화는 당연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전쟁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평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유빈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이사가 1일 무등일보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잼도시? "콘텐츠 없는 건 사실이지만…"

"맥락만 보면 청년들에게 재미 없는 도시라는 것 같아요. 근데 왜 청년에 무엇이 재밌는지 물어보지를 않죠?"

최근 광주를 지배하고 있는 '노잼(재미가 없다는 뜻)' 담론에 대해서 유빈 씨는 할 말이 많았다. 광주는 청년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잼 담론이 청년층에 머물고, 이마저 정작 청년들의 요구가 아닌 외부에서 호명된다는 문제 의식이다. 결국 노잼 담론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들과 분리된 채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노잼담론을 촉발시킨 '콘텐츠 부족'에 대해서는, 부족을 넘어 '없다'고 단언했다. 분명히 자원은 많지만 콘텐츠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빈 씨는 이 문제를 '이야기되는 방식'에서 나온다고 해석했다.

"광주를 이야기할 거리는 많다고 생각해요. 이야기할 건 많은데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하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 어떻게 보면 이야기되는 방식이 올드하다고 볼 수 있는데, 마치 2020년대를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이야기하는 방식은 해마다, 시대마다 바뀌는 데…. 어쩌면 이 도시의 방식일 수 있지만요."

유빈 씨는 결국 다양성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더 나은 광주를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성을 볼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회가 있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야 해요. 이야기를 하고 받아들여지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도시. 결국 외롭지 않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닐까요."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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