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1년 지났어도
머릿속 맴맴 일상 생활 어려워
정신적 고통 개인 기질로 낙인
공상 신청땐 반려해 높은 벽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맞은 지 1년이 지났다. 참담했던 유가족들의 고통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가운데 그날의 또다른 당사자였던 소방관들도 깊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시름하고 있다. 참혹한 현장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며 소방관들은 트라우마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이 같은 고통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당하는 현실 속에서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무등일보는 대형 참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기억과 고통을 통해 트라우마가 더 이상 침묵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할지 함께 고민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2024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검게 그을린 동체, 뒤엉킨 좌석, 바닥에 흥건히 고인 체액과 항공유 냄새 속으로 소방관들이 들어갔다. 생존자를 찾는 손길은 곧 시신을 수습하는 손길로 바뀌었다. 찢긴 옷가지와 가방, 시계, 여권들이 구조대원들의 발밑에 흩어져 있었다. 그날의 장면은 그렇게 각자의 머릿속에 남았다.
참사 이후 한 달, 두 달, 일 년 다 되도록 현장은 그들의 머릿속을 맴돌며 괴롭게 했다. 전남소방본부에서 참사에 동원된 소방공무원은 모두 1천2명. 네 명 중 한 명(243명)은 "잠을 잘 수 없다", "현장이 반복해서 떠오른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치료군'으로 분류된 인원만 52명에 달했다. 191명은 지속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한 '관심군'으로 관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는 숫자일 뿐. 이들의 고통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은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마다 잠에서 깨고, 비슷한 냄새만 맡아도 숨이 막힌다. 현장에 다시 투입될까 두려워 출근길이 무거워진 이들도 많다.
하지만 소방관들의 고통은 좀처럼 공무상 재해(공상)로 인정받지 못한다. 입증 책임은 물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의료 기록 등 자료 준비를 모두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신 질환을 '개인 기질'로 보는 내부 인식이 있어 공상 신청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PTSD와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소방관이 급증했지만 실제 공상 신청으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

28일 무등일보 취재 결과 최근 4년간(2021~2024년) 소방공무원 공상 신청 5천522건 가운데 정신질환은 98건(1.8%)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4건(24.4%)은 반려 혹은 보류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한 소방공무원은 정신질환으로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으나 불승인 판정을 받은 뒤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광주·전남지역으로 좁혀보면 같은 기간 광주에서는 지난해 정신 질환을 사유로 1건이 신청됐다. 전남에서는 2021년과 2023년 각각 우울증 1건씩, 지난해 조현병 1건 등 총 3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두 건(우울증)은 인정받았으나 1건(조현병)은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그에 비해 물리적 상해를 포함한 전체 공상 신청 건수를 살펴보면 광주는 1건, 13건, 21건, 23건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전남도 83건, 73건, 122건, 125건으로 급증했다. 반면 정신 질환을 이유로 한 공상 신청의 경우 광주는 한 건, 전남은 4개년에 걸쳐 3건에 그쳤다.
언뜻 보면 공상 인정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공상 신청 자체는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실제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소방관 수에 비해 과도하게 적은 수치라는 게 내·외부의 공통적 목소리다. 현장 소방관들이 공상 신청을 신청해도 인정받기 어렵고, 오히려 낙인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남소방 소속 A씨는 "공상 신청 기록은 전 국민과 동료, 지인 모두가 볼 수 있어 낙인 공포가 크고 승진 신청에서도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다"며 "공상 신청을 하려면 책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혼자 준비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아파도 말 못 하고 끙끙대다가 혼자 극단적 선택을 하는 동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개인의 공상 입증 부담을 완화하고 소방관의 공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넓힌 '공상 추정제'가 도입됐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노무법인무등 정미선 공인노무사는 "건강보험이나 요약급여내역 10년 치 등 다른 서류는 그렇다 쳐도 당장 개인이 본인만 확인할 수 있는 최초 병원진단부터 최근까지 모든 의무기록을 제출해야 하니 거기서부터 많은 소방관들이 신청을 포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상 추정제가 생겼지만, 특정 업무로 인해 내가 그 질병을 얻었다는 인과관계를 소명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며 "정신 질환의 경우 '극한적 사고'에 한 해 인정해 주고 있는데, 소방관은 사고 현장에 반복 노출되면서 정신적 고통이 누적되는 게 일반적이기에 입증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공상을 인정받기 위해 제출한 병력을 트집 잡아 '원래 기질적으로 있던 거 아니냐'며 개인 질병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정부와 지방정부가 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광국 전남도의원(무안2)은 "1년 전 여객기 참사에 이어 도서관 붕괴 등 사회적 재난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며 "일선서에 공상 처리 전담조직을 설치하는 등 소방본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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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참상에 무너진 소방관의 삶…조직·국가는 침묵
작년 말 광산구 한 독립공간에서 만난 전남소방 소속 A소방관은 "PTSD와 우울증을 진단받고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동료 소방관들에게 구조됐다"고 고백했다. 현재 A씨는 과거 상처를 딛고 지역에서 수많은 생명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운전자 몸을 젖혀봤는데…절반이 없었습니다. 그날, 반쯤 넋이 나갔죠."지난 2019년 전남 화순에서 발생한 고속도로 사망사고를 회상하는 전남소방 소속 A 소방관의 손끝이 떨렸다. 오랜 기간 그를 괴롭히던 참상들을 떠올리는 데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소방관을 무너뜨리는 건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처럼 전국이 기억하는 대형 참사만이 아니다. 균열은 일상에서 반복된다.◆10년 차 베테랑도 무너뜨리는 현장119구급대 응급구조사인 A 소방관은 2020년 전남의 한 요양원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새벽, 후진하던 쓰레기 차량에 노인이 치였다. "캔처럼 찌그러진 머리를…육안으로 봐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 그는 악몽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침대보가 땀으로 젖는 날이 늘었다. 피비린내와 비명, 아비규환 같은 장면이 오감에 새겨졌다. 사망 현장에 출동할 때면 절규가 선연하게 들려왔다. 죽음의 냄새는 그의 코끝을 조여왔고 쌓여가는 참상만큼 그의 삶은 무너져갔다. 참혹한 현장을 수습하고 돌아오면 유독 말수가 줄었다. 가족과의 대화마저 점차 끊기며 관계가 단절돼 갔다. 몸이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게 잦아졌다.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숨이 막혔다. A 소방관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연달아 받았다.A 소방관은 10년 넘게 응급현장에서 일했다.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켜 '하트 세이버'로 여러 차례 선정될 만큼 잔뼈 굵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아무리 참혹한 현장이라도 충분히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라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료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다고,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소방관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족쇄다.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돼 더는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떨어뜨렸다."허공에 떨어지던 저를 붙잡은 건 동료들이었습니다. 소방관이 소방관에게 구조되는 기분이 어떤지 아십니까?" 극단적 선택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가 된 그의 말이다. 당시 흐릿한 시야 끝에 주황색 구조복이 보이자 밀려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 순간을 두고 A 소방관은 동료 대원들에게 '붙잡혔다'고 표현했다. 현장에서, 삶에서 도망치던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다.그가 무등일보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동료들이나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세상을 등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또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받으려면 많은 이들이 실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그가 존경하던 선배 소방관 또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년 넘게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던 그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였다. A 소방관은 더는 동료들이 홀로 고통을 감내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제도적 공백에 고통…'쉬쉬' 내부 분위기도A 소방관처럼 수많은 소방관이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질환을 안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소방관의 트라우마는 직무와 직접 연결돼 있음에도 이를 공무상 재해(공상)로 인정받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 실제 공상 신청 과정에서 요구되는 서류는 의료기록부터 현장보고서까지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정신질환은 특히 '업무 연관성'을 본인이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게 현실이다."정신과 진료기록, 입원 기록, 현장보고서 등 많게는 11가지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해 동료들이 십시일반 도와주거나 큰돈을 들여 노무사에게 의뢰하는 형편입니다." A 소방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2023년 6월부터 공상추정제가 도입됐지만 소방서마다 편차가 크고 여전히 당사자나 유족이 직접 트라우마를 증명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동료들이 공상 신청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그의 입가에서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일부 일선 소방서에서 공상 신청을 자체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진도소방서가 소속 소방관의 공상 신청을 대신 처리한 선례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정신건강을 이유로 한 공상 신청은 더 어렵다는 게 소방관들의 증언이다.공상 신청의 '어려움'은 서류의 무게만이 아니다. 사회적 낙인이라는 공포감이다. 공상 신청이나 병가 내역은 내부 전산망에서 다른 직원도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급자에게 상담을 요청해도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면서 돌아서면 '나약한 직원'으로 낙인찍혀 있다는 것이다. A 소방관 역시 세상을 등지려는 결심에 앞서 병가를 냈을 때 소속 센터장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다. 뒤에서 들리는 "약한 소리 한다"는 수군거림은 고통을 더 키웠다.'낙인'의 공포는 소방관들의 습관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A 소방관은 동료들이 미리 유서를 써 관물대에 넣어 두거나 컴퓨터에 저장해 둔다고 했다. A 소방관 역시 유서를 써놓았다. 이날 그가 보여준 유서에는 "요구조자를 미워하지 말라. 나의 죽음에도 슬퍼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소방재난본부는 2016년부터 동료 심리상담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현장 신뢰는 높지 않다. 상담 기록이 결재 라인을 타고 올라간다는 불신이 크다는 것이다. 상담을 받는 당사자도 상부에 '휴식' 사유를 보고해야 하는데 이는 정신상담 받았다는 사실을 조직에 공표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현장에서 20~30년씩 근무한 소방관들이 1~3년 차 상담관에게 진심을 털어놓기 어려운 분위기 또한 있다.◆"아픈데 말할 곳이 없다"…설문이 보여준 현실무등일보는 현실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한 달여간 광주·전남 소방관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소방관을 중심으로 응답받았으며 총 22명(현장직 18명·행정직 4명)이 참여했다.응답자의 72.7%(16명)는 "PTSD·우울증 등을 진단받았거나 이에 준하는 증상이 있다"고 답했다. 현장대원들의 극한 출동 빈도도 높았다. 매달 사망사고나 중상해 사고 현장 출동 횟수를 묻자 55.6%가 '1~3회', 22.2%가 '4~5회'라고 답했다. '6회 이상'도 22.2%였다. 적지 않은 대원이 한 달에 여러 번 참상을 마주하고, 그 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다음 출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우울이나 불안 등 감정이 악화될 때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지를 묻자 '마땅한 방법이 없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36.4%로 가장 많았다. 운동(31.8%), 음주(13.6%), 독서·영화 등 예술활동(9.1%)이 뒤를 이었다. '동료에게 털어놓는다'는 답은 9.1%에 그쳤다. 가장 가까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확인된 셈이다.소방청의 마음건강 상담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말에는 77.3%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지역별 관리체계 부족, 상담 전문성 미비, 연계 병원 부족, 참여 시간 제약, 보여주기식 행정 등이 언급됐다. 특히 누가 상담받았는지 내부에 쉽게 알려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한 응답자는 "상담이 체크리스트 돌리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일하다 다치면 관서 평가에서 감점돼 쉬쉬하게 된다"고 토로했다.그러다 보니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위험 노출에 따른 정신 질환은 공상으로 인정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실제 광주소방의 한 소방관은 최근 구급차 바퀴가 자주 빠지는 바람에 공황장애가 발생해 공상을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업무상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업무 환경 특성상 위험이 반복돼 공포가 누적되는 경우조차 '업무 인과'로 보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전문가들은 "정신질환 공상은 개인 입증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우선 신청 단계부터 서류를 국가가 일원화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부 열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상담 기록이 평가·인사에 불리하게 쓰이지 않도록 제도적 방화벽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극한 사건' 한두 번으로만 정신질환을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 교대제·반복 노출·상시 긴장 같은 직무 특성을 반영한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정미선 노무법인무등 공인노무사는 "소방 업무에서 맞닥뜨리는 극한 상황에서 PTSD가 올 수 있지만, 교대제다 보니 수면 장애가 있을 수 있고 항상 자신이 불기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긴장감도 갖고 있다"며 소방관에 대한 공상 요건을 보다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최류빈기자 rubi@mdilbo.com※본 보도는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제2장(15조)에 따라 재난상황의 본질에서 벗어난 흥미위주의 내용, 선정적 설명을 최대한 지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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