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사라져도 소녀들의 역사는 남는다

입력 2026.08.31. 19:43 이용규 기자
광복 81주년 기획:임동 방직공장, 기억을 잣다
<프롤로그>
일제이후 지역여성노동 산증인
소녀들 담장안 감시와 혹사
280개 건물중 5곳만 남아
노동자들 땀과 눈물 오롯이
복합쇼핑몰 아파트 공사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대형 복합쇼핑몰인 ‘더현대 광주’가 오는 2028년 개점을 목표로 본격적인 기초 공정에 들어간 가운데 25일 북구 임동 도심 한복판 더현대 광주 공사 현장에 초대형 프로젝트를 위한 공사가 시행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한때 근대기 동양 최대 방직공장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성노동자들을 감시하던 병영같은 기숙사와 망루도 없어지고, 몇 개의 낡은 시설만이 91년의 과거를 말할 뿐이다. 공장 둘레를 에워싼 담벼락을 대신한 철골 가림막은 요새처럼 더 높이 둘러쳐져 있다. 공장건물이 허물어진 널따란 부지 위에는 대규모 복합쇼핑몰과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광주시 북구 임동 100-1번지, 옛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의 전신인 종연방적(일본명 가네보) 임동공장 자리다. 새 주소로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경양로 9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지도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착취 현장이다. 1935년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잘려나가고 지역민의 문전옥답에 세워진 종연방적 전남공장은 노동력 수탈과 조선 경제의 블랙홀이었다. 이 땅에는 91년의 여성 노동사가 묻혀있다.

공장을 감싸고 있는 3~4m 높이의 담장과 망루는 도둑을 막는 방호시설임에도 어린 소녀들에게 위협의 대상이었다. 정문은 육중한 철문으로 닫혀지고 성벽같은 담장은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숫자보다 노래에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래에서는 무섭고 서러웠던 애잔함이 전해진다.

‘동지섣달 진진밤에 밤잠 못자고 이삼 사흘 긴긴해에 바람 못쐬고 오뉴월 더운날에 바람못쬐고 인정없고 사정없는 쓸쓸한 종방, 문방놈아 잡지마라 갈길바쁘다, 기차 소리 한번 나면 그만이로시.’

종연방적은 1935년 임동공장을 건립하고 총독부 비호아래 지역의 토지와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다. 쌀과 보리중심의 전통적 농업구조에서 면화와 양잠재배로 내몰았다. 민중들의 삶은 피폐됐고 전남광주는 먹는 식물재배에서 일제의 상품원료 보급지로 전락했다.

당시 종연방적은 기술력으로는 가장 최신식 장비를 갖췄음에도 실질적으로 공장을 움직인 이름은 어린 소녀들이었다. 법적 기준 14세(종방 규정 17세 미만)보다 낮은 소녀들이 입에 풀칠도 힘든 돈을 받고, 먼지가 풀풀 날리고 숨이 헉헉 막히는 작업장에서 하루 12시간씩 무명실을 뽑아냈다. 담장안에 갖힌 채 땀과 눈물로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감시와 폭력이었다.

일제 패망후 종연방적 적산처리는 지역민을 분노케 했다. 공장유치에 강제로 빼앗긴 삶의 터전이 외부인의 손에 넘어갔다. 지역과 무관한 이들이 광주사람의 땅과 종연방적의 재산을 불하받은 것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해방이후 다시 전방과 일신방직으로 갈라진 두 회사는 대한민국 수출 전진기지로 거듭난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기계앞에 다시 여성들이 섰다. 1960년~1980년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기계앞을 지킨 여성들의 땀과 눈물이 일궈낸 노동의 결실이었다. 종연방적의 크고 작은 280개의 건물들은 사라지고 오직 5곳만이 91년의 시간과 역사를 기억나게 할 뿐이다. 이 터위에는 복합쇼핑몰과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이 공간들은 2029년 완공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일제 수탈의 만행은 불도저의 발톱 아래 묻히지는 않는다.

임동 100번지의 역사는 광주를 담아내는 한편의 조각이다. 대부분 건물이 땅속으로 파묻혔지만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향했던 소녀들, 담장안 기숙사 생활, 해방이후 산업화의 여성들 그리고 개발과 함께 사라진 산업유산까지. 광복 81주년을 맞아 임동 100번지에 남겨진 시간을 따라간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김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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