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구름천사' 등 4천점
양과동 미술관에 무료 전시
'모방 없는 나만의 그림' 철학

"그저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19일 오전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서 만난 노의웅(82) 화백의 말이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노 화백에게 남은 목표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노 화백은 "'계속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분명한 목표"라고 말했다.
노 화백의 첫 그림은 '상상 속'에서 시작됐다. 크레용이나 도화지조차 없던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는 들판과 하늘이었다. 들판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리는 법'을 익혔다. "구름 모양이 계속 변하잖아요. 그 형상을 따라 상상하다 보면 온갖 그림이 다 나왔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교실마다 붙일 포스터를 도맡아 그렸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눈에 띄어 그리는 그림마다 칭찬을 받았다. 노 화백은 "보지 못한 대상을 상상으로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그때부터 상상 그림을 계속 그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노 화백은 자연스럽게 미술의 길로 접어들어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풍경화 작업을 오래 했다. 전남 곳곳을 찾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러다 작업을 이어가던 중 스스로에게 문득 질문을 던졌다. '남들과 같은 그림을 계속 그려도 되는가.' 노 화백은 "미대 학장까지 했는데, 내 세계가 없는 작품을 계속하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컸다"고 했다. 그 질문은 결국 작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후 노 화백은 작품을 완성하면 반드시 인터넷 검색부터 했다. 완성도와 별개로 유사한 작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고심 끝에 그린 작품도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면 미련 없이 폐기했다. 이런 과정을 스무 차례 넘게 반복한 끝에, 그의 대표작 '구름천사'가 탄생했다. 노 화백은 "나만의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지구 반대편에 비슷한 게 있으면 그건 폐기 처분했다. '모방 작가'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어렸을 때 하늘을 보며 상상했던 기억이 결국 구름천사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구름천사는 구름 속에서 천사의 형상이 드러나는 상상적 이미지다. 모든 작품의 제목은 동일하게 '구름천사'로 붙는다. "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곳 천사들이 사는 곳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한 그림이다.
수천 점에 이르는 작품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 역시 첫 번째 '구름천사'다. 노 화백은 "처음 그렸던 구름천사를 보고 '아, 이건 정말 내 그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지금까지도 여러 크기의 캔버스에 구름천사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노 화백은 삶의 공간도 바꿨다. 도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인 양과동으로 내려온 지 7년째다. 이곳에 미술관과 작업실, 수장고를 함께 마련했다. 노 화백은 "시내에서는 화실 따로, 집 따로니까 춥다고 안 나가고 그러다 보면 작업을 못 하게 된다"며 "여기서는 출근길이 10m도 안 된다.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하루에 10시간씩 매일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노의웅 미술관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작품을 교체한다. 수장고에 보관된 4천여 점의 작품 가운데 안 걸었던 그림을 찾아 전시하고, 철수한 작품은 다시 수장고로 옮긴다. 미술관 문은 밤낮 없이 열려 있어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볼 수 있다.
최근 그의 작업은 미술관 안을 넘어 동네로 확장됐다. 미술관 바로 앞,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낡은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노 화백은 허술해 보이던 담을 정리한 뒤 세계 여러 나라 국기를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꼬박 열흘을 매달려 완성한 '만국기 벽화'는 그의 새해 첫 작품이다.
노 화백은 "벽화 하면 꽃 같은 게 많지 않은가. 근데 만국기는 거의 없더라.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만국기를 그려 넣으니 화려하고 보기 좋다며 주민분들이 말씀해 주셨다"고 웃었다.

다만 노 화백은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노 화백은 "나의 예술 철학과 작품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다"며 "덕분에 수장고에는 수천 점의 작품이 남았다. 아마 본인 작품을 이렇게 많이 소유한 화가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과 공간이 자신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주변 부지를 확보해 전시 공간을 넓히고, 제2·제3 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미술계에 입문한 두 명의 자녀가 다음 세대에도 이를 이어가 주길 바라고 있다.
노 화백은 "오늘도, 내일도 작업실 문을 열고 그림을 그릴 것"이라며 "그림을 그리는 하루하루, 그 자체가 내 인생"이라고 말했다.

노 화백은 광주 출신 서양화가로, 60여년 동안 행복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예술공론상과 광주시민대상, 오지호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노의웅 미술관은 광주 남구 양과동 966-1에 위치해 있으며,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이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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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유학생 레 후후이씨 "바인쯩 그리움, 떡국으로 달래요"
베트남 유학생 레 후후이씨
설 명절을 앞두고 캠퍼스 곳곳이 고향으로 떠날 채비에 들뜬 활기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이 이미 가족의 품을 향해 달리는 이 시간 동신대학교 한 연구실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책상을 지키며 차분히 새해를 맞는 청년이 있다. 호텔외식관광경영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베트남 유학생 레 후후이(26)씨다. 민족 대이동의 분주함 속에서도 그는 연구와 학업이라는 자신만의 보폭으로 타국에서의 또 한 번의 설을 준비하고 있다.레씨의 한국 생활은 어느덧 6년째다. 한국 영화와 K-팝을 통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2019년 한국어 연수를 위해 처음 광주를 찾았고, 2021년 동신대에 입학해 학부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호텔·관광 분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 행정보조 업무를 병행하는 생활은 쉽지 않지만, 그는 매일 한국어 공부와 연구를 이어가며 낯선 환경에 조금씩 뿌리를 내려 왔다.명절이 다가오면 레씨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고향의 설 풍경이다. 베트남에서 설은 ‘뗏 응우옌단’으로 불린다. 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뗏 응우옌단에는 가족들이 밤새 모여 전통 음식 ‘바인쯩’을 만든다. 찹쌀과 돼지고기, 녹두를 바나나 잎에 싸 오랜 시간 쪄내는 이 음식은 단순한 명절 요리를 넘어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의 상징이다. 한국에서 맞는 설날마다 그가 가장 그리워하는 장면이기도 하다.명절의 정서는 국경을 달라도 닮아 있었다. 한국에서 덕담을 나누고 세뱃돈을 건네는 풍경은 베트남의 ‘리시’ 문화와 비슷했다.그는 “베트남처럼 한국에서도 세뱃돈을 준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두 나라가 서로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한국에서의 설 또한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올해 신정에는 교수들과 함께 떡국을 나눴다.그는 “떡국의 국물이 따뜻해서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베트남 음식과는 다른 담백함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레씨는 올해 고향을 갈지 말지 고민 중이다. 3년 전 잠시 다녀온 이후 그는 베트남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은 간절하다.레씨는 “명절 항공료가 100만원을 넘기 때문에 유학생들이 고향에 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등록금을 더 쉽게 마련하려면 명절 연휴에 일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가족과 떨어진 명절은 조용하고 때로는 외롭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삶을 넓혀 주고 있다고 믿는다. 타국에서의 배움과 경험이 결국 더 큰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호텔·관광 분야에서 일하며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싶다는 꿈도 그 길 위에 놓여 있다.레씨는 “한국 사람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올해도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 이것이 내 소망이다”고 전했다.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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