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점장으로 사인회 진행
신간 50권 한시간만에 소진
공 작가 “광주 오면 눈물난다”

소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이 11일 광주 광산구청 1층 장애인 일자리지원 카페 '카페홀더'를 찾았다. 이곳은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으로 청각·지체장애인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일터다.
공 작가는 이날 명예점장으로 시민들을 맞았고 하동 귀촌 이후 문화 활동을 함께 이어온 하동책방도 동행해 자리를 따뜻하게 채웠다. 장애인 고용 현장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사인회에서 준비된 신작 에세이 50권은 한 시간 만에 모두 소진되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카페홀더 앞은 행사 시작 전부터 신간을 구매하려는 시민들로 붐볐다. 서가를 살피며 "작가를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라며 설렘을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고, 공 작가가 앞치마와 명예점장 배지를 달고 등장하자 반가움을 담은 인사와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사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공 작가를 만나려는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작가님 글로 제 삶이 달라졌다", "광주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작은 선물을 건네는 시민도 있었고, 서로 휴대전화를 맞바꿔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독일에서 생활하다 고향 나주를 찾았다는 김무진(77)씨는 "광주에서 사인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왔다"며 "'도가니'를 읽고 사회문제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약자 곁에 있으려는 작가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이 카페가 피해자 자립을 위해 시작된 공간이라고 들었다. 그런 곳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는 일이 더 깊게 와 닿는다"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 공 작가의 '의자놀이'를 읽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서은아(30)씨는 "학창 시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를 다룬 글을 읽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생겼다"며 "카페홀더 설립에 작가가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오늘 들었는데, 책 속 메시지가 공간으로 이어진 느낌이었다. 마지막 50번째 책을 구매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장애인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조용히 줄을 서 있다 작가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등 서로 다른 배경의 시민들이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문경양 광주장애인미술협회장은 "여성폭력·가정폭력·장애인 인권 문제는 쉽게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주제인데, 공 작가가 오래 꾸준히 이야기해줘서 많은 장애여성들이 큰 용기를 얻었다"며 "협회 회원 150명이 미술로 자립을 꿈꾸고 있다. 카페홀더처럼 장애인이 능력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 한쪽에서는 드립백·원두·머그컵·쿠키·'도가니' 음반CD 등을 판매하는 부스가 운영됐다. 시민들은 대기 시간을 활용해 기념품을 골랐고, "수익이 장애인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는 설명에 가방에 하나씩 더 담는 이들도 있었다. 제품을 고르는 손길마다 행사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약 100여 명이 다녀갔고, 현장에서 책을 받지 못한 50여 명은 추가 주문을 신청했다. 추가분은 공 작가의 사인이 모두 완료된 뒤 개별 배송될 예정이다.

카페홀더의 역사는 이날 현장의 의미를 더했다. 2011년 도시철도공사 1층에 1호점이 문을 열며 인화학교 피해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2013년 광산구청점(2호점)이 뒤를 이었다. '홀로 삶을 세우되 더불어 산다'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바리스타 교육·직무체험·작은 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장애인 고용 모델을 확장해 왔다.
김용목 카페홀더 대표는 "작가님과는 20년을 이어온 인연이다"며 "광산구청점이 문을 열 때 작가님과 출판사 창비가 약 1억원씩 후원해준 덕에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운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늘처럼 시민들이 공간의 의미를 함께 느껴주는 자리가 직원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공지영 작가는 "광주만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한다. '도가니'를 취재하러 왔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2년에 한 번씩은 꼭 광주를 찾고 있다. 광주는 언제 와도 따뜻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오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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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에서 시작된 그림 인생···구름천사, 노의웅 화백
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 앞 담벼락에 그린 만국기 벽화를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그저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19일 오전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서 만난 노의웅(82) 화백의 말이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노 화백에게 남은 목표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노 화백은 "'계속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분명한 목표"라고 말했다.노 화백의 첫 그림은 '상상 속'에서 시작됐다. 크레용이나 도화지조차 없던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는 들판과 하늘이었다. 들판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리는 법'을 익혔다. "구름 모양이 계속 변하잖아요. 그 형상을 따라 상상하다 보면 온갖 그림이 다 나왔지요."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교실마다 붙일 포스터를 도맡아 그렸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눈에 띄어 그리는 그림마다 칭찬을 받았다. 노 화백은 "보지 못한 대상을 상상으로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그때부터 상상 그림을 계속 그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노 화백은 자연스럽게 미술의 길로 접어들어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초기에는 풍경화 작업을 오래 했다. 전남 곳곳을 찾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러다 작업을 이어가던 중 스스로에게 문득 질문을 던졌다. '남들과 같은 그림을 계속 그려도 되는가.' 노 화백은 "미대 학장까지 했는데, 내 세계가 없는 작품을 계속하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컸다"고 했다. 그 질문은 결국 작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 옆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후 노 화백은 작품을 완성하면 반드시 인터넷 검색부터 했다. 완성도와 별개로 유사한 작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고심 끝에 그린 작품도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면 미련 없이 폐기했다. 이런 과정을 스무 차례 넘게 반복한 끝에, 그의 대표작 '구름천사'가 탄생했다. 노 화백은 "나만의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지구 반대편에 비슷한 게 있으면 그건 폐기 처분했다. '모방 작가'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어렸을 때 하늘을 보며 상상했던 기억이 결국 구름천사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구름천사는 구름 속에서 천사의 형상이 드러나는 상상적 이미지다. 모든 작품의 제목은 동일하게 '구름천사'로 붙는다. "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곳 천사들이 사는 곳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한 그림이다.수천 점에 이르는 작품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 역시 첫 번째 '구름천사'다. 노 화백은 "처음 그렸던 구름천사를 보고 '아, 이건 정말 내 그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지금까지도 여러 크기의 캔버스에 구름천사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 전시된 '구름천사'를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작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노 화백은 삶의 공간도 바꿨다. 도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인 양과동으로 내려온 지 7년째다. 이곳에 미술관과 작업실, 수장고를 함께 마련했다. 노 화백은 "시내에서는 화실 따로, 집 따로니까 춥다고 안 나가고 그러다 보면 작업을 못 하게 된다"며 "여기서는 출근길이 10m도 안 된다.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하루에 10시간씩 매일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노의웅 미술관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작품을 교체한다. 수장고에 보관된 4천여 점의 작품 가운데 안 걸었던 그림을 찾아 전시하고, 철수한 작품은 다시 수장고로 옮긴다. 미술관 문은 밤낮 없이 열려 있어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볼 수 있다.최근 그의 작업은 미술관 안을 넘어 동네로 확장됐다. 미술관 바로 앞,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낡은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노 화백은 허술해 보이던 담을 정리한 뒤 세계 여러 나라 국기를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꼬박 열흘을 매달려 완성한 '만국기 벽화'는 그의 새해 첫 작품이다.노 화백은 "벽화 하면 꽃 같은 게 많지 않은가. 근데 만국기는 거의 없더라.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만국기를 그려 넣으니 화려하고 보기 좋다며 주민분들이 말씀해 주셨다"고 웃었다.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 전시된 '금강산의 향연'을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다만 노 화백은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노 화백은 "나의 예술 철학과 작품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다"며 "덕분에 수장고에는 수천 점의 작품이 남았다. 아마 본인 작품을 이렇게 많이 소유한 화가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 작품과 공간이 자신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주변 부지를 확보해 전시 공간을 넓히고, 제2·제3 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미술계에 입문한 두 명의 자녀가 다음 세대에도 이를 이어가 주길 바라고 있다.노 화백은 "오늘도, 내일도 작업실 문을 열고 그림을 그릴 것"이라며 "그림을 그리는 하루하루, 그 자체가 내 인생"이라고 말했다.노의웅 화백. 강주비 기자노 화백은 광주 출신 서양화가로, 60여년 동안 행복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예술공론상과 광주시민대상, 오지호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노의웅 미술관은 광주 남구 양과동 966-1에 위치해 있으며,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이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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