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 넘기고 시작한 노래
3년간 50여 개 수상 '쾌거'
국가대표 때 다진 성향 뒷받침

"노래 부를 때 제일 살아 있는 기분이죠. 제2의 인생을 열어준 힘이에요."
73세 문신호씨에게 노래는 뒤늦게 붙잡은 취미가 아니라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 하나의 축이다. 그는 지난 6일 광주 서구 주민노래자랑 '나도 가수다'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첫 소절을 부르던 순간을 떠올리며 문씨는 당시 관객의 환호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문씨가 노래를 시작한 계기는 2019년 겪은 심장 질환이었다. 그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스텐트 5개를 삽입했다. 수술 다음날 심장이 파열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해 목포에서 광주 전남대학교병원으로 긴급 이송됐고 13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이어진 3개월의 입원 기간 동안 그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문씨는 "어느 날 병실 TV에서 미스터트롯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때 들려온 임영웅의 목소리는 깊은 위로가 됐다"며 "회복 기간 너무 힘들었는데 마음을 붙잡아준 소리였다. 그날 이후 '나도 한번 불러볼까'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문씨의 제2막 인생에는 과거 소프트테니스 국가대표를 했던 운동선수 특유 끈기 있는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중학교 시절 처음 소프트테니스를 시작했고,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전국체전 3위, 대통령배 우승 등을 경험하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성격을 익혔다. 이후 사업을 하며 살았지만 심장 질환을 겪으며 삶이 멈춰 섰고, 비어버린 자리를 노래가 채웠다.
노래를 시작한 뒤 문씨는 선수 시절처럼 스스로 연습 루틴을 만들었다. 하루 200~300곡을 들으며 호흡과 발성을 익히고, 자신에게 맞는 음역대를 찾기 위해 반복했다. 무대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그는 '부딪쳐 보자'는 마음으로 대회에 나갔다. 첫 상은 2022년 서구 시니어 노래자랑 우수상이었다. 이후 전주·청주·진안·공주 등 호남 지역 다수 무대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휩쓸었고 최근 3년간 5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문씨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다시 성장하는 자신을 "신기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감도 그 과정에서 조금씩 되찾았다.
문씨의 일상은 노래로 활기를 되찾았다. 새벽 4시께 눈을 뜨면 곧바로 음악을 듣는다. 오후에는 연습실에서 발성 등을 점검하며 노래 연습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휴대용 노래방 기계를 들고 광주천으로 향해 버스킹을 한다. 천변에서는 그를 알아보는 시민들이 생겼고, 박수를 건네거나 음료수를 주는 이들도 늘었다. 며칠 보이지 않으면 "왜 안 오시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문씨의 곁을 가장 오래 지켜준 사람은 아내였다. 그는 아내를 "매니저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어떤 곡이 목소리에 맞는지 골라주고, 무대 전에는 "힘 빼고, 천천히 불러요"라고 조언한다. 문씨는 "아내는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준 사람이다. 지금의 노래 인생이 가능했던 이유로 아내 덕분이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전국 무대다. 올해 '실버아이TV 전국 시니어 가요제'에서 톱3에 오른 그는 내년 대상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광주·전남을 넘어 경상권과 수도권 무대에도 서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문씨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할 수 있을 때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
'상상'에서 시작된 그림 인생···구름천사, 노의웅 화백
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 앞 담벼락에 그린 만국기 벽화를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그저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19일 오전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서 만난 노의웅(82) 화백의 말이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노 화백에게 남은 목표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노 화백은 "'계속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분명한 목표"라고 말했다.노 화백의 첫 그림은 '상상 속'에서 시작됐다. 크레용이나 도화지조차 없던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는 들판과 하늘이었다. 들판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리는 법'을 익혔다. "구름 모양이 계속 변하잖아요. 그 형상을 따라 상상하다 보면 온갖 그림이 다 나왔지요."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교실마다 붙일 포스터를 도맡아 그렸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눈에 띄어 그리는 그림마다 칭찬을 받았다. 노 화백은 "보지 못한 대상을 상상으로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그때부터 상상 그림을 계속 그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노 화백은 자연스럽게 미술의 길로 접어들어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초기에는 풍경화 작업을 오래 했다. 전남 곳곳을 찾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러다 작업을 이어가던 중 스스로에게 문득 질문을 던졌다. '남들과 같은 그림을 계속 그려도 되는가.' 노 화백은 "미대 학장까지 했는데, 내 세계가 없는 작품을 계속하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컸다"고 했다. 그 질문은 결국 작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 옆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후 노 화백은 작품을 완성하면 반드시 인터넷 검색부터 했다. 완성도와 별개로 유사한 작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고심 끝에 그린 작품도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면 미련 없이 폐기했다. 이런 과정을 스무 차례 넘게 반복한 끝에, 그의 대표작 '구름천사'가 탄생했다. 노 화백은 "나만의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지구 반대편에 비슷한 게 있으면 그건 폐기 처분했다. '모방 작가'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어렸을 때 하늘을 보며 상상했던 기억이 결국 구름천사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구름천사는 구름 속에서 천사의 형상이 드러나는 상상적 이미지다. 모든 작품의 제목은 동일하게 '구름천사'로 붙는다. "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곳 천사들이 사는 곳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한 그림이다.수천 점에 이르는 작품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 역시 첫 번째 '구름천사'다. 노 화백은 "처음 그렸던 구름천사를 보고 '아, 이건 정말 내 그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지금까지도 여러 크기의 캔버스에 구름천사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 전시된 '구름천사'를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작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노 화백은 삶의 공간도 바꿨다. 도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인 양과동으로 내려온 지 7년째다. 이곳에 미술관과 작업실, 수장고를 함께 마련했다. 노 화백은 "시내에서는 화실 따로, 집 따로니까 춥다고 안 나가고 그러다 보면 작업을 못 하게 된다"며 "여기서는 출근길이 10m도 안 된다.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하루에 10시간씩 매일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노의웅 미술관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작품을 교체한다. 수장고에 보관된 4천여 점의 작품 가운데 안 걸었던 그림을 찾아 전시하고, 철수한 작품은 다시 수장고로 옮긴다. 미술관 문은 밤낮 없이 열려 있어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볼 수 있다.최근 그의 작업은 미술관 안을 넘어 동네로 확장됐다. 미술관 바로 앞,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낡은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노 화백은 허술해 보이던 담을 정리한 뒤 세계 여러 나라 국기를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꼬박 열흘을 매달려 완성한 '만국기 벽화'는 그의 새해 첫 작품이다.노 화백은 "벽화 하면 꽃 같은 게 많지 않은가. 근데 만국기는 거의 없더라.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만국기를 그려 넣으니 화려하고 보기 좋다며 주민분들이 말씀해 주셨다"고 웃었다.19일 오전 노의웅 화백이 광주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에 전시된 '금강산의 향연'을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다만 노 화백은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노 화백은 "나의 예술 철학과 작품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다"며 "덕분에 수장고에는 수천 점의 작품이 남았다. 아마 본인 작품을 이렇게 많이 소유한 화가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 작품과 공간이 자신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주변 부지를 확보해 전시 공간을 넓히고, 제2·제3 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미술계에 입문한 두 명의 자녀가 다음 세대에도 이를 이어가 주길 바라고 있다.노 화백은 "오늘도, 내일도 작업실 문을 열고 그림을 그릴 것"이라며 "그림을 그리는 하루하루, 그 자체가 내 인생"이라고 말했다.노의웅 화백. 강주비 기자노 화백은 광주 출신 서양화가로, 60여년 동안 행복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예술공론상과 광주시민대상, 오지호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노의웅 미술관은 광주 남구 양과동 966-1에 위치해 있으며,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이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 '시대의 스승' 고 김용근 선생 평전 출간
- · 빛길모 회원 50여명, 삼각산 산행 ·시산들제 행사
- · 박매호 '자연과미래' 출판기념회 성료
- · 손오석 전 북광주세무서 법인세과장 세무사로 새출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