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계엄 1년] 위기의 순간, 왜 우리는 금남로로 가는가

입력 2025.12.03. 09:58 박소영 기자
항쟁의 시작과 끝 머물던 옛 도청 앞
금남로·민주광장, 광주 시민 집결의 축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5.02.15. hyein0342@newsis.com

"광주 시민 여러분, 도청을 향해 나와주십시오."

1980년 5월 항쟁 당시 울려 퍼졌던 이 문장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의 집결지를 상징한다. 옛 전남도청 본관 앞, 지금의 5·18민주광장과 금남로 일대다. 지난해 12·3 불법계엄 사태 때도 시민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 역시 이곳이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이 일대가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이유는 공간이 품고 있는 항쟁의 기억과 역사적 기능 때문이다.

5·18민주광장은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항쟁의 중심무대였다. 도청 앞에서는 시민군의 지휘와 논의가 이어졌고, 분수대 주변은 정보와 소식을 교환하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계엄군의 봉쇄로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도 금남로 일대에서는 헌혈이 계속됐고, 시장과 상가에서 내놓은 음식이 전달되며 공동체가 유지됐다. 항쟁의 전 과정이 이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다.

금남로는 시민 저항이 집중되던 거리였다. 5월 20일 밤 택시와 버스 수백 대가 일제히 금남로로 진입한 장면은 항쟁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시민들의 행진 뿐 아니라 부상자 후송, 주먹밥 전달, 자율적 질서 유지 등 각종 활동도 이 거리를 따라 이뤄졌다. 금남로는 항쟁 기간 시민의 몸과 판단, 연대가 움직인 실질적 행동의 공간이었다.

항쟁이 끝난 뒤에도 이 일대는 광주의 대표적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횃불시위 등 시대마다 중요한 시민 행동은 대부분 금남로와 민주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러한 반복은 이 공간을 광주 시민이 의견을 모으고 방향을 결정하는 아고라로 자리잡게 했다.

지난해 12월3일 불법계엄 당시 시민들이 민주광장으로 모인 것도 이러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진 적이 없는데도 금남로와 민주광장이 집결지로 떠오른 것은 항쟁 당시 축적된 집단적 경험이 지금도 광주만의 행동 좌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5·18의 기억이 작동한 것"이라며 "4·19에서 5·18, 6월 항쟁, 촛불혁명, 그리고 12·3까지 이어지는 시민 저항의 계보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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