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스한 햇살이 감미로운 이 봄, 무등일보 오피니언 면에 새바람이 붑니다. 무등일보의 대표 칼럼인 ‘아침시평’ 필진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쌓아온 7명의 전문가가 매주 월요일 한 차례 깊이 있는 전문지식과 통찰로 각종 현안에 대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번 봄 개편에는 한국 건축 유산과 전통 건축을 연구자로 한국건축역사학회를 이끌고 있는 류성룡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철학과 역사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온 인문 교양 작가 황광우, 행정과 학문 현장을 두루 경험하며 지역 공공대학의 역할을 모색해 온 교육행정가인 한은미 전남대 교수,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해 온 문학평론가인 장은영 조선대 교수가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아침시평’은 그간 함께해온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대표, 조경완 역사와언론연구소장, 이광이 작가님과 함께 지역과 국내외 여러 현안에 대한 깊이 있고 다양한 시선을 제시할 것입니다.
따뜻한 통찰과 새로운 메시지로 깊은 울림을 줄 ‘아침시평’에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구길용 광주전남뉴시스본부장
류성룡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한국건축역사학회장
장은영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학평론가
조경완 역사와언론연구소장
이광이 작가
한은미 전남대 화공학과 교수·민주평등사회를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공동의장
황광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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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우리는 얼마만큼의 포용과 공존을 허할 수 있을까?
장은영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학평론가
지난 3월 6일 광주시청에서는 문화다양성 시행계획안 심의·조정을 위한 ‘2026년 문화다양성위원회’가 열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제 광주시는 “문화다양성을 단순한 다문화 정책에서 벗어나 시민의 문화적 권리 보장과 도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방침” 아래 ‘포용·공존의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3대 전략 85개 과제를 추진한다. 621억을 투입하는 제법 큰 규모의 문화사업이 행정적 성과나 일회성 이벤트로 휘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시민들도 스스로 문화사업의 주체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고 때론 쓴소리도 해야 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응원과 비판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진 모두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문화라는 말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만큼 문화다양성의 의미와 범주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묻는다. ‘포용·공존의 문화도시’에서 문화적 권리의 주체는 누구이며, 문화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공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2013년 제정된 ‘문화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제4조) 이 조항에 명시된 문화권은 국민이라는 범주의 구성원에게 부여된 권리이다. 반면 2014년 제정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에서는 그 대상을 국민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모든 사회구성원은 문화적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가지며, 다른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4조) ‘국민’ 대신 사용한 ‘사회구성원’이란 표현이 인상적이다. 해석의 자유를 빌자면 ‘국민’과 ‘사회구성원’의 차이는 제도적인 범주와 문화적인 범주에 따른 구분으로 보인다. 제도적으로는 국적을 넘어설 수 없지만 그보다 유연한 문화의 범주에서는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선 문화공동체를 상상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 오늘날 인류 대부분은 이미 전지구적 네트워크 속에서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는 문화를 향유한다. 우리는 국적을 초과하는 문화적 연대를 자유롭게 생성·해체하는 문화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다. 탈국경화 시대에 필요한 문화적 권리는 국적을 넘어서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권리이자 보편적인 권리여야 한다. ‘포용·공존의 문화도시’에서 인정되어야 하는 문화적 권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과거의 다문화 정책을 넘어서고자 하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적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개방성이다. 문화 정책의 진일보는 문화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데서 시작된다.문화다양성은 플리 마켓에 늘어선 이색 상점들처럼 서로 다른 정체성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정체성의 전시는 차이를 드러나게 할지언정 문화를 민속 공예품처럼 고정된 사물로 환원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교유서가, 2020)를 쓴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Francois Jullien)은 문화를 박제된 정체성의 산물로 보는 시각을 강력히 거부한다. 그는 문화적 ‘차이’보다는 문화 간의 ‘간격’에 초점을 두자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서로 다른 문화의 간격이 유지될 때 그 틈에서 문화적 창의성이 솟아나고, 그것을 환대하고 활용할 때 새로운 문화가 출현한다. 이처럼 생성되는 문화는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변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Ressources)이며, 자원으로서 문화는 잠재적이고 무한정하다. 따라서 문화적 정체성을 고정된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는 오히려 문화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옥죄는 결과로 이어진다. 차이를 인정하되 마주 선 ‘너’와 ‘나’ 사이에서 생성되는 문화에 대한 환대, 즉 서로 다른 문화가 뒤엉키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경계 없는 융합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적 상상력이 아닐까? 물론 순수한 문화적 정체성을 욕망하는 이들에겐 탈경계적인 문화 융합이 혼란과 오염으로 보일 수 있다. 타자 없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동일성의 주체는 순수한 정체성이라는 환상을 좇기 마련이다. 하지만 21세기적 문화다양성을 모색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가 과감히 떨쳐내야 하는 건 바로 그와 같은 죽은 문화에 대한 욕망이다.살아있는 문화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는 위계와 경쟁을 통해 발전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화는 다른 문화와 공존할 때 생명력을 얻으며 새로운 문화로 발전하고, 그럴 때라야 삶을 자극하는 힘이 된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가 지닌 문화의 힘은 국가대항전에서의 승리보다는 국가를 넘어선 정서적 유대에서 실감되었던 것 같다. 예컨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순간을 떠올려보라. 우리가 감격했던 이유는 한국문학이 1등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강의 작품을 매개로 전세계인이 우리의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의 정의와 윤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연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문화의 힘은 경쟁적 지위나 상대적 우월함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적 연대를 통해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타인과 세계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문화는 나의 삶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실질적 힘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문화다양성의 실현은 순수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통념을 넘어서 문화 융합으로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포용과 공존을 허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문화의 생명력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마주할 때 다양성이라는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계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문화를 향유하고 창조하는 즐거움 속에서 정서적 유대를 맺는 문화도시를 꿈꾸어도 될까? 그런 문화도시를 꿈꾸는 당신에게 말해두고 싶다. 제도적 경계를 넘어서서 각자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드러낼 수 있을 때 그로부터 파생되는 혼종적이고 잡종적인 것이야말로 문화의 경이가 아니겠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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