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영토 최대치 보여줘" vs "고조선 영토 의도적 축소"

입력 2023.08.31. 23:24 이관우 기자
[전라도천년사 논쟁 지상토론회] ②고조선
기원전 1천년기 고조선 청동기문화영역과 유적

[전라도천년사 논쟁 지상토론회] ②고조선

◆조법종 우석대학교 교수

'일본서기' 내용 인용 집필 부분

일제 식민사학적 표현으로 오해

'전라도 낙후 지역'으로 표기 등

허위·가짜뉴스로 지역감정 자극

전라도천년사는 2018년 전라도 천년을 기념해 '자랑스런 전라도 역사의 집대성'을 목표로 '한국사 그리고 세계사에 비춰본 전라도 역사'를 집필했다.

특히 고대 일본에 의해 왜곡된 <일본서기>에서 '백제역사를 회복'시킨 학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마한사'와 '가야사'를 전라도 지역사에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또 마한 역사를 근간으로 전라도가 '대한국호' 발상지임을 천명하고, '마한역사문화권'이 전라도지역을 중심으로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에 설정돼 향후 마한연구와 지역활성화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그런데 최근 일부 단체들이 전라도천년사 간행의 의미와 성과를 오해하고 이를 폄훼하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들은 전라도천년사에 대해 '마한은 2000년전에 망해 전라도와 관련이 없는데 포함시켰다', '대한국호와 마한, 삼한은 별 관련이 없다' 는 주장과 더불어 내용을 인용해 백제와 마한, 가야사를 복원한 집필 내용을 임나일본부설을 따른 식민사학이라고 잘못 이해한 주장을 하고 있다.

고조선과 관련해서도 '단군을 부정했다'거나 '고조선의 연대와 공간 영역을 축소했다'고 하며 '전라도를 낙후한 지역이라 했다'는 등 사실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먼저 고조선에 대한 이들이 제기한 의견에 답을 하면 다음과 같다.

전라도천년사에서는 "고조선은 기원전 1천년기 전 기간에 존재하였고 그 중심적 위치에 대해 요서,요동,서북한 지역 등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데...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와는 구별되는 조양 '십이대영자문화'가...요동은 물론 길림과 한반도지역에 지속되어...예맥종족에 속하는 고조선으로 이해하고..."(선사 고대 2, 18~19쪽)라고 서술했다.

즉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표방한 건국세력이 요서지역에서 성장해 기원전 1천년기에 정치체를 구성한 것으로 설명했다.(선사고대 242쪽 보정)

특히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조선을 중국역사로 보려는 근거인 '기자(箕子)'관련 <상서대전> 등 중국 기록의 후대 조작설을 근거로 '기자동래설' 등을 부인하고 관련 내용을 기술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 단체는 전라도천년사에 '전라도는 문화가 늦게 발달한 낙후한 지역으로 표시'(1권 15쪽)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본문에 전혀 없는 '허위사실'이다. 이것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해 전라도민들이 전라도천년사에 대해 오해를 갖게 만들었다.

단체는 "편찬위가 전남 영암 장천리 주거지에서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교정연대 서기전 2630~2365년 무렵의 청동기가 발견된 것을 부정했다"고 '가짜뉴스'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들이 제시한 원래 내용은 '잘못된 측정 결과로 사용 불가한 자료'(목포대 박물관, 영암장천리 주거지 II, 1986 46쪽)이다. 주거유적에서 채집된 숯이 무슨 문제로 다른 유적 연대값과 달리 유별나게 높은 연대값(2000년 차이)이 나오자 보고서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마음대로 이용해 마치 '전라도 유적이 기원전 24세기 유적인 것처럼 주장하고 이를 편찬위가 무시했다고 억지 주장을 한 것'이다.

실상은 전라도천년사에서 '전혀 언급도 안한 내용'으로 '언급을 않했으니 문제'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단체는 "고조선의 영역을 축소했다"고 했는데 반대로 전라도천년사에서는 고조선의 대표문화인 비파형(요령식) 동검문화의 범위를 만주, 한반도를 포괄한 한국고고학회 지도(한국 고고학 강의 , 2007, 108쪽)를 제시했고 역시 만주, 한반도, 일본 지역까지를 포괄한 한국식 청동기문화 분포현황지도(2권 373쪽, 3권 29쪽)도 제시해 고조선문화 영역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지도는 보지도 않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게된다.

즉 전라도천년사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으로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있다.

이 같은 의도성을 갖고 조작된 의견들은 전라도천년사를 폄훼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라도 지역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단체에 소속된 자들은 우리 역사를 확대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유투브 등을 통해 '가야세계유산등재', '김해시사편찬'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야기했다.

이들 주장의 실상은 역설적으로 '일본 극우파들의 왜이동설'을 따라 '전라도는 왜의 땅'이라고 버젓이 자신의 책에 주장하고 있다.(이덕일,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 2000, 41쪽)

결국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전라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전라도천년사의 성과와 전라도민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라도민들께서 냉정히 판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서기전 25~24세기 청동기 초기 유물 출토지역과 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 분포도

◆김수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고대부분부터 왜곡된 내용 담겨

고조선 등장 인용 문헌 부정확

청동검 등 관련 유물 연대기와

기술 내용이 안 맞는 모순 발생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에게 고조선 관련 고대사에 관해 묻는 질문은 ▲고조선 건국은 언제인가 ▲고조선은 누가 건국했나 ▲고조선 강역은 어디인가 등 크게 세가지다.

이 질문들에 대한 편찬위의 결론은 건국은 '위만조선으로 서기전 2세기 즈음'이고, 누가는 어쨌든 '단군은 아니고 위만은 분명하다' 이며, 강역은 어딘가에 대해 '어쨌든 만주는 포함하지 않는다'였다.

전라도천년사에서는 "우리 역사상 첫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시대에 역사 무대에 등장하였다...단군조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군신화는 고조선이 고대국가의 지배체제를 형성하고 난 이후에 지배층에서 만들어진 건국 신화이지 실재한 역사는 아니다...구체적으로 경중갑 편의 내용을 보면 '관자가 말하기를...만일 관자를 관중 시기인 춘추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면, 고대중국인들은 이미 기원전 7세기에 조선을 잘 알고 있었으며..."(선사 고대 2/ 42~44쪽)라고 서술했다.

위의 인용글에 조선의 등장에 대한 문헌 근거로 서기전 7세기 <관자> 경중갑 편을 예로 들면서 고대 중국인들이 조선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헌 인용은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 고대문헌인 <서기> 송미자세가, <상서대전> 은전에서 기자(箕子)에 대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원래 기국(箕國)을 다스리는 세습적인 지위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 나오는 기자는 상나라 멸망 당시 최후의 기자를 말한다.

상주교체기인 서기전 11세기의 기자는 상나라가 망하자 조선으로 망명한다. 위의 중국 고대 문헌들이 그 내용들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기자의 40여 세대 후손인 준왕을 연나라 사람 위만이 내쫓고 왕이 된다.

따라서 기자가 상나라가 망해서 조선으로 망명할 당시에 이미 조선이 있었으므로, 아무리 늦게 잡아도 최소 서기전 11세기 이전에 조선이 건국되었다고 봐야한다.

또한 고조선이 청동기 시대에 등장했다고 하면서 만주 한반도에서 공통으로 발굴되는 유물 유적의 가장 오래된 유물의 연대를 적용하지 않고, 최대한 늦춰서 잡고 있다.

만주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이른 청동기 시대 유물 유적의 연대는 서기전 25~24세기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현재 중국 영토 내에서는 발굴되지 않고 만주 한반도에서만 공통으로 발굴되는 유물들이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영토다.

또 소위 비파형청동검으로 알려진 고조선청동검은 만주 한반도 전역에서 고루 분포되어 발견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청동검은 서기전 16세기 경으로 알려져 있다. 청동검은 청동 제작 기술이 발전한 뒤에 나타나는 제품이기 때문에 청동기 개시 시기는 훨씬 일찍 올려 잡아야 한다.

따라서 하가점하층이나 경기도 양수리, 전남 영암의 공통된 증거들을 묵살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청동기 개시 연대를 서기전 25~24세기로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일연 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 단군조선의 건국을 서기전 2333년으로 기록된 것과 거의 비슷한 연대다. 즉 고조선 건국시기에 관한 물적증거도 있고 문헌 기록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편찬위는 고조선청동검을 작은 차이의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명분아래 만주에서 발굴되는 고조선 청동검을 산융이나 동호의 유적 유물로 분류하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것으로 동북공정에 이론적 명분을 주는 주장이다.

만주 일대의 유적 유물을 고조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고조선의 영토를 축소하는 것은 만주 일대에서 발원한 고구려 부여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할 수 있는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구려도 부여도 전부 고조선에 속한 나라로 존재하다가 고조선이 쇠약해 지면서 독립국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만주 일대의 유물 유적들을 고조선의 강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고구려 부여 그 이후 발해까지 전부 현재 중국에게 그 역사적 뿌리를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주에서 발원한 나라들의 뿌리는 고조선이다. 전라도천년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는 '근대중화민족패권주의'에 근거한 서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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