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에 지으면 중국산 반도체?"···국책사업 삼킨 '호남 린치'

입력 2026.07.09. 09:16 강승희 기자
■전라도 향한 혐오, 일상에 스민 낙인
기사 댓글·커뮤니티 뒤덮은 무차별 조롱
일부 보수언론과 매체마저 혐오 동조
입지 검증 대신 '금단의 땅' 취급 도배
김현정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달 30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관련, 국민의힘 호남 비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호남반도체 같은 소리하네. 삼성, SK가 호구냐? 범죄자도 지지하는 호남사람들.”

“이건 사기다 선거용. 물, 전기도 없는데 기업 부도나고 나라 망한다.”

“삼성 반도체 단지를 광주에 건설하면 거기서 생산된 반도체는 국산인가요, 중국산인가요?”

지난달 29일 이재명 정부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 발표 이후, 주요 포털 뉴스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혐오 글들이 잇따랐다. 대부분 정부와 전남광주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혐오댓글은 극우사이트 외에도 국내 포털 사이트 곳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만큼 ‘전라도’를 향한 비방·혐오는‘일반화’된 지 오래다.

무차별적인 비난과 조롱의 표적이 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5극3특으로 대표되는 이재명 정부의 국토균형발전과 국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핵심 사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800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

이 대통령은 “이 사안만 보면 호남지역에 투자가 조금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누적된 투자량을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남이 배제와 차별을 통해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용수나 전력, 용지가 잘 관리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호남권에 하는 반도체 투자는 국가의 새로운 기회라고 평가하며 정쟁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호남의 반도체 투자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것을 정쟁으로 몰고 가서도 안된다. 국토 대개조 사업이고 국토 균형발전사업이니까 도와주는 것이 옳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 100년 대계이고 국가 균형발전이다. 한 목소리로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균형발전이라는 취지는 사라진 채 오로지 ‘전라도’를 비하하고 혐오하는 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실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부지 관련 영상과 기사 댓글창에는 지역 인프라를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공격이 줄을 잇는다. 가뭄 시기의 단편적인 기억을 비틀어 ‘먹고 씻을 물도 없어서 제한급수하는 지역에서 뭔 반도체를 한다요?’라는 식으로 지역 인프라를 왜곡하거나, ‘멍청한 전라도 민주당 100%지지 동네 또 속았네’ ‘기업 팔을 비틀어 튼튼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구만’‘전라디언놈들은 대기업이 들어오면 다 죽는다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등 비하와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최근 주가 변동마저 ‘삼성전자, 하이닉스 전라도 투자 이후로 외국인들 다 팔고 떠나서 주가 하락하네’ ‘마이클 버리가 전라반도체 800조 얘기듣고 숏치라고 했는데’등 호남탓으로 돌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보수언론과 온라인 매체마저 이러한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치논리를 여과 없이 내세우면서 혐오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점이다.

A일보는 ‘닥치고 호남 구애 작전…당권 넘어 정권 안위용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정부의 정책 결정을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으로 폄훼했다.B인터넷 매체의 한 칼럼은 유통업체 입점 무산 등을 근거로 ‘전라도는 여러 대기업을 밀어내 왔다’ ‘대형마트조차 없는 동네’라고 표현하며 지역을 비하하고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이들 언론들의 행태를 두고 지역에서는 혐오세력들의 논리를 강화하는, 또다른 ‘낙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지역사회 피로감은 이미 극에 달한지 오래다.

배훈천 광주시민회의 대표는 기업 투자를 지역감정과 연관짓는 현상에 대해 탄식했다. 그는 “삼성닉스가 광주에 투자하겠다는데 왜 지역감정을 유발하는지 모르겠다”며 “반도체 과잉투자 우려나 지자체간 유치경쟁을 통해 결정되지 않은 아쉬움의 비판은 들을 가치가 있지만, 전남광주 지역은 마치 대기업이 투자하면 안 될 ‘금단의 땅’인 것처럼 조롱하고 단정 짓는 말들은 지역 혐오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광주 출신 작가 허지웅씨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광주와 전라도를 향한 조롱과 차별이 지속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어린시절 서울로 이사갔다가 고등학교 때 광주로 돌아와 느꼈던 무력감을 회상하며 “5월 광주와 전라도는 여전히 조롱거리다. 역사를 모르는 아이들은 밈으로 소비한다. 말리면 억압이라 여긴다”고 적었다. 이어 “광주를 조롱하는 데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광주는 구호가 아니면 조롱이었다. 한 번도 동등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독 호남을 향해 ‘준비가 안 됐으니 무조건 안 된다’는 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승훈 경남대학교 교수는 개인 SNS를 통해 “호남을 포함한 특정 지역에서 물과 전력을 조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수용 역량carrying capacity의 한계에 대한 논의나, 지금까지 실패한 산업정책이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들의 누적’을 극복할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기 바란다”며 “‘호남이어서 싫다’는 말을 ‘왜 굳이 호남인가?’라는 방식으로 던지는 비난은 넘어서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김현성 전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 대표는 “반도체를 시장에만 맡겨 키운 나라는 없다. 정부가 전략산업을 키우는 것은 사회주의나 균열이 아니라 산업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시대 국가 경쟁력은 생산성이 아니라 회복탄력성에서 갈린다. 공급망은 나뉘어야 한다”며 “호남, 충청, 영남. 세 축으로 흩어진 오늘의 투자는 그 분산의 첫 설계”라고 강조했다.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12
후속기사 원해요
3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7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