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교육감님, '광주형 대안학교'를 키워주세요

@황광우 작가 입력 2023.06.25. 14:26

1980년 5월 26일, 피에 굶주린 운명의 마신(魔神)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오후 3시 도청에서 외신 기자들은 물었다. "더이상 버텨 보았자 희생만 클 뿐 승리의 가능성은 없는 것 아니오?" 시민군의 대변인을 자임하던 이는 이렇게 답하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이 영웅적 예언의 주인공은 윤상원이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을 아는 이도 드물겠으나, 학생 시절 윤상원이 소포클레스 원작 '오이디푸스 왕'을 무대 위에서 열연한 연극배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 것이다. 광주정신을 전국화하자고, 오월정신을 세계화하자고 떠들고 다니는 높으신 분들께 당부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말로만 광주정신을 떠들게 아니다. 그날 꽃잎처럼 스러진 이들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40년 전 젊은이었던 우리의 나이가 벌써 70을 향해 가고 있지 않는가?

광산구에 가면 윤상원의 생가터가 있고, 그 인근에 대안학교 지혜학교가 있다. 지난 6월 10일 지혜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연극 '오이디푸스왕'을 열연했다. 공식 무대도 없었다. 변변한 조명장치도 없었다. 교실 한 칸을 개조해 만든 강당에서 전교생 120명과 학부모들이 옹기종기 앉아 '비극의 의미'에 대해 고뇌하고 있었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대안학교에서 실천되고 있는 이 참교육의 현장을 방문하길 바란다. 대안학교를 집 나간 문제아들의 수용소로 알고 있는 교육청의 공무원들이 이곳 지혜학교에서 어떤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대안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의 실험을 목격하길 바란다.

대안학교를 돕기 위한 지원 조례가 통과되었다. 광주시의원들이 애써 만든 지원 조례를 거부하는 것이 교육청의 공식 입장이란다. 이런 꼴을 보자고 투표했나, 시민들의 마음이 몹시 불편할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중학생까지는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도권 학교든, 대안학교에 다니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적어도 중학생까지는 국가가 의무적으로 돌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교육청은 지원 조례가 법률에 위배된다느니, 지방교부금이 없다느니 이 핑계 저 핑계 앞세워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교육청이 한 해 쓰는 예산이 3조 원이다. 대안학교에 지원을 결정한다고 했을 때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은 많아야 10억여 원이다. 이런 현실을 빤히 알고 있는 시민들 앞에서 재정이 궁하여 추가로 지급할 돈이 없다고 항변하는 것은 시민을 장기판의 졸로 아는 짓이나 다름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용돈을 줄 때 어차피 줄 돈이라면 깨끗하게 주어버려야지, 아빠의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둥, 놀기만 하는 자식에게는 용돈을 줄 수 없다는 둥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이정선 교육감께서 단 한 번만이라도 오월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고민해 보았다면, 이렇게 대안학교에 소극적으로 대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지혜학교는 해마다 5월이 오면 윤상원 생가에서부터 망월동까지 순례를 한다.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파주에서 철원까지 도보행진을 한다. 광주의 18만 명 학생들 모두가 이렇게 실천적인 배움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 성지 광주에서만이라도 이렇게 자라는 심지 굳은 아이들이 100명은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시험 점수 잘 받아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분들이다. 이 살벌한 경쟁의 세상에서 그래도 '내가 뿌린 씨앗, 남이 열매를 따 먹어도 즐거운' 나눔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청소년으로 자라길 바라는 학부모들이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택했다.

1980년 광주의 젊은이들은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켰다. 40년이 지난 오늘, 인간 존엄과 나눔의 정신, 다양성의 정신을 배우고 체화하는 학교가 있다면, 설령 그 학교가 제도권 밖에 있는 미인가학교라 할지라도, 교육감은 신발 벗고 달려가 그곳에 찾아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가 보아 물었더니 그곳의 교사들은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박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더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정선 교육감은 교육의 다양성을 공약으로 내걸고 광주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한 명의 학생도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보살피겠다고 공약했다. 시민들과 맺은 이정선의 공적 약속(公約)이 시민들을 핫바지로 아는 말 봉사(空約)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일에는 대세가 있다. 나는 이정선 교육감께서 역사의 순풍을 타고 항해하는 지혜로운 선장이 되길 바란다.?황광우(작가·(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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