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서도 "현실성 없다"···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 ‘후폭풍’

입력 2026.04.29. 11:17 이삼섭 기자
정준호 등 광주지역 국회의원 전원 참여 법안 발의
"인프라 단절·경쟁력 약화" 구성원·문화계 등 반발
ACC·비엔날레 등 고유 자산 연계 기관 운영 합리적
28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 앞에서 한예종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 발의 학생사회 반발 성명 발표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국내 최고 예술 교육기관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전남광주통합특별시(광주특별시)로 이전하는 법률안이 논란에 휩싸였다.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한예종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된 법안이 되레,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엔날레로 대표되는 광주 생태계와 비전에 걸맞는 문화예술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게 합리적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28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논란은 지난 22일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북구갑) 등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촉발됐다. 발의자에 이름을 올린 11명 중에는 광주지역 국회의원 8명 모두 포함했다. 현재 서울에 위치한 한예종을 광주와 전남이 통합해 오는 7월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사실상 현 광주시로 이전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한예종은 1992년 ‘체계적인 예술실기 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해 설립된 국립 고등교육기관이다.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공연예술 교육기관으로 평가 받는다.

법안은 현재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돼 지역 간 문화 격차가 심화된 데다 지역 청년 예술인들의 수도권 유출로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위축되는 실정이라고 짚었다. 국가균형발전과 문화예술의 지역 확산을 위해 한예종 소재지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 5천명에 달하는 한예종이 광주로 이전하면 지역 예술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다.

그러나 한예종 구성원은 물론 문화계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한예종의 경쟁력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인적·물적 인프라의 결과이자, 이미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공공기관과 달리 봐야 한다는 거다. 특히 한예종 이전에 대한 충분한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발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 4월 23일 국회에서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이전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정준호 의원 페이스북

한예종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충분한 준비가 전제되지 않은 (캠퍼스의) 물리적 이전은 예술 교육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하하고, 국가적 예술 자산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며 “일방적 (이전) 추진에 앞서 본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해달라”고 밝혔다. 한예종 총학생회도 서울 석관동 캠퍼스에서 “장기적 청사진 없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밀어붙이는 이전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껍데기 이전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박재욱 신라대 교수는 지난 27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균형발전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명분이지만, 모든 기관에 동일한 분산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며 “일반 행정기관이나 공공서비스 기관과 달리, 예술교육기관의 생태계는 산업적 입지에 극도로 민감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예종의 핵심 재원은 건물이 아닌, 인간과 현장성에 있는데 공연예술 매출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에서 네트워크 단절은 곧 학교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광주 또한 껍데기만 얻고 대한민국은 최고의 예술 교육 거점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또한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서 “공연장, 연습실, 현장 네트워크 등 수십 년간 서울에서 축적된 생태계는 건물을 옮긴다고 따라오지 않는다”며 “지금 민주당의 발상은 씨앗을 심는 게 아니라, 이미 자란 나무를 억지로 뽑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보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나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고유 자산과 연계한 ‘광주형 예술교육 모델’이나 한예종 특화캠퍼스를 운영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조언도 곁들었다.

지역 문화계 내부에서도 이번 법안 발의가 치밀한 전략 없이 추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의 한 문화기획자는 “계획과 어떤 방향성과 전략을 갖고 추진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혹할 만한 아이템을 이슈화했다는 인상을 받는다”며 “광주에는 아시아문화전당이나 비엔날레와 같은 굵직한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많은데, 이런 곳을 잘 활용하고 더 잘 되게 하는게 더 중요한데 새로운 기관만 유치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화기획자는 “케이팝과 아이돌 육성을 광주에서 할 수 없는 이유는 관련 민간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이라며 “한예종 또한 마찬가지고, 한예종을 광주로 이전한다고 해서 기대하는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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