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6·3 지방선거, 풀뿌리 민주주의와 분권 개헌 시험대

입력 2025.10.09. 19:18 이관우 기자
[D-236 지선, 미래 여는 분기점]
주민 권한 위임·자치 실현 출발
광주·전남 특별광역연합, 분권 실험
후보들, 빚더미 지방정부 해법 주목
전문가들 "자치 완성엔 헌법 개혁 필요"

2026년 6월3일 치러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광주·전남에서 단순한 단체장·의원 교체전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주민이 권한을 위임하는 민주적 절차이자, 분권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할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제도적 통로다. 동시에 자치 30년의 성과와 한계를 결산하고, 광주·전남 특별지자체인 특별광역연합 출범·청년세대 정치 참여 확대라는 변화와 맞물려 풀뿌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단순한 지방권력 교체를 넘어, 헌법 개정과 권력구조 개편, 재정 자율성 강화, 주민참여 확대 등 지방자치의 구조적 과제를 시험대에 올릴 것이라고 진단한다.특히 재정 위기와 주민 참여 확대라는 과제는 후보자들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실질적 해법과 제도적 장치를 얼마나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주민 권한 위임과 자치 실현의 출발선

지방선거는 주민이 직접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행위다. 이는 단순한 투표를 넘어 주민이 권한을 제도적으로 위임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다. 선거 결과로 구성된 지방정부는 예산 편성, 조례 제정, 정책 집행 전반에서 주민 뜻을 구현할 책임을 진다.

광주·전남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지방선거는 생활정치의 향방을 좌우했다. 노인·아동 돌봄 조례, 문화예술 지원 정책, 도시철도·광역철도 건설과 같은 사업들이 선출된 단체장과 의회의 성격에 따라 추진 여부가 갈렸다.

주민이 선택한 권한 위임이 곧 삶의 질을 바꾸는 구체적 힘으로 작동해 온 것이다.

또한 중앙에서 이양된 권한 역시 지방선거의 성격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교통, 환경, 산업 정책이 중앙정부에서 내려와도, 이를 집행할 지방정부가 준비되지 않으면 '종이 권한'에 그치고 만다.

반대로 역량 있는 단체장과 실질적 견제를 할 수 있는 의회가 구성되면 권한은 생활 속 분권으로 이어진다. 이번 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특별광역연합 출범, 분권 실험의 시험대

광주·전남은 올해 말 특별광역연합 출범을 앞두고 있다. 두 시·도가 교통, 산업, 환경 분야에서 공동사무를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한국 지방자치 역사에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실험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공동사업의 성과, 공동재원 조달, 성과평가 체계가 빠지면 제도는 이름만 남는다.

지방선거를 통해 꾸려질 집행부와 의회가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담아낼지가 분권 실험의 성패를 가른다.

예를 들어 광역철도 사업의 예비타당성 통과 문제, 혁신도시 시즌2 추진, 나주 SRF(쓰레기 고형연료) 갈등 같은 광역 현안은 더 이상 개별 지자체가 단독으로 풀 수 없다.

특별광역연합은 이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도구이지만, 그 효과는 결국 선거로 구성될 지방정부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특별광역연합은 단순한 행정협의체가 아니다. 중앙-지방 권한 배분을 다시 짜고, 생활권 단위의 문제를 광역 차원에서 풀어가는 실험이다.

이번 선거가 특별광역연합을 '이름뿐인 기구'로 만들지, '분권의 엔진'으로 만들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재정 위기와 분권의 현실적 제약

분권은 결국 재정에서 판가름 난다.

광주의 재정자립도는 35.5%, 재정자주도는 54.6%에 불과하다. 지방채는 2조 원을 넘어섰고, 시민 1인당 채무는 약 147만7천 원으로 특·광역시 중 최고 수준이다. 전남 역시 자체 세원 기반이 취약해 지방세 비중은 전국 하위권, 교부세 의존도는 50%를 웃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빚 많은 광주', '세원 없는 전남'은 분권의 구조적 제약을 드러낸다. 재정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권한만 이양받으면 지방정부는 중앙 의존을 되풀이하거나, 빚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이 구조적 제약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집행부와 의회를 뽑는 과정이다.

국세-지방세 비율 조정, 지방소비세율 확대, 자체 재원 발굴, 성과평가 체계 마련 같은 구체적 로드맵이 공약으로 제시돼야 한다. 단순한 추상적 '재정분권'이 아니라, 숫자와 제도 설계가 담긴 실행 계획만이 분권의 현실적 제약을 풀 수 있다.

◆자치 30년의 성과와 개헌 논의의 과제

1995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30년 동안 지자체 예산은 42조 원에서 310조 원으로 8배 이상 늘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양된 사무는 2천700여 건에 달한다. 복지예산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주민참여예산제와 각종 생활형 조례가 만들어졌다. 민주주의의 외연은 넓어졌고, 풀뿌리 자치는 제도적으로 뿌리내렸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강한 단체장-약한 의회 구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광주시의회 예결특위 파동처럼 의회가 스스로 견제력을 약화시키는 장면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중앙정부 의존도 또한 줄지 않았다.

헌법상 자치입법권이 '법령 범위 안에서'로 제한돼 조례가 대통령령·부령 밑에 묶이는 현실도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권한·재정·책임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자치입법권을 원칙적 권리로 격상해야 한다.

정부와 학계, 지방정부 단체 등도 지방분권 관련 조항이 헌법 개정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5극3특 전략' 역시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탈피해 5대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를 축으로 균형 발전을 꾀하고,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과 재정분권·권한 이양을 제도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주요 부처가 지방분권전국회의와 협력하며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50만 이상 대도시들의 연합체인 대한민국대도시시장협의회도 지방분권이 균형 발전과 지방정부 권한 강화의 핵심 과제임을 강조하며 헌법 개정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개헌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민심과 연결하는 중요한 전초전이 될 전망이다.

◆주민 참여와 권력 균형, 선택의 기준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광주·전남의 청년세대는 정주 여건과 일자리, 주거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시민단체는 돌봄, 공공의료, 환경, 교통을 중심 과제로 요구한다.

주민의 요구가 지방선거를 통해 정책으로 반영될 때, 민주주의는 구호가 아니라 체감되는 현실이 된다.

동시에 지방선거는 권력 균형을 만드는 장치다. 단체장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현 구조에서 의회가 제 기능을 발휘해야만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 주민이 선출한 의회가 집행부를 감시하고, 지방정부가 중앙과 균형을 이루는 구조가 분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번 선거는 결국 '누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광주·전남에서 뽑힐 차기 지방정부가 재정개혁, 거버넌스 조정, 특별광역연합 운영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한국형 분권 모델의 성패가 달렸다.

주민의 선택 기준은 후보의 이미지나 구호가 아니라, 권한·재원·책임을 어떻게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가에 두어야 한다.

6·3 지방선거의 결과는 단순한 권력 교체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깊이와 지방자치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제도 개혁과 분권의 과제

전문가들은 지방자치 30년의 성과와 한계를 진단하며 헌법 개정·권력구조 개편·재정 자율성 강화·주민참여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방자치의 성패는 결국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이제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치입법권을 보장하고, 주민참여를 제도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이 직접 단체장을 뽑고 지방의회를 구성하게 된 것은 큰 진전이지만, 여전히 구조적으로 반쪽짜리 제도에 머물러 있다"며 "중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운영되는 현실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치입법권 제약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꼽았다. 현행 헌법 제117조가 조례를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허용하는 탓에,지방정부 정책은 대통령령·부령 같은 중앙 규정에 얽매여 있다. 그는 "지방은 중앙의 틀에 갇혀 있다"며 "조례 권한을 '헌법의 범위 안'으로 넓혀야 지방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권력 구조 불균형을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지방 권력은 강한 시장·약한 의회로 굳어져 있다. 단체장은 막강한 권한을 갖지만 의회는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정책지원관 확충, 의회 인사권 강화, 단체장 위법 재의결에 대한 대법원 제소 허용 등으로 의회 권한을 보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정 자율성 부족도 핵심 과제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주민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설계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해 실행하지 못한다. 결국 중앙정부 공모사업에 줄을 서는 일이 반복된다"며 "국세·지방세 비율 조정, 지방채 관리 로드맵 수립 등 근본적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참여 확대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 전문가는 "주민은 행정을 단순히 고지받는 수용자가 아니라 정책의 공동 생산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며 "참여예산제, 주민조례발안,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주민이 의사결정 전반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생활정치의 주체로 주민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자치의 완성"이라고 덧붙였다.

균형발전 문제도 언급됐다. 이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방분권은 단순히 권한을 나누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자원과 기회를 수평적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이라며 "국세·지방세 비율 조정, 특별지방자치단체 활성화, 초광역권 협력 제도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전문가들은 "지방자치 30년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며 "정치는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존엄을 지키는 장치여야 한다. 지방자치는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실현할 수 있는 제도다. 이제 대한민국은 주민이 주도하는 주민시대를 제도적으로 완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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