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수정당 지지?···"내 삶을 바꾸는 후보에게···"

입력 2025.05.29. 23:28 이정민 기자
■민주당 지지 약한 광주·전남 사전투표장 가보니
봉선동·광양 금호동 민심 변화 주목
지난 대선 尹 27.1%·23.53% 기록
유권자들 정당·후보 언급꺼리면서도
탄핵·계엄으로 지역 민심 변화 감지
"정당보다 후보 자질과 실익 중요"
광양제철소 근무자들이 29일 광양 금호동 주민센터에서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투표를 하러 가고 있다.
광양제철소 근로자들이 29일 광양 금호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장에서 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를 5일 앞둔 29일 전국에서 사전투표가 일제히 시작됐다.

광주·전남은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분류되지만,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이탈 조짐이 감지됐다. 당시 보수정당 후보가 이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곳으로는 광주 봉선2동과 전남 광양 금호동이 대표적이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무등일보는 이들 지역의 사전투표소를 찾아 민심의 변화를 들여다봤다.

◆광주 봉선2동 사전투표소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오전 6시, 광주 남구 봉선2동 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에는 유권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운동복 차림의 중년 남성, 정장을 입은 직장인, 아이 손을 잡은 부모 등 30~50대 연령층이 주를 이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지하 투표소로 향하는 젊은 엄마도 눈에 띄었다. 지하 2층에 마련된 투표소를 다녀간 유권자들은 말없이 계단을 올라와 흩어졌다.

일부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지만, 질문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 말 없는 눈빛, 그러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투표소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의 선택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선택은 이미 끝났다는 인상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서는 노년층 유권자들이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끈 유권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긴 대기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투표소 안팎은 종일 조용했다. 가족 단위로 온 유권자들조차 말수를 줄였다.

유권자들은 대부분 정당이나 후보를 직접 언급하길 꺼렸다. 대신 "누가 됐든 나쁠 게 적은 쪽", "덜 실망할 쪽"을 골랐다는 반응만이 조심스럽게 돌아왔다.

40대 여성 김모씨는 "기대는 안 해요. 그래도 또 후회할까봐 왔어요"라며 "여긴 정치 이야기 잘 안 해요. 다들 조용히 자기 생각대로 하는 편이죠. 전처럼 무조건 특정 정당만 찍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50대 남성 박모씨는 "누가 되든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덜 실망할 것 같은 쪽으로 찍었다"고 전했다.

부동산 문제, 교육 부담 등 현실적 요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주부 이모씨는 "공약은 번지르르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교육 문제만이라도 좀 바뀌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봉선2동은 교육 인프라가 밀집해 있고 외지에서 유입된 젊은 부부, 고소득 직장인이 많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유권자 구성도 바뀌었다. 한때 '광주의 강남'으로 불리며 일부 고가 아파트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곳을 "광주에서 가장 전략적 투표가 많은 동네"로 분류한다. 정당보다 정책, 이념보다 생활, 공약보다 실익을 따지는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봉선2동은 지난 20대 대선에서 광주에서 가장 높은 보수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이다.

유권자들이 21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광주 남구 봉선2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유권자가 광주 남구 봉선2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봉선2동 전체에서 27.1%를 득표했다. 광주 전체 평균인 12.7%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봉선2동 제5투표소에서는 38.8%에 달하는 득표율을 보이며 광주에서는 보기 드문 결과가 나왔다.

이전 대선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다르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봉선2동에서 11.39%를 얻었고,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57.09%, 안철수 후보 33.39%, 홍준표 후보 2.48%를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 때문에 봉선2동은 광주 정치지형의 변화 가능성을 읽을 가늠자로 꼽힌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봉선2동은 외형상 광주지만 정서와 유권자 판단 기준은 서울 수도권과 비슷한 면이 있다"며 "이 동네는 원래 조용하지만 표심은 늘 예민하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 이름보다는 내 삶에 유리한가, 실익이 있는가를 따지는 유권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유권자들이 21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광주 남구 봉선2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1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광주 남구 봉선2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유권자들이

◆광양 금호동 사전투표소

이날 오전 광양 금호동 사전투표소는 이른 아침부터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에도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이곳은 광양제철소 사택이 밀집한 곳으로 광양제철 근무자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작업복을 입고 투표를 하기 위해 무리지어 왔다. 또 사택에 거주하는 가족들도 유모차를 끌고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광양은 타 전남지역 대비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으로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15.7%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던 곳이기에 이번 선거에서도 표심의 향방에 관심이 쏠렸다.

특히 지난 20대 대선에서 광양제철소가 위치한 광양 금호동투표소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는 23.53%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금호동 제3투표소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36.53% 득표율을 얻기도 했다. 광양제철소에 영남 출신 직원들이 상당수 근무하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경남 하동과 가까워 호남 지역색이 짙지 않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서된다. 실제 이날 관내선거인과 관외선거인을 나눠 줄을 섰는데, 관회선거인의 줄이 더 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울러 광양은 역대 8번의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 계열 득표율이 전남 22개 시군 중 가장 낮기도 했다.

사전투표 첫날인 이날 오후 4시 현재 24.68%의 투표율로 지난 20대 대선 같은 시간(16.37%)에 대비 8.31%p 상승해 이번 대선의 관심도를 짐작케 했다. 이날 광양시민들의 표심은 확고하면서도 다양했다.

김모(48)씨는 "솔직히 지난 몇 년 동안 지역 경제가 나아졌다고 느끼긴 어려웠지만 민주당 후보를 뽑는다고 해서 달라질까 싶다"며 "광양만권 산업단지 문제도 제대로 풀어야 한다. 누가 되든 지역 챙길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모(64)씨는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에게 나라를 또 맡길 수 있느냐는 싸움"이라며 "민주당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너무 심하다. 윤석열 정권이 전남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다들 느꼈을 것이다. 호남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투표를 마친 대학생 이모(23)씨는 "정치가 내 삶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취업 준비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다"며 "청년 정책을 말뿐이 아니라 진짜 실현할 후보를 지지했다. 정당보다는 사람을 보고 뽑았다"고 밝혔다.

특별취재반=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이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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