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는 도시는 대개 반짝이는 불빛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거리에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새해에 대한 기대가 묻어난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온도로 겨울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축제의 불빛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 그 이면에는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현실에 놓인 이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최근 영국 런던에 등장한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의 벽화는 이런 무감각을 조용히 깨운다. 지난 22일 런던 중심부 베이스워터 지역 차고 지붕 위에 모자와 부츠, 두꺼운 겨울옷을 껴입은 아이 둘이 바닥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담겼다.
언뜻 보기에는 바닥에 누워 별을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그림은 영국 사회에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홈리스 아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정부에 따르면 노숙 상태에 놓인 아동은 17만명을 넘는다. 화려한 도시 풍경 뒤에 감춰진 숫자다.
같은 이미지의 벽화는 런던 도심 센터포인트 타워 인근의 콘크리트 구조물에서도 발견됐다.
뱅크시는 성탄절마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비추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산타의 순록이 노숙자가 눕는 벤치를 끄는 장면, 상처 입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처럼 그의 작품은 언제나 달콤한 연말 분위기 속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가리키는 하늘은 희망일 수도, 우리가 외면해 온 책임일 수도 있다.
연말은 나눔을 이야기하기 가장 쉬운 시기이지만, 동시에 가장 형식적으로 흐르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기부 버튼을 누르고,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모두 갚았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뱅크시의 그림이 말하듯,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추상적인 '불쌍함'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곁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삶이다.
올해의 끝자락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살펴보자. 따뜻한 공간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는 아이와 이웃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말의 불빛이 진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빛이 가장 어두운 곳까지 닿아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위로의 계절이라면, 그 위로는 말이 아니라 시선과 관심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김현주 사회에디터 5151khj@md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