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 일제에 맞선 역사의 현장을 가다

입력 2025.12.07. 15:15 수정 2025.12.09. 15:37
광주학생독립운동 기자체험 현장취재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만세운동이자 학생들이 주도한 역사적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주에서 광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 남학생의 한국 여학생 희롱사건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단순한 학생 시위 차원을 넘어 전국적 독립운동으로 확산됐다.

1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일일 기자체험에 참가한 학생기자단은 광주교대와 전남여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등 역사 현장을 견학하며 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됐다.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차 시위가 일어난 명치절 기념식에서 가미가요를 부르지 않는데서 시작해서 광주역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학생 시위 규모가 커지자 일본 경찰의 주동자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됐다.

광주 독립운동은 왜 일어났는가? 일본은 1910년에 강제로 무력을 동원하여 우리나라의 구권을 강탈,그것들에 대항한 의병전쟁과 애국민족운동을 무자비하게 탄합하고 무단정치를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3'1운동 이후 각지에서 일어난 민족운동과 항일투쟁은 광주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전국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결성하고 동맹휴학을 벌이는 등 거국적 항일운동으로 확산됐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퍼졌다.광주에서의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돼었으며 학생들의 투쟁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중국,일본,연해주,미주지역 등 해외로까지 파급되어 명실공히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민족운동으로 승화 되었다.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일제 시민지교육그리고사회,학생 조직의 결집 그리고 나주역 조선 여항색이 일본남학생한테 희롱당해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또, 일제강점기의 교육방식은 매우 심각했다. 일제 교육정책의 목표는 우리 민족을 영원히 말살하고 일본의 하등국민으로 만드는데에 있었기에, 꼼꼼하고 구체적인 교육방식 대신 살아가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기술과 지식만을 갖추도록 하였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는 민족의 독립과 쟁취,그리고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인 소녀회가 조직되었다.

1928년 11월 초순에 장재성의 누이 동생인 장매성의 주동의로 광주사범학교 뒷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비밀 단체 조직을 결의하고 민족 운동의 이론과 실천방안,여성 해방 운동에 관한 문제로 토의하였다.그리고 회원을 늘리기 위해모두 노력하기로 다짐하였다.

한편 남학생이 중심이된 독서회와도 밀접하게 손잡고 광주 학생운동이 폭발하였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다. 하지만1930년대 초반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이처럼 광주학생독립운동운 1920년대 일어난 일제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운동으로 후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김유은 이주원(효천초 5) 김나율(효천중1) 이서준(봉선초5) 안지후 이재열(이상 대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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