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갑산 기슭 천년고찰 불갑사
봄에는 짙은 산록 푸르름 가득
영광산림박물관 전시도 볼거리
법성포·백제불교최초도래지 등
불교문화 역사 체험도 한번에

종교가 없는 필자에게 절은 좋은 여행지 중 하나다. 도심과 떨어진 산에 있다 보니 문화재들이 잘 보존된 것은 물론이고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고찰도 수두룩하다. 불교를 한반도에 처음 전한 두 인물은 중국 전진의 승려 순도와,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 존자다. 순도는 372년에 고구려에, 마라난타 존자는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파했는데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영광 법성포다.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사찰이 아닌, 인도에서 갓 건너온 불교의 모습은 어땠을까. 마라난타존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던 불교의 깨달음은 무엇일까. 하루 동안 영광을 걸어보며 얻은 것은 일상에 지친 자신을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였다.

◆ 봄의 정취 가득한 불갑사 가는 길
이번 뚜벅이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는 상사화 축제 장소로 유명한 불갑사다. 가을이 되면 엄청난 인파에 엄두도 못 내겠지만 산천이 이제 막 색을 입기 시작하는 이 시기에는 불갑사도 한산하게 돌아다닐 만하다.
불갑사는 인도 출신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법성포로 들어온 뒤 처음 지은 절이다. 백제 침류왕(384~385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름도 모든 사찰 중 으뜸이 된다는 뜻으로 부처 불(佛)과 첫째 갑(甲)을 따서 지었다.
주차장에서 불갑사까지는 웅장하고 커다란 일주문을 지나 10여분을 걸어가야 하지만 알록달록한 연등이 도로 양옆에 매달려 있고, 갖가지 꽃들과 정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방문객들은 튤립을 배경으로, 혹은 조형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연신 찍어댄다. 불갑사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영광산림박물관도 있다. 박물관 진입로에는 하얀 꽃잎이 나무 이파리처럼 피어있는 나무가 양쪽에 심어져 있다. 부처님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나무인데 하얀 꽃잎이 떨어지고 6~7월이 되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된 영광산림박물관에는 숲과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는 다채로운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1전시관 '숲을 만나다'는 산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으로 벽면에 바위와 나무 같은 구조물을 통해 전시관 전체를 커다란 숲처럼 만들었다. 2전시관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전시된 호박 화석 안에는 작은 벌레들이 있어, 어릴 적 보던 영화 쥬라기공원이 떠오르기도 한다.
2전시관과 3전시관 '영광의 숲을 알다'에서는 영광 산림의 다양한 동식물 정보를 전달한다. 다양한 식물 압화과 불갑산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 모형도 있다. 4전시관 '체험공간'에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통해 영광의 문화관광자원과 산림자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식용버섯이나 독버섯에 대한 모형과 자료들은 상당히 유익하다. 아이가 있는 방문객이면 함께 오는 것을 추천한다.
◆ 자연과 함께 불갑사에서 '마음 휴식'
영광산림박물관을 나와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의 석조 구조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고대 인도불교의 사원이 재현된 불갑사 탑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간다라 불교유적인 '탁티박히' 수도원을 본땄다고 한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중앙탑 주변을 작은 토굴들이 감싸는 형태로 토굴 안에는 고대 인도 승려들이 수행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처음 불갑사가 생겼을 때도 이런 고대 인도불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 많지 않았을까.

불갑사는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중건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지만 현재 모습 자체로도 너무도 아름다운 절이었다.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금강문 앞에 서면 계단을 따라 일직선으로 사천왕문부터 만세루까지 한눈에 보인다. 금강문을 지나 오른편을 보면 여러 보물과 불교경전을 모시고 있는 성보박물관이 있고, 그 앞의 홍매화 나무가 유독 빨간 꽃잎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 불갑사 대웅전에는 보물제 1377호인 목조석가여래 삼존불좌상을 모시고 있는데, 특이하게 대웅전 정면 방향이 아니라 측면 방향으로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불갑산 등반객과 절 방문객들이 갈증을 달래고 가는 세심정에는 방문객들이 갈증을 달래고 갈수 있도록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샘에는 부엉이 세 마리 조각상이 불갑산 경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 속담에 '부엉이가 새끼 세 마리를 낳으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절 뒤편 관음전으로 향하는 돌계단에는 새하얀 수선화가 피어있고, 무량수전 뒤로는 거대한 벚나무가 아직도 꽃잎을 붙들고 있었다.
갖가지 꽃과 나무가 감싸고 있는 불갑사는 경내를 차분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사찰이었다. 일상에 지치고 힘겨울 때,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을 방문해 휴식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 고을을 지키던 성이 아름다운 숲길로 '법성진성'
불갑사를 나와 영광 법성포로 향한다. 불갑사가 으뜸되는 사찰이라는 뜻이라면 법성포는 '성인이 불법을 전래한 포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라난타 존자가 불교를 전하기 위해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 법성포다. 이번 여행은 불갑사를 짓기 위해 마라난타 존자가 걸어온 길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셈이다.
법성포 여행의 첫 출발지는 법성포를 감싸고 있는 법성진성이다. 전남도 기념물 205호 문화재인 법성진성은 높이 약 4m, 둘레 약 1.5㎞ 규모로 1514년에 지어졌다. 당시 법성에는 국방의 요새인 수군진과 국가 재정의 중추기관인 국내 최대 조창이 있었는데 이런 지리적·경제적 중요성 때문에 해안가 가까이 성을 축조한 것이다. 법성포 곳곳에 남쪽 벽면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동문부터 서문까지 이어지는 북쪽 벽면은 법성포 뒷산을 따라 그 형태가 온전히 보존돼 있다.

이곳 북쪽 벽에는 산 능선을 따라 300m가량 이어지는 울창한 숲길인 '법성진 숲쟁이'가 있다. '쟁이'가 '성'이라는 뜻이기에 그대로 풀이하면 법성진을 보호하는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 이곳 숲쟁이는 군사시설과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주민들에게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느티나무와 팽나무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숲은 법성포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오랜기간 사랑받아 왔다. 목재 계단을 오르면 산 능선을 따라 성벽과 함께 걷는 나무 산책로가 아름답게 뻗어있다.
산책로 옆 성벽 중간중간에는 '해남성돌', '장성성돌'이라 적힌 표지판들이 있다. 축조 당시 법성진성은 전라도 28개 군현의 고을 백성들이 동원돼 쌓았는데, 진원현(장성군 진원면)에서 30척, 보성군에서 80척 등 지역별로 얼마나 쌓았는지, 책임자는 누구인지 등이 기록돼 있어 조선 중기 군사 및 행정 제도에 관한 중요한 연구 자료로 쓰이고 있다.

법성진 숲쟁이의 끝에는 법성진성 팔각정이 있어 법성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불과 십수년전만해도 법성포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영광군은 2009년 법성포 앞바다에 매립지를 조성했는데 영광 굴비타운으로도 불리다 2012년부터 법성포뉴타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개발할 땅이 부족한 항구의 특성상 도시 발전을 위해 새로운 땅이 필요했을 테지만, 둥그렇게 움푹 들어간 법성포의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지금의 매립지가 낯설기도 할 테다.
◆ 한반도 불교 시작점 중 하나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이하 마라난타사)'로는 세 방향에서 들어갈 수 있다.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은 법성포에서도 돌아가야 하고 주차장에서도 300m 이상 걸어가야 한다. 가장 가까운 길은 45m 높이의 목조탑 모양을 한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승강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마라난타 존자상 뒤편으로 입장할 수 있다. 세 번째가 바로 법성진성과 가까운 숲쟁이 꽃동산을 통해 진입하는 것이다. 숲쟁이 꽃동산 주차장에서 270m가량 이동하면 마라난타사 탑원쪽으로 진입이 가능한데 5월에는 빨간 철쭉이, 6월에는 노란 금계국이 절정을 이루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숲쟁이 꽃동산을 가로질러 마라난타사로 들어서면 앞서 불갑사에서 마주했던 탑원을 볼 수 있다. 당초 삼국시대 불교 도래에 대해 고구려와 신라의 경로는 분명했으나, 백제는 학술 고증을 통해 1998년에서야 영광 법성포를 통해 전래된 것이 밝혀졌다. 이를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2006년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 바로 마라난타사다.

마라난타사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데 마라난타 존자가 태어난 간다라(현재 파키스탄 북부)지역의 불교문화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간다라 미술관 앞 광장에는 꼭대기에 사자상을 얹어 놓은 '아쇼카 석주'가 우뚝 서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선사한다. 아쇼카 석주를 지나면 '존자정'과 넓은 데크가 있는데, 해가 질 때면 법성 앞바다와 영광대교를 배경으로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아쇼카 석주 위 사자가 바라보던 방향에는 마라난타사의 법당 역할을 하는 부용루와 마라난타 존자상이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부용루는 2층엔 불당이 있고 아래 층엔 석가의 일대기가 조각돼 있다. 고행 수행을 하다 피골이 상접한 설산수도, 태자 자리를 포기하고 출가를 결행하는 유성출가, 나무 밑에서 사색에 잠기는 수하관경 등이 새겨져 있다. 수하관경상에는 유독 석가의 가슴 부분이 검게 도드라져 보여 민망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부용루 뒤편 언덕에 자리 잡은 마라난타 존자상은 사면대불상(四面大佛像) 형태로 마라난타사를 포함한 4방향을 모두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마라난타사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이색적인 건축물과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장소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과 함께 불갑사부터 법성포와 마라난타사까지 둘러보고 멋진 추억을 쌓길 바란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