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문학적 성숙 이룬 곳
'순수시' 운동 펼친 영랑 김윤식
나고 활동한 본 고장으로 이름
자연 아름다움 노래한 김현구도
2012년 시문학파기념관 개관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 더불어
영랑·현구 정신 계승사업 등도

강진은 한반도 서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곳이지만 한국 문학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강진으로 유배와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과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이끌었던 시문학파의 영랑 김윤식(1903~1950)이 강진을 넘어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이들이 남긴 무형의 문학적 자산은 현재 강진의 관광 산업을 이끌 뿐만 아니라 이 고장의 인문학적 감수성과 힘을 길러내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학자의 문학 깊이 성숙하게
1801년 강진으로 유배와 약 17년을 이곳에서 생활한 정약용은 이 시절 방대한 저술활동을 펼치며, 그의 문학적 자산을 지역에 고스란히 남겼다.
특히 그는 이곳에서 많은 한시를 지었는데 이 시기 대표적 시집으로는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이 있다. 이 때의 작품에는 유배 생활의 고독과 자연 속에서의 성찰이 주로 담겼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학문적 사유까지 담겨 후대까지 깊은 울림을 전한다.
또 그는 이 시기 산문과 수필도 다수 남겼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대표적인데 시대를 비판하고 개혁을 모색하는 철학적 사유 등이 담겼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저술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에도 문학적 표현 등이 돋보이는 등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그의 문학적 깊이를 한층 성숙하게 만든 시기였다.
이 시기 남긴 그의 작품들은 조선 후기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말의 아름다움 극대화한 영랑
강진하면 시문학파를 빼놓을 수 없다. 순수시 운동을 한 유파로 1930년대에 정치적 경향시에 반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는 운동을 펼친 이들이다. 은유와 심상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등 현대시의 출발점이 되는 시문학파의 핵심 인물은 용아 박용철과 김윤식이 꼽힌다. 특히 김윤식은 시에 쓰이는 언어를 음성 구조적 측면에서 세심히 신경쓰며 창조적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현대시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손꼽힌다.
김윤식은 문학사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많이 실리며 우리 국민에게 친숙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등 같은 곱고 아름다운 작품이 많고 우리말과 사투리의 아름다움을 발굴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많은 이에게 친숙한 김윤식은 강진에서 태어나 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등 강진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영랑(永郞)'을 호로 하는 그는 1903년 강진읍에서 태어나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휘문의숙으로 진학했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인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긴 채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했으며 이 시절 용아 박용철을 만나 잦은 교류를 가졌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시 창작에 몰두했다. 1930년에는 '시문학'에 참여해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독(毒)을 차고' '가야금' '춘향' 등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의식을 나타내고 민족의식을 담아낸 작품을 발표했으며 1935년 '영랑시집', 1949년 '영랑시선'을 출간하기도 했다.
1950년 9월 북한군이 후퇴하며 쏜 유탄에 맞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김영랑은 86편의 시를 남기는 등 한국 문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후인 2018년에는 항일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 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시문학파 또다른 주역 김현구
김현구 시인 또한 김윤식 시인만큼이나 강진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자 시문학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김영랑과 한 집안 사람으로 이름 항렬을 따졌을 때 조카에 해당한다.
1904년 강진읍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강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며 시 창작을 했다. 1930년 5월 '시문학'2호에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물 위에 뜬 갈매기' '거룩한 봄과 슬픈 봄' '적멸' 등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그는 이후 4년 동안 8편의 시를 더 발표했다.
영랑과 같은 집안 사람인데다 비슷한 나이, 같은 유파인 시문학파였으나 김윤식과 김현구는 서로 다른 시 방향을 보였다.
영랑이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 애환이 서린 시를 썼다면 김현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서정적으로 표현해왔다. 특히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인간 내면의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했는데 고향인 강진에 대한 시도 다수 있다.
1936년에는 '시문학'사를 통해 '정지용 시집' '영랑시집'에 이어 '현구 시집'을 출간하려 했으나 박용철의 와병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결국 사후인 1970년 아들 등에 의해 '현구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생애 85편의 시를 발표하는 등 그의 활발한 활동에 비해 생전 시집을 발간하지 못해 묻혀 있던 그의 활동상은 사후에라도 발표한 '현구 시집'을 계기로 김용직 서울대 교수, 김학동 서강대 교수, 김선태 목포대 교수 등에 의해 연구논문일 발표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시문학파 아름다운 시어, 후대까지
강진은 이같은 문학적 자산을 십분 활용하고 보존하는데 힘쓰고 있다. 특히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김영랑과 김현구를 중심으로 문학 관련 프로그램 등을 2012년 개관한 시문학파기념관이 주가 되어 활발히 펼치고 있다.
시문학파기념관은 특정 문인이 아닌 시문학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강진 출신의 영랑 김윤식과 김현구는 물론 시문학 동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 문학관에는 이들의 친필 원고와 육필 원고, 생애 자료 등이 전시돼 방문객이 시인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시문학파기념관은 영랑 생가 바로 옆에 자리해 영랑 생가와 관련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영랑생가는 김윤식이 1903년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유학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948년 9월까지 삶을 펼친 공간으로 몇 차례의 전매 끝에 1985년 강진군이 매입했다. 이후 1986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됐으며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된 영랑생가는 강진의 인문학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영랑생가에서 펼쳐지는 프로그램은 국가유산청 고택종갓집활용사업에 14년 연속 선정돼 운영 중이며 이곳에서는 유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감성 인문 체험프로그램인 영랑 감성 아카데미와 음악극 등이 3월부터 11월까지 펼쳐지고 있다.
음악극 '모란이 피기까지'는 영랑의 인생과 시인으로서의 삶, 독립운동 등을 다루는 작품으로 강진군 청자극단의 창작극이다. 영랑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랑 시인학교를 60세 이상의 군민을 대상으로 창작반과 낭송반으로 나눠 운영, 군민들의 인문학적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창작반 경우 시에 관심 있는 군민을 시인으로 양성해 등단 성과를 내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특히 기념관은 영랑시문학상과 현구문학상을 운영해 김윤식과 김현구의 시혼을 기리고 전승하는 한편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고 있다. 두 문학상 모두 전국 규모의 상으로 각각 4월과 9월 시상식을 갖고 있으며 상금 3천만원, 2천만원을 지원하는 등 역량 있는 작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앞으로도 강진은 시문학파기념관을 중심으로 김윤식과 김현구의 문학적 정신을 전승하고 이와 연계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문학적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한편, 관광자원으로 적극 연계할 방침이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
[독자권익위원 칼럼] 의료인 면허 박탈법은 온당한가 국회는 4월 27일 '의료인면허 박탈법'으로 알려진 의료법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간호사 협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단체와 여당에서 이 법안을 반대하고 여러 대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끝내 다수당의 힘으로 법안통과를 관철시켰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기간이 끝난 이후 5년간, 금고 이상의 형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 이후 유예기간이 끝난 뒤부터 2년간 의사면허가 취소된다.여론이 말하는 의사면허 취소의 이유는 대체로 세가지 정도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이 버젓이 진료한다' 또는 '같은 전문직인 변호사도 유죄판결 시 자격정지되는데 왜 의사는 처벌받지 않는가' '의사들은 자정능력이 없다' 등이다. 높은 윤리성을 가져야할 의사라는 직업이기에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도 많다.첫째, 성범죄자와 강력범죄자 의사들이 버젓이 진료하는가. 그렇지 않다. 의사 성범죄 경우 현행법으로도 면허가 사실상 박탈된다. 아청법에 의해 모든 성범죄에는 최장 10년간 취업제한 명령이 내려진다. 그 기간 동안은 모든 의료기관에 취업이 불가능하고 개업도 할 수 없다. 장기간 징역을 선고 받을 만큼 강력범죄를 저지는 의사는 인신구속 기간 동안 진료를 못하게 되니 이미 성범죄자나 강력범죄자들이 일정기간 진료를 못할 안전장치는 준비돼 있다.중요한 것은 금고형인 경우다. 중범죄가 아닌 부주의만으로도 나올 수 있는 형량이다.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폐원으로 인한 임금체불만으로도 금고형은 가능하다. 또한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 해당될 수 있는 집시법 등으로도 금고형을 받고 면허취소가 될 수 있다.둘째, 변호사 같은 다른 전문직도 범죄시 자격이 정지되는데 의사는 왜 열외인가.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 변호사와 의사는 전문직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하는 일이나 성격이 다르다. 변호사는 법을 다루기에 범죄행위와 직무관련성이 있다. 집시법을 위반한 의사가 법 위반에 대한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면허를 취소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집시법 위반 사실과 의사로서의 능력은 상관관계가 없다. 전문직군 간의 국가적, 사회적 피해 정도에 대한 비교 없이 단지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똑같이 면허, 자격 취소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변호사가 범죄를 저질러도 자격 자체는 유지된다. 변호사협회의 등록이 취소돼 개업을 못하는 것일 뿐이다. 김한규 전 서울변회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법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엄격한 규제를 받는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를 법적으로 같은 취급하는게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보다 세밀하게 범죄를 한정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고도 말했다.셋째, 의사들은 자정 능력이 없는가. 실제로 의사들은 비윤리적인 동료 의사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부의 범법 행위로 인해 의사 전체가 비난 받는 것으로 생각해 매우 비판적이다. 일부의 일탈이 전체 의료계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지는 데 대해 매우 우려한다. 이에 의협에는 전문가 평가제나 중앙윤리위 등 자정작용을 위한 기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경찰이나 공무원이 의료행위의 윤리성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의사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의사단체에 조사·징계 권한 뿐 아니라 면허 관리권한을 부여해 자율 정화할 수 있게 한다. 의료인 면허박탈법이 공표된다면 이런 자정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오직 법에 의한 처벌만이 능사가 될 것이다.2024년 어느 날, 이 도시에 단 한명 뿐인 흉부외과 교수가 밤새 수술 후 귀가하는 길에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크게 일으켜 금고의 선고유예형을 선고받는다. 환자들은 주치의를 잃게 된다.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말자. 우리 부모의 주치의일 수도 있다. 김상훈 광주시의사회 법제이사·광주병원 내과원장
- · [독자권익위원 칼럼] 법무보호대상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
- · [독자권익위원 칼럼] 49대 51의 법칙
- · [독자권익위원 칼럼] 악성 댓글 폐해, 대책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