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늪에 빠진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

입력 2025.02.02. 13:39 수정 2025.02.02. 17:27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 대표

가슴 안에 울화통 비슷한 게 생긴 건 작년 12월3일부터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공포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도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와 무기력증이 혼재하는 상황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5월 광주를 경험한 세대여서도 아니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극공감 해서도 아니다.

흡사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기가 막힌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그 충격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국회에 헬기가 뜨고, 무장한 특전사 군인들이 민의의 전당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는 폭거,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끌어내라. 다 잡아들여서 싹 정리하라". 헌정을 유린하는 증언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현실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국민들 앞에 참회의 삼보일배를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해괴한 논리로 법망을 피해가려는 그의 비굴한 모습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고 경고성이었다'. '요원을 끌어내라는 지시였는데 의원으로 둔갑시켰다'는 식의 궤변들.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엄두를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울화통이 또 도진다.

尹측, 궤변으로 일관

12·3계엄사태의 충격파는 대한민국을 끝없는 나락으로 이끌 수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의 포브스誌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 사태에 대한 비싼 대가는 한국의 5천100만 국민들이 시간을 갖고 분할해서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 뼈아프다.

실제 계엄사태 이후 환율이 들썩이고 주가가 급락하고 해외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것은 대표적인 시그널이다. 세계사적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무이한 나라 대한민국.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를 배우기 위해 동남아와 중동 국가들이 줄을 섰던,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일순간에 무너뜨린 게 바로 12·3비상계엄이었다.

한낱 '경고성'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혹독하고 비싼 대가다. 우리 앞에 닥친 메가톤급 충격파를 고려하면 보수니, 진보니 지금 아스팔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묵은 정쟁이 한가롭다.

나라의 현실이 이처럼 엄중한데도 사태를 초래한 세력들은 여전히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있다. 적어도 헌정을 짓밟고 국가를 누란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책임만큼은 져야 하는데도 해괴한 법리만 내세우고 있다.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통치권이고 경고성이었다. 국회 봉쇄가 아닌 질서 유지 차원에서 군병력을 투입했다.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던 만큼 목적범인 내란죄 처벌이 불가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법리가 먹히지 않을 사실관계와 증언들은 차고도 넘친다.

무엇보다 계엄군을 직접 지휘했던 주요 군 사령관들의 증언이 구체적이다. 대통령을 상대로, 없는 사실을 꾸며댈 이유가 없다. 온 국민이 TV와 모바일을 통해 지켜봤던 계엄 당시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엄연한 사실과 증거들을 거스른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얼마든지 불법계엄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공표하는 셈이다. 헌재의 시간이 임박했다.

백척간두의 위기 때는 나라를 바로세울 핵심 주체가 정치권인데, 지금의 상황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헌정사상 첫 현직 구속기소 대통령'을 배출한 오명의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이 대통령의 궤변을 측면 지원하는 데 여념이 없다.

사법부를 비판하고 헌재까지 압박한다. 심지어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는가 하면 이름부터 오싹한 백골단을 국회로 불러들이는 국회의원까지 있다. 모든 걸 떠나 계엄의 위헌, 위법성만큼은 자명한데도 여기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진영 갈등', '이재명 불가론'의 프레임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 와중에 뒤로는 조기대선을 염두에 두는듯한 모습이 이율배반적이고 한심하기까지 하다. 딱하기는 민주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케케묵은 양비론으로 접근하려는 게 아니다.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표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보수 과표집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민주당이나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탄핵 찬성 여론을 오롯이 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권 눈높이 못미쳐

민주당의 독주나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반감이 작동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대표의 비호감도가 40%를 넘어선다는 지표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당내 비명 그룹에서 일극체제의 정치문화를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대표가 그토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란다면 지금 시점에서 대선 불출마를 고려해 봄직 하다'는 일부 지식인들의 시각도 있다. 당내 역학구도상 그것이 어렵다면 민주당의 체질과 문화를 확 바꿔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비판세력과 중도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용의 리더십, 국민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지금 민주당에게 간절하다.

많은 이들이 벚꽃대선, 장미대선을 얘기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이나 형사재판 내내 계엄의 당위성과 수사의 불법성, 내란죄 불성립 등으로 맞설 공산이 크다. 보수 진영의 여론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헌재의 탄핵심판을 통해 엄중히 매듭을 지어야만 역사가 바로 선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끝없이 추락하는 대한민국의 좌표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나라가 온통 계엄.탄핵에 파묻혀 엉망진창이 돼 버린 시대. 고작 이런 정도의 국격을 후세들에게 물려줄 수야 없지 않겠는가.

탄핵과 조기대선, 이를 통한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 국격 회복. 이것이 대한민국호가 가야할 길이다. 무릇 지름길이 안 보이면 큰 길로 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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