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은 위험에 계속 노출돼있다. 최근 뉴스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지진, 호우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들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로인해 사람들은 더욱더 안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대부분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충분한 대비·대응법을 알고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안전에 대해서 배워보고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는건 어떨까.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하고 안전에 대해 배우는 광주근교 안전체험관들을 소개한다.
실제 현장처럼 실감나게…빛고을국민안전체험관
사건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을까. 광주 북구 오치동에 자리한 빛고을국민안전체험관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워볼 수 있는 곳이다. 호우, 지진, 화재 등 자연재해를 실제 현장처럼 생동감있게 체험 할 수 있다. 또 흡연, 알코올, 학교폭력 등 학교에서 일어날만한 내용도 다뤄 유익하다. 각종 재난상황들을 실제처럼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체험연령이 초등학생 이상이다. 12세 이하 아이들은 다칠 위험이 있어 보호자가 꼭 필요하다. 미취학 아동들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새싹안전 프로그램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벌어지는 가정 내 안전사고, 화재대피 등을 직접 해보며 안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용요금은 무료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월요일 휴관.
일상생활 속 안전대처법…전라남도교육청안전체험학습장
교통사고, 지진, 화재사고 등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들을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할 수 있다. 전남 영광 법성면에 있는 전남도교육청안전체험학습장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안전에 대해 자세하게 배울 수 있어 많이 찾는다. 이곳도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가정하며 대처 방안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다른 장소와 달리 규모가 커서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원자력재난에 대해서 알아보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일에는 학생들에게 안전을 가르치고 방학에는 교직원들에게 안전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체험 일정이 없는 날에는 지역사회와 연계한 안전체험도 있어 일정을 확인해보면 좋다. 이용요금은 무료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된다.
실·내외 즐길거리 가득…전북특별자치도119안전체험관
실제현장처럼 직접 체험해보고, 전시 등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전북특별자치도119안전체험관은 전북 임실에 위치해 광주에서 1시간정도 소요된다. 이곳은 실내·외로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실외는 놀이터와 포토존, 현장에서 사용했던 소방차 등 여러 장비들이 전시돼있다. 실내는 재난체험, 위기탈출체험, 전문응급처치 등 다양한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로 구성됐다. 교통사고, 화재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재난부터 항공기, 완강기 등 접하기 어려운 재난까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어 좋다. 체험은 초등학교 이상부터 가능하고 어린이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있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하고 각 체험관마다 비용이 있어 확인하고 가야한다. 월요일 휴관.
이경원기자 ahk7550@mdilbo.com
- 들불처럼 일어난 남도 의병, 목숨 바쳐 일제에 맞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호남인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전선에 앞장서 왔다. 사진은 조선 오란(임진왜란·이괄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이인좌의 난) 때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했던 호남 의병 2천143위를 기리는 충의사 호국충혼탑. '남도 의병' 발자취를 추적하다⑮끝·에필로그?지난 7월 25일 광복회 전남지부 회원들과 함께 우리 민족의 시원인 백두산(중국 장백산)이 천지와 간도 일대를 답사했다. 천지 비경을 보는 것은 날씨가 예측 불허해 운이 따라야 했다.올라가는 데 비가 쏟아지더니 천지를 보려고 할 때 구름이 살짝 걷히며 비경을 살포시 드러냈다. 신비로웠다. 단군신화가 떠올랐다.천지 올라가는 낡은 지프를 타려고 무려 2시간 넘게 줄을 섰다. 평일인데도 수만 명이 몰려 있었다. 충격이었다.대한민국 국민은 우리 팀 말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국말 안내판도 없다. 이상하다.중국인에게 장백산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몰렸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조선족 출신 가이드에게 물었다. 2007년 무렵부터였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 측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할 때이다.천지 입구에 영상물 상영하는 공연장이 있었다. 백두산의 사계(四界)를 소개하는 데 천지에 말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중국 역사를 열었음을 웅장하며 신비롭게 묘사했다. 이른바 장백산에서 중국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단군국조는 어디로 가야 할까. 역사가로서 느낀 자괴감은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의 토대이다. 정체성을 잃은 민족은 존립의 근거가 없다.1907년 8월 1일 일제는 기습적으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해 국권 침탈을 노골화했다. 서울 시위대 박승환 대대장은 부대 해산명령 대신 자결을 통해 부하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서울 시위대, 지방 진위대 등 자랑스런 대한제국 군인들은 해산명령을 거부하고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들 대부분은 당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부대에 합류했다. 의병봉기가 의병 전쟁으로 발전했다. '13도 창의군'이라 해 1만명 이상으로 구성된 의병부대가 서울 진공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일본이 1909년 9월부터 10월까지 전개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 당시 체포된 남도 의병장들이 광주감옥에 투옥됐다.남도 의병은 1907년 가을부터 1909년 10월까지 만 2년 동안 일본군과 400차례 가까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거의 이틀에 한 차례 전투가 치러진 셈이다.1909년 통계를 보면 남도 의병이 전국 의병 봉기의 60%를 차지했다. 일본이 정규군을 투입하고도 의병들을 쉽게 격파하지는 못했다. 비록 화승총으로 무장해 일본군과 정상적인 전투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물러서지 않은 전투를 치렀다.일본의 식민통치 야욕을 그만큼 늦추게 했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가 됐다는 점에서 남도 의병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설명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자랑스런 남도 의병의 모습을 잘 모르고 있다. 서훈자는 전국 통계의 1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이는 후손이 끊어졌거나 개인이 공적을 입증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더라도 전국 의병의 60%를 차지한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적음을 알 수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이에 전남도는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최초로 유일하게 미서훈 독립유공자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3·1운동 관련 미서훈자를 찾는 1단계에 이어 1895년 의병계열부터 1945년 해방 순간까지 우리 지역에서, 우리 지역 출신들이 국내외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사를 발굴하는 2단계 용역이다.2022년 10월부터 시작된 이 용역은 11월 15일 기준 의병계열 795명을 포함해 2천300여 명에 달하는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의병계열은 그 공적을 입증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다. 적어도 150명 남짓 서훈 신청이 가능하리라 본다. 60년 넘게 333명 서훈 신청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이다.남도 의병의 구체적 양상을 파악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일본이 편의상 분류한 이른바 '거괴(巨魁)'라 불렸던 심남일, 김태원 형제, 고광순, 안계홍 등 몇몇에 국한해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남도를 빛낸 많은 의병의 전적이 드러나지 않았다.예컨대 고흥 팔영산 만경암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고흥 의병 120명, 구체적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수형인 명부가 있는 보성 의병, 심남일이 이끄는 호남의소의 주력을 형성한 어쩌면 남도 최대의 의병부대를 형성한 영암의병 등의 존재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특히 완도, 진도, 신안 등 남도의 많은 섬 지역에서도 의병들의 활동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대형 군함까지 파병한 일본군은 때로는 해상에서 함포 사격까지 가하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남도 곳곳에서 전개된 의병들의 활약상을 그동안 피상적으로 살펴 남도 의병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일본군과 싸워 나라의 독립을 찾으려는 위대한 의병전쟁을 의병운동으로 성격을 짓거나 연합 의진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분산돼 활동해 항전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그 예이다.어등산은 김준·조경환·김원범 의병장 등을 포함한 한말 의병이 최소한 50여 명이 전사한 격전지다. 사진은 한말 의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한말호남의병전적지 표지석.대한제국기 남도 의병은 당시 세계 최강 일본군과 2년 넘게 최후의 1인까지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 장렬하게 옥쇄(玉碎)를 택했다. 그리고 그 의병 정신이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전쟁으로 발전했다. 이러함에도 한말 남도 의병의 활동을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이러한 문제 의식을 토대로, 무등일보는 그동안 살피지 못한 의병의 실체를 추적한 특별기획 연재를 했다. 보성 의병을 개척한 정태화, 나주 의병을 상징한 송석래·최택현, 연합의진의 상징 김치홍, 작전의 귀재 권영회, 조직의 귀재 유병기 그리고 고흥 의병을 이끈 신성구 등 새로운 의병 열전을 만들었다. 남도 의병의 스토리가 훨씬 풍부해지고, 성격 규명도 보다 분명해졌다.기획연재와 더불어 대중강연을 통해 남도 의병의 활약상을 널리 알렸다. 국내 의병 관련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이태룡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연구소장은 남도 의병의 핵심을 형성했으나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영암 의병의 의의를 심층적으로 설명해 지역민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학술포럼을 통해선 영암 의병의 실체를 밝혔다. 을미의병에서 남도 의병의 역할을 밝힌 장우순 박사, 그리고 해상 의병의 실체를 밝힌 신혜란 박사의 글 등은 그동안 학술포럼에서 쉽게 접하지 않은 주제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포럼에서 얻은 성과였다.남도 의병의 실체 규명, 빛나는 항전을 전개한 새로운 주역 발굴 및 이들의 활동이 지닌 역사적 의미까지 소개함으로써 역사의 대중화에 한걸음 더 다가간 결과였다. 앞으로도 남도 의병은 우리 민족사를 비추는 존재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박해현 초당대 글로벌화학기계공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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