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광역시와 도가 하나의 통합정부로 재편된 대한민국 첫 번째 행정실험이다. 이 실험의 성패는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타 권역의 통합 논의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새로운 분권 모델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또 하나의 정치적 구호로 남을 뿐이다. ‘출범 그 자체’보다 ‘출범 이후의 4년’이 더 중요한 이유다.
통합의 배경은 자명하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과 청년 유출이라는 복합 위기 앞에서 기존의 행정 경계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산업과 교통은 이미 광역화됐고, 청년의 삶은 행정구역이 아닌 생활권을 따라 움직인다. 통합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한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그릇만 만든다고 음식이 절로 담기지는 않는다. 이제 통합이라는 큰 그릇에 어떤 행정체계와 정치구조, 공간설계를 채워 넣을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할 ‘공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광주의 법적 지위와 5개 자치구, 그리고 전남 22개 시군의 행정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현재 이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첫째는 현행 5개 자치구와 22개 시군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행정적 안정성은 있지만, 이름만 바뀔 뿐 내부 구조는 그대로인 ‘무늬만 통합’이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둘째는 통합특별시 아래 광주특례시를 두고, 그 밑에 다시 자치구를 두는 3중 구조다. 광주의 특수성은 인정하나, 행정 계층이 복잡해져 효율성이 떨어지고 권한과 책임이 모호해질 우려가 크다. 셋째는 5개 자치구의 권한을 일반 시군 수준으로 대폭 강화하자는 것인데, 이는 자치구의 독립성은 높일 수 있으나 광주라는 대도시가 가진 행정적 통합성과 전략적 운영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필자는 행정 효율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제4의 길’을 제안한다. 기존 광주 권역을 통합특별시 내의 ‘광주특례시’로 재정립하되, 자치구는 ‘행정구’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구청장은 임명직으로 전환하여 행정의 효율을 높이고, 기초의회 폐지로 인한 대표성 공백은 통합특별시의회의 ‘중대선거구제’ 개편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에 대해 지방자치의 후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구감소 시대에 중복된 행정은 슬림화하는 대신, 주민자치회·온라인 정책투표 등을 통해 주민 참여를 오히려 실질화하자는 혁신이다. 대표성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전남 22개 시군 역시 재설계가 필요하다. 강제적 행정통합보다는 실제 생활·산업·교통권을 기준으로 행정서비스를 공동 운영하는 ‘협약형 광역행정’부터 시작하고, 재원과 행정역량을 공유하는 경험이 쌓인 뒤에 권역별 통합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다.
두 번째 과제는 이를 공간 위에 구현할 ‘다핵형 컴팩트시티(Compact City)’ 전략이다. 광주는 대학·병원·문화·창업이 집합된 중추 엔진으로 응집하고, 전남은 권역별 거점으로 압축해야 한다. 예컨대 목포·무안권은 해양물류와 관광, 순천·여수·광양권은 항만·산단·해양산업, 해남·완도권은 재생에너지와 해양 치유의 거점으로 특화할 수 있다. 저밀도 외곽은 무분별한 개발 대신 스마트농업·재생에너지·생태관광 공간으로 전환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는 중심도시를 해체하지 않고 주변 10개 지방정부와 광역시장이 교통·주택·경제성장을 함께 조정했고, 프랑스 리옹 메트로폴은 58개 코뮌을 묶어 생태전환과 도시계획을 광역 단위로 추진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8개 지방정부를 통합하면서도 로컬보드 체계로 생활권 대표성을 보완했다.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중심 도시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 도시를 광역권 전체를 살리는 강한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이제 시작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시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행정·공간구조의 재설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1년 차에는 행정체계 재편에 대한 대대적인 시민 공론장을 열고, 2년 차에는 특별법 개정과 재정 분권 모델을 구체화해야 한다. 3년 차에는 광역 교통·의료·교육·산업·생활권 재편 등 분야별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4년 차에는 주민 투표를 통해 통합특별시의 최종 구조를 확정해야 한다. 주민 스스로 통합의 완성을 선택하는 이 마지막 단계야말로, 이 실험이 진정한 민주적 과정임을 증명하는 장면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장, 지방의원, 주민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는 민주적 재료로 삼는 일이다.
통합은 광주만을 키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광주를 통합특별시의 중추 엔진으로 세우되, 전남의 시군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특화 거점으로 재편해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목표는 하나다. 광주와 전남이 하나의 생활경제권, 하나의 미래 전략으로 다시 설계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인 광주·전남은 이제 지방행정의 미래까지 앞장서 설계해야 한다. 통합은 화려한 출범식이 아니라, 치밀한 재설계와 시민적 합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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