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라운지] 돌봄은 왜 아직도 가족의 몫으로 남아 있는가

@김선희 송원대 간호학과 교수·광주전남 정신간호사회 재무 이사 입력 2026.05.14. 15:38
김선희 송원대 간호학과 교수
광주·전남 정신간호사회 재무 이사
광주시 자살예방위원회 위원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3%에 이르고, 전남은 27.4%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동시에 1인 가구는 804만 5천 가구, 전체 가구의 36.1%를 차지하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는데 돌봄을 함께 나눌 가족과 관계망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아프면 돌봄의 책임은 여전히 가장 먼저 가족에게 돌아간다.

이 부담은 막연한 걱정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치매역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치매 환자 가족의 45.8%가 돌봄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비동거 가족도 주당 평균 18시간을 돌봄에 쓰고 있었다. 여기에 외부서비스 이용시간은 주당 평균 10시간 수준이었다. 즉, 공적 서비스가 있다고 해도 가족의 시간과 노동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가족이 병원 진료를 동행하고, 약을 챙기고, 식사를 걱정하고, 밤사이 상태 변화를 살피는 구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동·청년층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가족돌봄 청(소)년의 실제 돌봄시간은 주당 21.6시간에 이르렀고 절반은 돌봄 때문에 학업과 진로, 미래를 계획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반영해 보건복지부는 2026년 3월부터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가족돌봄 아동·청년을 발굴해 사례관리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기돌봄비를 지원하며, 필요한 돌봄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돌봄이 더 이상 일부 가정의 사적인 부담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돌봄은 단지 시간의 부담만이 아니라 건강의 악순환을 만든다. 돌보는 가족은 자신의 치료와 휴식을 미루기 쉽고 경제활동과 사회적 관계도 축소되기 쉽다. 특히 1인 가구 증가와 고립 심화가 겹치면서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는 가구도 늘고 있다. 2025년 기준 1인 가구의 48.9%는 평소 자주 또는 가끔 외롭다고 응답했고, 몸이 아플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68.9%로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결국 가족돌봄의 문제는 한 사람의 헌신으로 버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건강안전망이 얼마나 촘촘한가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가족돌봄을 지원하는 제도도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위기아동·청년법이 시행되었고, 전남도는 2024년 ‘전남도 가족돌봄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했으며, 광주시도 ‘가족돌봄청소년·청년 지원 조례’를 두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일상돌봄 서비스 사업도 질병, 부상, 고립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청·중장년과 가족돌봄청년에게 재가돌봄·가사, 식사·영양관리, 심리지원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아직 가족돌봄 청소년·청년이나 일부 취약계층 중심의 지원이 많고, 중증질환자를 장기간 돌보는 가족 전체를 충분히 뒷받침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가족이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공적 지원이 자동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가족돌봄 정책의 존재를 넘어 중증질환 가족까지 포괄하는 지원체계의 확장이다.

그래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논의는 행정통합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2026년 3월 5일 제정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과 7월 1일 출범 준비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광주와 전남의 건강·돌봄 체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특히 전남은 넓은 생활권과 높은 고령화, 의료취약지 문제를 안고 있고, 광주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의료·복지 인프라와 통합돌봄 경험을 축적해 왔다. 두 지역이 통합된다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조직을 어떻게 합칠 것인가”가 아니라 “가족이 혼자 버티지 않도록 어떤 공적 지원체계를 생활권 안에 둘 것인가”여야 한다. 필요한 것은 가족돌봄 정책의 확대가 아니라, 가족돌봄을 지역 건강정책의 중심에 두는 체계 전환이다.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가족돌봄을 개인의 미담이 아니라 공적 지원 대상으로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환자나 노인만 관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돌봄을 수행하는 가족을 발굴하고 상담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제도 안에 넣어야 한다. 둘째, 가족돌봄 부담이 큰 가구에는 방문간호, 재택의료, 단기돌봄, 심리상담, 휴식지원이 한 묶음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서비스가 제도별로 나뉘어 있으면, 가장 지친 가족이 가장 복잡한 신청 절차를 감당해야 한다. 셋째,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광주권·목포권·순천여수권 같은 권역 단위에서 가족돌봄 지원 거점을 두고 시군구 현장 거점과 연계해 생활권 안에서 바로 상담과 사례관리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통합특별시의 강점은 더 넓은 행정단위가 아니라, 더 촘촘한 연계망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중증질환 가족에 대한 별도 정책 강화다. 암이나 희귀질환, 중증 뇌신경계 질환, 중증정신질환처럼 장기적이고 고강도의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가사 지원이나 단기 연계만으로는 부족하다. 퇴원 후 회복 지원에 가족을 포함하고, 가족의 소진 정도와 돌봄 가능성을 함께 평가하며, 필요하면 방문간호와 재택의료, 가족상담, 단기 휴식지원, 경제적 지원, 고위험군 사례관리까지 묶어 제공해야 한다. 가족이 버틸 수 있어야 환자의 회복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정책이 환자만 보고 가족을 보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끝내 절반만 성공한 것이다. 아픈 사람 한 명 뒤에는 대개 함께 지쳐가는 가족 한 명이 있다. 그 가족이 무너지면 환자의 회복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이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보여주어야 할 변화는 더 큰 조직이 아니다. 병원 문을 나선 뒤에도, 집 안의 식탁과 약봉지와 긴 밤의 불안 속에서도, 가족이 혼자 버티지 않게 하는 정책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더 큰 행정이 아니라 더 가까운 돌봄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더 넓은 지도보다 더 촘촘한 지원이어야 한다. 통합의 미래는 청사의 위치가 아니라 시민의 하루에서 증명된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이 더 이상 한 사람의 희생으로 남지 않는 도시. 돌보는 사람도 함께 보호받는 도시. 시민이 바라는 특별시는 결국 그런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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