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예술 상생…ACC 10주년 상징
전통 산수화와 미디어아트 결합
다양한 오브제 활용해 몰입감↑
전세대 공감 부르는 시간 '기대'

어둑한 전시장을 지나자 수미터 높이로 펼쳐진 산수화가 시시각각 변하고 곳곳에 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호남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표현한 호남의 풍경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고향이 담겼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는 4일부터 7월6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전시5관에서 'ACC 지역작가 초대전-이이남의 산수극장'을 진행한다.
ACC와 이이남 작가의 인연은 10년 전 개관 페스티벌 공연인 '세컨드 에디션(2015년)'이 시작이 됐다. 이 작가를 조명하는 공연으로 이후 ACC와 그는 여러 강연 프로그램과 야외 전시 등을 통해 인연을 이어왔다.
ACC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역과 함께 해 온 시간을 되짚고자 지역 중견 작가인 이 작가를 조명하기로 했다.
이번 전시는 이이남 작가에게도 큰 도전이다. 그동안 모니터라는 기기를 활용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오브제와 미디어를 통해 관람객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다.
전시는 '나의 살던 산수', '어머니 그리고 산', '고향 산수도', '아버지의 폭포', '산수극장', '고향의 빛' 등 6개 주제와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24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들은 작가의 고향인 담양군 봉산면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년기에 보고 자란 병풍산, 영산강의 풍경을 떠올리며 전통적인 산수도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해 관람객이 저마다 마음 속에 갖고 있는 고향을 떠올리도록 했다.
'나의 살던 산수'가 전시된 공간에 들어서면 이원수 시인의 시 '고향의 봄'이 노래로 흘러나오고 3개면에 비춰지는 산수화는 '찰칵'거리는 효과음에 따라 바뀐다. 전시 공간 가운데에는 거대한 거울 위에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고, 거울에 비춰진 조명은 천장에서 물결처럼 일렁인다. 나의 살던 산수는 작가가 어린 시절 달력 속 산수화를 넘겨보며 예술가의 꿈을 키운 것을 표현한다.

'어머니 그리고 산'은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두루마리 속 산수화와 아래 설치된 바위, 나룻배 등 오브제의 조합이다. 두루마리 속 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를 맞고 젖어가고, 날이 어두워지면 달이 떠오르며 주변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생전 어머니가 유람하지 못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며 사후에라도 그곳에 머물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선조들이 직접 갈 수 없는 중국의 비경을 그림을 통해 감상했듯, 작가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도 작품에 담아냈다.
'고향 산수도'와 '가족산수도'에서는 창밖에서 방안으로 들어오던 고향의 풍경을 표현했다. 포스코와 협업을 통해 스테인리스에 다양한 기법으로 산수를 표현하는가 하면,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그렸던 세한도를 통해서는 고향과 멀어지는 쓸쓸함을 표현했다.
다음으로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그 끝에 암벽처럼 거대한 산수화가 서 있다. 웅장한 암벽 사이에는 가느다란 물줄기의 폭포수가 연약하나마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으며, 폭포 끝자락에는 낡은 외투가 걸려있다.

'아버지의 폭포'는 작가가 가족을 위해 쉼없이 일하던 아버지를 그리며 만든 작품이다. 복도 끝에서 바라봤을 땐 한없이 멀어 보였던 아버지(폭포)였으나, 어두운 터널(인생)을 지나 작품에 다가갈수록 어느덧 작가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가장이 된 것을 표현했다.

'산수극장'은 넓은 공간 끝에 바위와 산 오브제를 설치하고 김하종의 '해산도첩'을 벽면에 비춘다. 이 전시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가운데에 길게 늘여진 여러 겹의 천들이다. 천 사이를 헤집고 나가다 보면 마치 이른 아침 안개가 낀 대나무숲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영산강의 밤과 노을을 표현한 '고향의 빛'이다. 호남 미술의 거장 소치 허련의 '미가 산수'에 영산강의 풍경을 배치했는데,

특히 바닥 면에 조명을 길게 늘여 강물이 일렁이는 노을을 표현했다.
전시를 기획한 배진선 학예연구사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작품 속의 삶에 공감하듯, 이이남 작가가 표현한 고향의 풍경, 호남의 풍경을 통해, 관람객들이 서로를 공감해보자는 의미에서 '산수극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산수화가 어려운 젊은 세대와 미디어아트가 어려운 어르신들 모두 다 공감하고 추억을 나눌수 있게 기획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고 말했다.

이이남 작가는 "쉼 없이 혁신과 기술발전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이 시대에 잠시 '멈춤'하고 산수 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며 "담양 봉산면에서 나고 자란 유년시절이 현재의 전시까지 이어졌다. 관람객들이 잊혀져가는 고향을 떠올리고 가족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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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날 '소년'과 함께 도청에 있었다면··· ACC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공연에서 관객들은 시민군이 돼 45년 전 광주를 경험한다. 5·18민주화 운동의 최후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일대는 시간이 지나며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도청 건물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며, 지상의 분수대 도로에는 5·18민주광장이, 지하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들어섰다. 45년 전 거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현재의 모습이 낯설 수 있지만, 반대로 당시 광주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5·18이 잘 와 닿지 않는다.과거의 흔적이 사라져간 옛 전남도청과 ACC를 두고서도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과연 5·18 정신과 가치를 이어지고 있는가.' 하지만 ACC는 수많은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인권·평화라는 5·18의 핵심 가치이자 범인류적인 가치를 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지난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도 그중 하나다. 올해에는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4차례 무대에 올랐다.'광주에 없었다'는 5·18민주화운동의 치열했던 10일간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관객들이 직접 무대에 들어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특히 올해 공연에는 각 공연마다 518명의 관객이 참여했다.ACC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공연에서 관객들은 시민군이 돼 45년 전 광주를 경험한다.극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45년 전 광주로 들어와 당시의 시민이 된다. 객석에는 당시 광산군이었던 광산구를 제외하고 4개 자치구 표지판이 있다. 역사책에서 접한 5·18이 아니라 산수동에서, 유동에서, 계림동에서, 당시의 시민들이 5·18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느껴 볼 수 있다.무대 위 배우들이 전남대학교와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대치할 때, 관객들은 숨죽이며 이를 바라보다가 상황이 마무리되면 무대 위에 올라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계엄군이 무대 위 시민군을 진압하려 들 때마다 관객들은 잠시 객석으로 피신하지만 이내 다시 어깨동무를 하고 구호를 외치며 계엄군을 몰아낸다. 자신이 앉아 있던 플라스틱 음료 상자를 하나하나 모아 도청 앞에 바리케이드를 쌓기도 한다.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민주 평화, 독재 타도, 계엄 철폐'를 외치며 45년 전 광주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무대 분위기가 돌연 바뀌고 계엄군이 총검을 장착하자,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구호 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관객은 거리에 숨은 방관자가 된다.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이 끝난 이후, 관객들은 쓰러진 이들의 주검 위에 흰 천을 가지런히 덮어준다. 화면에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따라 '나는 광주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띄워진다.ACC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술극장의 '빅도어'가 열리며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야외무대로 나선다.45년 전 광주를 겪은 관객들은 이제 현실로 돌아온다. 공연이 마무리되면 예술극장 극장1의 '빅도어'가 열리며, 배우와 관객들은 야외무대로 함께 나선다. 무대의 광주와 현재의 ACC가 연결되는 순간, 1980년 광주에 없던 관객들은 현재의 광주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부산에서 온 정영국 씨는 "45년 전 나는 광주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보고 당시의 시민들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인 것을 깨달았다"며 "먼저 희생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불의에 저항했던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전주의 한 대안학교 교사인 김혜정 씨는 "마지막에 문이 열리고 야외로 나가는 부분은 ACC에서만 가능한 마무리였던 것 같다"며 "함께 온 학생들도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에서 당시의 오월을 생생하게 보고 느낀 것 같아 보람차다"고 말했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계자는 "앞으로도 ACC는 5·18의 핵심 가치를 국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나는 광주에 없었다'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라며 "올해 말 옛 전남도청 복원에 맞춰 내년에는 더욱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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