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정부의 교육부장관은 '500만 학생을 위한 500만 개의 교과서'라는 구호 아래, 올 1학기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되었다. 이유는 '학생의 창의력'보다 '국·영·수 중심의 성적 향상'이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AI 인재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어떤 AI 교과목을 도입할 것인가?', '어떤 분야의 AI 교수를 채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현재 국내 대학에서 이뤄지는 AI의 교과목과 교수 채용은 대체로 컴퓨터공학 중심이다. 최근 AI 개념이 LLM(초거대언어모델),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과 같은 컴퓨터공학 기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AI 소버린(Sovereign AI)'처럼 국가 차원의 독립적 AI 생태계 구축은 전략적으로 반드시 확보해야 할 컴퓨터공학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학 중심적 접근만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새로운 AI 시대에 필요한 교육 혁신은 '창의적 역발상'이다. 역발상(逆發想)이란 이미 선점한 분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중심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Bottom-Up 융합'을 통해 차별화된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AI 융합 전략을 '버티컬(vertical) AI'라고도 한다.
지역 내에서도 이미 독창적인 원천기술을 보유한 대학 연구소와 기업들이 적지 않다. 오늘날의 AI 경쟁은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통찰하고 실행하는 역량이 핵심이다. AI 기술의 상당 부분은 이미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으며,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결국 AI를 가장 잘 사용하는 인재가 경쟁에서 앞서게 된다.
이러한 방향은 정부가 추진 중인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과도 일맥상통한다. RISE는 지역 대학을 산업 혁신의 거점으로 삼아, AI 융합 인재가 실재 산업 현장에서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사업이다.
우리 지역과 대학이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할 AI 융합 인재의 미래 분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문학과 AI 융합을 선도할 인재 양성이다.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 윤리, 인지과학, 디지털 인문학 등은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분야이다.
둘째, 광주시가 역점을 두고 있는 모빌리티, 반도체, 바이오 분야와 AI 융합이다. 이들 산업은 AI 기술이 활발히 적용될 수 있는 유망 분야지만, 산업별 요구와 환경에 따라 적용 방식은 각각 다르다.
셋째, 문화콘텐츠 분야의 AI 융합 인재 양성이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이자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창의적 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이 풍부하다. 예술과 기술, 과거와 미래를 잇는 융합형 인재 양성은 필수이며, AI 문화산업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AI 인재 양성의 패러다임은 기존의 Top-Down 방식에서 실무 중심의 Bottom-Up 방식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생성형 AI는 인간의 언어 구조와 질문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결국 기술과 사람, 현장과 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융합적 사고와 AI로 문제를 해결하는 '폴리매스(Polymath)형 도전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AI 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한 지능'이다. 이는 AI가 '컴퓨터적 사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분야와 학문을 융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AI 융합 교육의 시작은 '국·영·수 중심'이나 '공학 중심'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창의적 역발상이 우선이다.
창의성이란 '답이 하나'가 아니라 '답이 여러 개'다. 답이 여러 개일 때, 상상력과 창의력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미디어콘텐츠·컬처테크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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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기억을 지우는 야만의 전쟁
■김용근의 잡학카페재난과 전쟁의 가장 끔찍한 순간은 삶과 기억의 제거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재난 후 터무니없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었다. 집안 터 안에 남아 있던 기억할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더 넓게 보면, 인류의 기억의 건축물인 도서관과 유물이 불타고 무너지는 전쟁은 산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기억까지 공격한 것이다. 이것은 땅의 쟁탈이 아니라 역사라는 시간에 대한 폭력이다.2026년 4월, 트럼프는 이란을 향해 “한 문명 전체가 오늘 밤에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압박의 언어가 아니다. 국가는 협상할 수 있고 정권은 교체될 수 있지만, 문명은 협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오천 년 동안 쌓아 온 한반도의 역사적 기억을 없애는 것과 같다. 강대국의 지도자가 다른 문명을 말살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기 전, 인간을 역사 밖으로 밀어내는 폭력이다.우리도 그런 제거의 상실을 겪었다. 신라의 자부심이던 경주의 높이 80m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문화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238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과 절, 장육존상, 전각 등이 모두 불타 다시 중수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문화유산은 한 시대의 장식품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정체성의 거울이다. 그 거울을 깨뜨리는 행위는 한 민족에게 과거를 비추는 기억을 박살 내는 것과 같다.이스라엘 군부가 행한 가자지구의 폭력적 상황도 이 점에서 세계의 양심을 시험한다. 가자지구의 폭력에 대해 유엔 총회 결의와 국제사법재판소의 철수 요구, 국제형사재판소의 수사·체포 등 여러 조치가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는 2026년 3월 기준, 가자지구에서 역사적 건축물·박물관·고고학 유적·종교 유물 등 164개의 주요 문화유산 피해를 확인했다. 반복되는 파괴와 광범위한 훼손 앞에서 “군사적 필요”라는 말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이에는 이, 귀에는 귀’ 식의 폭력으로는 폭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이런 이유로 최근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이스라엘 참가에 항의하며 여러 국가관이 문을 닫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도했다. 이는 예술계가 이 문제를 단순한 국제정치가 아니라 문화적 책임과 윤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은 전쟁을 멈출 무기는 아니지만, 전쟁이 지우려는 기억을 다시 불러내며 저항하는 힘을 갖는다.인간은 무엇을 지켜야 인간인가? 이 오래된 질문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렇다면 문명 역시 협박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정치적 행위는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폭탄은 건물을 무너뜨리지만, 문명 말살의 정치적 언어는 세계의 도덕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폭력의 흔적이다.무형의 유산인 공동체의 역사를 지우고 왜곡하는 행위는 공동체의 지속을 막는 폭력이다. 이번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스타벅스가 ‘탱크 데이’ 행사를 열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일은 상업적 이벤트가 역사적 상처를 얼마나 쉽게 소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고통의 언어를 마케팅 장식으로 바꾸는 순간에도 야만은 시작된다. 그래서 유산은 땅 위에 남은 흔적을 넘어 보이지 않는 기억의 강이다. 야만은 먼저 강을 마르게 하고 탑을 무너뜨리며, 그 탑을 바라보던 공동체의 눈빛마저 가리고 지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오래된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곁에서 인간이 인간을 기억해 온 방식이다. 역사를 지우는 자는 시간을 지우는 정복자이며, 결국 증거와 함께 미래의 법정에 불려 나올 것이다.가자와 이란, 그리고 황룡사와 5·18이 우리에게 말한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보존해야 할 과거를 넘어,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자산이자 윤리라는 것을. 전쟁이 사람을 죽일 때 그것은 범죄가 되고, 기억을 죽일 때 그것은 미래를 지우는 야만이 된다. 따라서 문명을 이기는 군대는 없다. 다만 문명을 파괴한 군대가 역사 앞에 패배할 뿐이며, 결국 미래의 법정에 소환될 것이다.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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