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에 박노자 교수께서 '전라도 천년사' 편찬사업을 공격한 시민사회의 활동에 대하여 다소 비판적인 칼럼을 어느 신문에 발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박 교수가 이 편찬사업에 관해 다소간 잘못 알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 편찬사업이 갖는 몇 가지 문제점을 다시 요약하여 밝힌다.
이 책은 전라도라는 명칭이 공식화된 지 1천년(서기 1018-2017년)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시행되었다. 집필자는 213명, 작성된 원고가 13,000여 쪽, 34권의 총서형태로 인쇄되었다. 시민사회의 공개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배포하려 했으나, 시민사회의 사전 검증요구가 거세게 번져오자 수차에 걸쳐 검증이 이루어졌고, 결국에는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되고 수정이 요구되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적절한 마무리작업이 진전되지 않아 배포가 중지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시기 시민사회에서 제기된 150여 건의 문제점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사업진행과정에서 책에 포함될 내용이 변경되었으나, 책의 제목은 변경되지 않아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다. 처음 시작될 때 '전라도 천년사'를 내용으로 설정하였으나, 사업진행 중에 고대사까지 확장함으로써 내용은 '전라도 5천년사'가 되었지만 제목은 내용에 맞게 변경되지 않았다. 즉, 책의 제목과 내용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있다.
2. 고려시대 이후의 전라도 역사서라면 당연히 제주도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책의 내용과 사업주체 형성에서 제주도가 제외되어 있다. 이는 역사서 편찬에서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항이며, 여기에서도 '전라도 천년사'라는 제목은 맞지 않다. 전라도의 일부였던 제주도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3. 책의 제2권 제3편 제1장에서, 그 1장의 전체 내용이 한 쪽의 분량에 불과하다. 다른 장들은 대개 10쪽 내외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고려해볼 때, 책의 체제구성에서 객관적 균형성이 훼손되어 있다. 이는 이 총서의 전체 내용구성 체계에서 있을 수 없는 비합리적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는 일이다.
4. 주요 지명기록의 추정에서 드러난 비확정성 및 애매성이다. 이는 토착적이고 확실한 자료가 아닌 상태에서 음상사 등의 추정에 의거하여 제시된 지명(4권 57쪽, 63쪽, 249-251쪽 등)은 현재도 여러 이견이 제시되고, 미래에 변동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정성이 낮고 애매한 지명은 그 인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 인용 사례가 과도하게 많다고 생각한다(제4권 18-21쪽, 27-29쪽, 등). 일본서기는 비록 일부가 사실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많은 부분이 황당무계하거나 허구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며, 일본서기가 세상에 나온 역사적 배경과 서지사항, 그리고 편찬주체의 성격을 주목한다면 객관적 자료로 흠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한국의 정통사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대한 인용이 부차적으로 희소하게 취급되는 이유를 박 교수가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강역과 관련하여 정약용 등 일부 실학자들의 역사인식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중국중심과 조선비하의 중화론에 묻힌 사대주의 표현임을 다른 실학자들이 주장한 점도 아울러 지적해 둔다.
종합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는 박 교수가 지적했듯이 역사상과 역사관, 즉 역사인식의 틀에 차이가 있다는 견해에 공감한다. 즉, 인식이란 현존재에 구속되기 때문에 궁극적 객관성을 주장하기는 어려움을 고려할 때 역사관에 따라 인식내용에서의 차별성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복자와 피정복자, 친일세력과 민족독립세력 간의 인식과 해석의 차이에 상충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다만 그 인식과 관심의 차이를 인정하고, 첨예한 충돌을 완화해가면서 공정하게 소통하고 공존하는 방안을 탐구하는 일이 역사발전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한국역사에서 민족의 정신적 뿌리에 자리 잡고 유지되어 온 공동체사상을 강조하고자 한다. 비록 심성의 밑바닥에 장기간 깊이 잠들어 있을지라도. 민족혼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독립투사들의 역사인식이나 반민특위 재판에서 친일파에 속하는 이광수나 최남선의 고백에서도 유구한 민족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한다면, 민족사학 연구집단의 여러 갈래들에는 그 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들을 획일적으로 단정하여 국수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왜곡이 될 위험이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지구촌에서도 K-문화로 실현되고 있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이러한 공동체적 민족성의 현대적 구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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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주 동구가 고향사랑기부제로 이뤄낸 '기적' 2023년 1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에 나선 고향사랑기부제가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방재정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고향에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해주고 답례품을 주는 이 제도의 시발점은 일본이다.우리나라보다 15년 앞선 2008년부터 '고향납세(후루사토 납세)'를 도입한 일본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성과를 냈던 건 아니었다. 고향납세 첫해 기부금은 81억 엔(약 820억 원)에 불과했으나 정부와 민간의 협업, 역할 분담을 거쳐 2021년 8천320억 엔(약 8조 원)까지 늘어나며 일본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주요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해서 벤치마킹에 나선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역 소멸 위기의 자구책이 될지, 아니면 단순 이벤트로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그런데 시험대에 오른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2년 만에 '기적'을 이뤄냈다. 인문도시 광주 동구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동구는 타향살이하는 이들에게 '고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고, 지리적 특성상 타 지자체와 달리 특산물과 공산품이 부족해 이를 타개할 답례품 발굴도 절실했다. 직원들이 전통시장을 누비며 업체를 찾아냈고, 일손이 부족할 땐 택배 포장까지 소상공인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 초기부터 민간 플랫폼 도입, 고향사랑 지정기부사업 등 차별화된 전략과 '가치 있는 기부 경험이 지역을 변화시킨다'는 믿음과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덕분에 2024년 한 해 동안만 24억여 원의 기부금을 모아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위(기초 지자체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이렇게 모인 기부금은 동구의 대표적인 고향사랑 지정기부 사업인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 '발달장애 청소년 E.T 야구단 지원 프로젝트', '유기 동물 구조 보호'에 활용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숨김없이 보여준 믿음과 신뢰들이 쌓여 다수의 결실을 맺고 있다.최근 개관 90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의 노후화된 영사기와 음향시설, 스크린 등을 전면 교체한 뒤 마련한 '4K 특별상영회'를 비롯해 경기도 김포시에서 열린 '제3회 이만수배 발달 장애인 티볼 야구대회'에서 E.T 야구단이 전국 9개 팀과 겨뤄 첫 출전에도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7월 30일 정식 개소를 앞둔 '유기견 입양센터' 역시 반려동물 1천만 시대를 맞아 입양 중심의 회복 공간이자 생명을 존중하는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가 높다.더욱이 기존 광주광역시에서 운영하는 단 1곳의 동물보호소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정기부사업을 통해 운영되는 최초의 유기 동물 보호·입양 연계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운영은 민간 단체 피스윈즈코리아가 맡아 입양 전 임시 돌봄부터 건강검진, 반려 교육, 입양 연계 등을 통합적으로 전담할 예정이다.이와 함께 시작은 고향사랑기부제로 했지만, 지자체와 기부자의 관계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가 맺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속적인 인구 유입은 어렵기 때문에 이제는 지역에 찾아오는 '생활 인구'를 머무르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실제 기부자 거주지역을 보면 서울·경기가 57.9%로 가장 높고, 광주가 8.6% 수준이다. 그래서 관련 정책을 구상 중인데, 바로 기부자를 위한 '동구 사이버 주민증' 발급이다. 기부자가 동구를 방문하고 머무는 동안 문화·숙박 시설, 음식점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광주극장, E.T 야구단 경기 현장 관람, 유기견 입양센터 봉사 참여 등 체류형 프로그램을 통해 기부로 맺은 인연을 계기로 동구를 '제2의 고향'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평생에 단 한 번의 만남과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一期一會(일기일회)'를 비유하듯, 고향사랑기부제로 광주 동구와 인연을 맺은 기부자들 모두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지난 2년간 고향사랑기부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애써온 직원들, 그리고 광주 동구만의 고향사랑 지정기부사업에 마음을 보태준 기부자들 덕분에 단순히 '기부'에서 멈추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와 마음으로 채워지는 명장면들이 빼곡하다. 어쩌면 고향사랑기부제는 행정이 주축이 돼 있지만, 그 방향성은 기부자가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결과는 지역사회와 지역민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실천했기에 지금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앞으로 광주 동구가 만들어 내는 '제2의 기적'에도 무한한 관심과 참여,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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