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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위선과 야만

입력 2025.06.15. 14:36 최민석 기자

위선과 야만

위선과 야만은 같은 듯 다르고 양파 껍질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관념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서 비롯된 두 개념은 삶과 역사를 양분해 온 핵심 요소다. 이분법과 흑백논리, 갈라치기로 물든 요즘 세태도 위선과 야만의 잣대는 여전히 세상을 흔들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행태는 분명해진다.

위선과 야만이 공고해진 것은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이었다. 1617년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 국왕으로 즉위 후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자 개신교 신자들이 많았던 보헤미아 귀족들의 거센 반발이 도화선이었다.

30년 전쟁은 무주공산이었던 독일 영토를 노리던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이 됐다. 이 전쟁은 유럽 16개국과 66개 제국령에서 135명 대표가 체결한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일단락됐다. 5년 여 진통 끝에 체결된 조약은 네덜란드 독립, 루터파와 칼뱅파 등 개신교 인정, 프랑스의 알자스 획득 등을 골자로 이뤄졌다.

독일 영토는 만신창이가 됐고 스페인은 쇠퇴기로 들어섰으여 알자스를 둘러싼 독일과 프랑스는 이후 보불전쟁과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앙숙이 됐다. 가톨릭 아성도 무너졌다.

30년 전쟁은 1871년 통일을 이룬 독일과 이후 영국·프랑스 사이 갈등의 불씨가 돼 양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위선과 야만은 반대편 한반도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등 연합국 승리로 일본의 야만을 제거했음에도 냉전과 남북분단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 인명피해와 폐허만을 남겼다. 군부독재의 야만은 거센 친일청산과 민주화 요구를 경제개발이라는 위선으로 덮었다. 국가폭력의 악령은 12·3 계엄으로 되풀이됐음에도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으로 지워냈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 이후 자국 중심의 패권 추구와 이민자 탄압 등으로 새로운 야만의 시대를 열었다.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최근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발언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정직한 야만의 시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위선과 야만은 비극과 혼돈, 혹독한 희생을 강요하는 절대 악(惡)이다. 선(善)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부추길 뿐이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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