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야만
위선과 야만은 같은 듯 다르고 양파 껍질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관념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서 비롯된 두 개념은 삶과 역사를 양분해 온 핵심 요소다. 이분법과 흑백논리, 갈라치기로 물든 요즘 세태도 위선과 야만의 잣대는 여전히 세상을 흔들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행태는 분명해진다.
위선과 야만이 공고해진 것은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이었다. 1617년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 국왕으로 즉위 후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자 개신교 신자들이 많았던 보헤미아 귀족들의 거센 반발이 도화선이었다.
30년 전쟁은 무주공산이었던 독일 영토를 노리던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이 됐다. 이 전쟁은 유럽 16개국과 66개 제국령에서 135명 대표가 체결한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일단락됐다. 5년 여 진통 끝에 체결된 조약은 네덜란드 독립, 루터파와 칼뱅파 등 개신교 인정, 프랑스의 알자스 획득 등을 골자로 이뤄졌다.
독일 영토는 만신창이가 됐고 스페인은 쇠퇴기로 들어섰으여 알자스를 둘러싼 독일과 프랑스는 이후 보불전쟁과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앙숙이 됐다. 가톨릭 아성도 무너졌다.
30년 전쟁은 1871년 통일을 이룬 독일과 이후 영국·프랑스 사이 갈등의 불씨가 돼 양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위선과 야만은 반대편 한반도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등 연합국 승리로 일본의 야만을 제거했음에도 냉전과 남북분단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 인명피해와 폐허만을 남겼다. 군부독재의 야만은 거센 친일청산과 민주화 요구를 경제개발이라는 위선으로 덮었다. 국가폭력의 악령은 12·3 계엄으로 되풀이됐음에도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으로 지워냈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 이후 자국 중심의 패권 추구와 이민자 탄압 등으로 새로운 야만의 시대를 열었다.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최근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발언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정직한 야만의 시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위선과 야만은 비극과 혼돈, 혹독한 희생을 강요하는 절대 악(惡)이다. 선(善)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부추길 뿐이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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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도로 확장에 4천억원? 광주시장님, 그 돈 쓰시죠 호남고속도로.무등일보DB 호남고속도로 확장을 두고 광주시가, 아니 강기정 광주시장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도로 하나 넓히는 문제가 현직 시장을 이토록 궁지로 몰아넣을까.이 사업에 대해 알아보면 출퇴근 시간대면 꽉 막히는 호남고속도로 광주 도심 통과 구간(11.2㎞)을 편도 3차선으로 만들고 용봉IC 진입로를 만드는 사업이다. 국가고속도로니깐 원칙상 정부(한국도로공사)가 전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광주 도심 내 교통혼잡 개선을 위한 것이라 정부가 안 해주니 아쉬운 대로 지난 2015년 광주시가 부담을 50% 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문제는 그사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거치고 신규 아파트 단지 소음대책이 얹히면서 사업비는 3천억원에서 8천억원가량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광주시가 5대5로 재정을 분담하기로 했으니 최소 4천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광주시는 국비 지원을 끌어내려 했고,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에도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이런 상황에서 올해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광주시가 올해 분담비(367억원)를 내지 않으면서 국비가 올해 추경에서 삭감됐다. 대선공약에 따라 국비로 전액 혹은 국비 분담 비율을 올리기 전까진 안 된다고 버티는 입장이다. 이대로 분담금을 넣으면 국비 증액을 약속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 재정 상태로는 빚내지 않고는 4년간 4천억원, 매년 1천억원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그러나저러나 해도 표면적으로 보면 강 시장이 신뢰를 어긴 상황이다. 그러니 지역 국회의원도 광주시의회도 야당도 시민들도 강 시장을 향해 사업 추진 의지가 없다며 비판 중이다. 인터넷 뉴스 댓글들도 살벌하다. 온통 시장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성토 중이다. 그런데도 강 시장은 그냥 돌멩이가 날아오면 그대로 맞고 있다. 사방에서 오체를 묶고 잡아당기며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버티고 있다.대단한 고집이 아닐 수 없다. 국비 증액을 약속받지 못해도 시민들이 그렇게 원하면 쫌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년 지방선거 표가 눈앞에서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데도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세금 써서 도로 넓히는데 싫어할 사람 없잖나. 빚 안 내고 돈 아끼려는 지자체장이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던가? 빚 내서 돈 잔치하는 건 지자체장 특권이고 전통 아니던가? 명분도 충분하다. 의회에서도 야당에서도 하라고 등 떠밀고 있다.빚이야 나중에 누군가 갚을 것이다. 국비를 제외한 4천억원은 광주시가 140만명 정도 되니 한 사람당 30만원, 4인 가족으로 12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광주시민 1인당 147만원을 빚지고 있는 상황에서 177만원으로 조금 더 늘어날 뿐이다. 겨우 출퇴근 시간 6분 줄어드는데 지방비 4천억원을 태우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건 머리만 아프다. 어떻게 하면 지방비 부담을 줄일지, 또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갈지 다 같이 고민하는 건 사치다.얼마 전 시내버스 파업 때도 그냥 세금으로 버스기사 월급 올려주겠다고 했으면 됐을 텐데 그렇게 안 해서 버스 파업 길어져 비난만 가득 안지 않았나. 이쯤 되면 결론은 하나다. 세금은 고민하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 인기에 도움 안 되는 '재정 건전성' 따지다간 무능하다는 말만 듣는다.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대우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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