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인간을 읽다

원황룡(元黃龍) 청렴의 물 흐르고 흘러 세상마저 정화한다면…

입력 2023.05.16. 18:05 양기생 기자
[마을과 인간을 읽다]
①장성 요월정(邀月亭)
요월정 벚꽃

[마을과 인간을 읽다]①장성 요월정(邀月亭)?

마을은 사람의 삶이 역사로 녹아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마을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예로부터 보배로운 전설과 민담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그들만의 것도 과거의 것만도 아니다. 급변하는 사회에 시민들의 켜켜이 쌓인 삶과 그 삶이 주는 교훈은 나날이 더 소중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삶을 들춰 보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을 때론 부분적으로, 때론 공통적으로 그 특성과 보편성을 읽어냄으로써 우리의 원형을 찾고 더불어 더 좋은 오늘날 삶의 기특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 마을 읽기다. 그런 의미에서 인적이 끊기고 마을이 소멸되는 이런 시기에 남도의 마을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채록하는 것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 각 지역의 특색있는 마을을 선정하고 마을의 유래, 인물, 신앙과 사건 등을 발굴해 공유한다.<편집자주>


원황룡(元黃龍), 지명이 지문처럼 역사를 말해준다. 이곳이 원래 황룡강이었다. 홍수가 나면 상류에서 소와 돼지 심지어 사람까지 떠내려왔다. 4공화국 때, 물길을 현재 황룡강 줄기로 돌렸고, 지금은 원황룡 요월정 앞 연못으로 실개천만 흐른다.

장성 요월정 현판

요월정(邀月亭), 황룡강 전체를 조망하기 맞춤인 곳. 나 같은 촌뜨기가 봐도 천하 명당이다. 요월정 좌우로 길이 나 있다. 왼쪽은 꽃강 꽃길이 시심을 자극하고 오른쪽은 노송의 환대를 받으며 사색하기 좋은 조붓한 오솔길이다.

꽃그늘 아래로 돌아가니 발밑으로 천 길 낭떠러지다. 저 아래 아스라이 강에 다리 반쯤을 담그고 있는 바위, 용바위와 낙화암이다.

용바위는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다. 원래 요월정 못에는 두 마리 이무기가 승천을 꿈꾸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100일 기도 끝에 승천 허락받은 형제 이무기는 경쟁하듯 하늘로 올라가려는 찰나, 샘물을 길러 온 처녀가 그만 이무기 꼬리를 밟고 말았다. 한 마리는 승천하고 밟힌 이무기는 그만 떨어져서 이곳 용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황룡구교석

그 옆 바위는 요월정 낙화암이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마을까지 쳐들어오자 마을 아낙들이 꽃잎처럼 떨어진 곳이란다. 상승과 하강, 부상과 추락, 인간의 꿈과 좌절이 깃들어 있는 요월정 역시 무심한 듯 유심한 것 같다.

조선 명종 때 공조좌랑 광산 김씨 김경우(1517-1659)가 짓고, 하서·고봉 등과 시문을 읊던 요월정은 정자라기보다 당(堂)에 가깝다. 그 앞으로 월봉산 옥녀봉 능선이 눈썹처럼 곱게 흘러내린 곳, 요월정에서 누구나 간절히 기다리는 달 뜨는 곳이다. 앞산과의 거리가 딱 사랑하기 좋은 거리다. 강과 산 그리고 달, 한 폭 그림이 된다.

달은 왠지 수줍음 많은 누님을 닮았다. 그래서 그립다. 별이 밝다고 하나 지천이고, 해는 좋다고 하나 똑바로 보기엔 부담스럽다.

정읍사의 달은 애달픈 달이고, 이태준의 달밤은 꿈 같은 달이다. 농월정의 달은 자만에 빠졌고 망월동의 달은 구슬프다. 요월정 정도 되어야 달을 품고 달과 함께 봄밤을 꽃향기 속에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천하제일의 달은 역시 요월정의 달이다.

이리 좋은 경치에는 좋은 인물이 나는 것은 필연, 게다가 여긴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문불여장성 (文不如長城) 아닌가.

장성은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박수량 기대승 등 시대를 개혁하려 했던 학자는 물론 소설 속 홍길동이 꿈을 끼운 곳이다.

김황식 생가

수려한 마을을 걷다 보니 이 동네에서 며칠쯤 허리띠 풀고 머물고 싶어진다. 요월정 뒤쪽으로 몇 걸음 들어서니 작은 양철집이 들어온다. 예전 크레용으로 그리곤 했던 예쁜 집이 김황식 전(前)총리 생가란다. 슬며시 들어서니 솔향이 그득하다. 남의 세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실례, 얼른 뒤돌아서 멀찍이 바라보니 소박(素朴)하기도 소박(小朴)하다.


◆좋은 경치에 좋은 인물이 나는 것은 필연

김 총리를 모르는 분도 없겠지만 또한 아는 분 역시 많지 않다. 특히 이 시대는 이념의 안경이나 정당 색깔로 섣불리 판단한 경우가 허다하다. '시대의 가치관은 반대진영을 설득해 변천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가치관이 무대에서 퇴장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이를 대체하면서 역사는 한 발자국 진전한다'라는 곽금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좌우 이념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략-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며,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하며, 기존 가치의 존중과 새로운 가치에의 모색이 자연스레 교차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극단을 싫어합니다. 스스로 중도이기를 원합니다. 중도라 하더라도 중도좌파, 중도우파 중 어느 쪽이냐고 동문(東問)한다면 소외계층을 보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도저파라고 서답(西答)할 것입니다. 기득권에 연연한 우파, 특히 극우는 추하고,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 꾸는 좌파, 특히 극좌는 철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김황식 총리의 '연필로 쓴 페이스북, 지산 통신' 곳곳에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솔직 담백하게 드러나 있다. 낮고 빈곤한 이들에 대한 애정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삶이자 안목이다. 총리는 또한 겸손하고 뼛속까지 전라도를 사랑한 사람이기도 하다.

요월정 원경

"대학 시절 저는 김승옥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습니다. 전남 순천 출신입니다. / 지난 4월 곡성을 다녀와서 "골짝나라 곳성에서"라는 제목으로 지산 통신을 띄운 적이 있습니다./망월동 묘지, 식영정, 소쇄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망월동 묘역을 들러보던 어느 분이 돌아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서야 가슴이 저며오는 저는 조금은 늦고 무딘 사람인가 봅니다./저에게 광주는 어린 학생시절을 보냈던 곳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노래했지만, 저에게는 광주가 바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등산은 산이 아니라 거룩한 재단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구름 낀 날씨에 가리어 무등산을 보지 못하고 광주를 떠날 때는 그리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원황룡은 두루뭉술한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도 이웃 아저씨처럼 수수하고 가식이 없다. 김 총리의 누님 김필식 동신대 총장도 이 마을에서 자랐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김 총장은 직원이란 말보다 식구라는 말을 좋아한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고, 숟가락 드는 모습만 보고도 어디가 아픈지 몸무게가 얼마 줄었는지를 아는 이가 식구이고, 마음의 숟가락 무게와 숫자로 가족을 살필 수 있을 때 진정 식구"라고 하신다.

평소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따뜻하신 분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비범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변명이나 핑계를 찾지만 현명한 사람은 방법과 길을 찾는다며 냉철하게 활로를 모색하신다.

요월정 소나무

황룡마을이 주는 이미지 덕분일까. 언제나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높낮이를 두지 않는 시선 그리고 직원들과 소박하게 산책하고 의식주 생활을 검소하게 하시며 독서를 즐기시는 모습은 선한 어머니이자 자상한 친누님 같다.

머리 좋은 이보다 마음씨 좋은 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겸손하고 검소한 분별력을 담아내면 이 또한 청빈한 삶이 아닐까.


◆황룡강~박수량 백비 청렴길에 생가 포함을

김황식 총리는 누나들에게 딸 결혼자금을 빌린 일로 감사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김 후보자가 축의금을 모두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청렴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재임 당시 김황식 총리 같은 사람 없느냐며 하소연할 정도였다. 김 총리 집안은 권력이나 재력보다 인간 교육과 학문에 뜻을 둔 집안이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

막스 플랑크는 사회의 발전은 장례식 숫자에 비례한다고 했다. 구각(舊殼) 벗기가 이처럼 어렵다. 이명박 정부 때 총리를 역임했다는 이유로 편을 가르는 일은 편협한 단견이다.

어려운 시대, 앞길을 밝혀줄 어른이 그리울 때다. 이런 시대 우리 지역 한 집안 마당에서 청렴한 물들이 흘러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지역을 넘어 세상에 널리 알려도 좋은 일이다. 그 본보기를 원황룡 마을에서 찾으면 어떨까.

요월정엔 시방 백일홍이 만화방창이다. 장성군은 2026년까지 황룡강에서 박수량 선생 백비까지 청렴으로 가는 소나무 가로수길을 조성한다. 이때 원황룡 마을 김 총리 생가도 포함하면 어떨까.

장성을 거닐다 보면 강산을 닮아 절로 마음이 맑아진다. 어른을 보고 배운 우리는 더 맑고 청렴해져 요월정을 빠져나온다.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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