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OO없는 OO' 축제

"재작년 천만원 팔았던 게, 올해는 반토막(500만원) 났어요. 관광객 구경 조차 힘들 정도였죠."
지난 3월 광양 매화축제에서 곶감·나물류를 판매했던 김동화(65)씨의 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매화꽃을 보러 온 관광객들로 마을이 북적이고 지역 농산물도 덩달아 잘 팔리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3월 중순까지 이어진 한파에 매화는 피지 않았고 방문객은 반의 반토막 났다. 설상가상,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탓에 소비 심리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축제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부터 감을 말려 곶감으로 만들고, 직접 채취한 고사리·토란대를 말려 손수 포장했다. 그러나 판매량은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팔지 못한 곶감은 냉장고에 넣은 뒤 내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김씨는 "내년엔 꽃이 제대로 피고, 축제 날짜도 잘 맞추고, 경기도 확 풀려서 사람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관광객도 살고 우리 같은 농민들도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얼어 붙은 매실나무, 축제도 마을도 얼어 붙었다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은 이상기후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될 만큼 인기가 많아 매년 100만여 명이 찾는 곳이다. 섬진강변과 청매실농원 등에 조성된 19만8천㎡ 면적의 매화밭이 주 무대다. 올해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난해 30∼40%(3월 첫째 주)에 달했던 개화율이 올해는 10%대에 머물면서다. 매화 없는 '매화 축제'에 방문객은 '원성'을 쏟아냈고, 반토막 난 관광객에 상인들은 울상 지었다.
광양 매화는 2월 말 3월초 개화를 시작해 3월 10일을 전후해 절정을 이룬다. 절정 시기에 맞춰 10일가량 축제도 연다. 하지만 올해는 37만여 명이 축제장을 찾았다. 기습한파가 몰아치며 눈까지 내린 극한기후 탓에 개화가 더뎠다. 평년보다 일주일가량 늦어진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평균 기온은 영하 1.8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도 낮았다. 매화는 추운 날씨에도 꽃망울을 맺지만 너무 추워지면 얼어붙거나 손상돼 꽃이 피지 않거나 개화가 늦어진다. 2월만 놓고 보면 평년보다는 1.4도, 지난해보다는 5도 가까이 낮았다.
그러다보니 축제가 시작된 3월 7일께 매화 개화율이 겨우 10%에 머무를 정도였다. 축제가 끝나가던 16일이 돼서야 겨우 30% 정도 개화율이 진행됐다. 관광객들은 때 아닌 혹한 속에서 '설중매'를 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지난 17일 매화마을에서 만난 매실농장주 손영진씨는 "꽃이 피기도 전에 눈이 왔고, 바람이 불어 꽃이 다 떨어졌다"면서 "늦게 피고 빨리 지는 매화는 처음 봤다"고 털어놨다.
매실 농가들의 피해도 컸다. 3월 20일이 넘어서야 제대로 피기 시작한 매화는 그마저도 강풍과 냉서리 탓에 금세 졌다. 개화기 때 온도 저하와 강풍은 곧 수정률 저하로 이어졌다. 그 결과 매실이 작황이 급격히 떨어졌다. 평년엔 30t 안팎의 매실을 수확했지만 올해는 15~18t 수준으로 '반토막'이 예상된다. 실제 이날 둘러본 손 씨의 매실농장에는 매실이 듬성듬성 달려 있었다. 손씨는 "원래는 50개 정도 있어야 하는데 겨우 3개가 달린 것"이라며 "마을에 1천500여 매실농가가 있는데 만날 때마다 날씨 걱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기후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거다. 꽃이 피는 시기는 1∼2주 가량 차이가 났다. 날씨가 매년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다. '로또픽'이란 말처럼, 날짜를 정하는데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거다. 지난해엔 올해와 반대로 개화가 예상보다 빨랐다. 축제는 3월 8일 시작되는데, 3월 1일께 이미 절정이 찾아왔다. 관광객들의 헛걸음은 피하지 못했다. 축제 기간 50만명이 찾았지만, 2023년에 비해 반토막이 난 수치였다. 이 같은 상황은 감안, 올해는 하루 더 앞당긴 7일에 시작했지만 반대로 개화시기가 늦어지면서 헛물을 켰다. 광양시 관광과 관계자는 "갈수록 날씨 변동이 너무 심하다 보니 예측이 너무 힘들고, 축제 일정 잡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축제장 인근 청매실농원을 운영하는 정유인씨는 "축제 때 사람들이 몰릴거라고 보고, 주차·진행요원들을 준비했는데, 정작 이 때는 안오고 철수하고 나니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무방비 상태에서 대응해야 했다"면서 "차는 막히는데 교통 정리해줄 사람도 없으니 관광객은 와서 '지자체 뭐하냐'고 했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꼬막·홍어…축제 정체성 '흔들흔들'
이 같은 기후변화 탓에 특산물을 앞세우던 축제들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 매년 11월 열리는 벌교꼬막축제는 갈수록 참꼬막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울상이다. 참꼬막이 씨가 마르면서 벌교꼬막축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어서다.
참꼬막은 전국 생산량의 99%가 전남에서, 그중 70%가 보성에서 잡힌다. 그러나 2023년 전남에서 잡은 참꼬막은 고작 47t에 불과하다. 통계 작성 이래 역대 두번째로 적은 수치다.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6천t은 거뜬히 잡혔던 것에 비하면 발톱 수준이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해수 온도 상승으로 참꼬막 생육이 위협받는 영향이 크다. 이미 참꼬막의 자연 복원력이 상실됐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신안은 '흑산도=홍어'라는 인식에 맞춰 지난해까지 11년째 '흑산홍어축제'를 열었다. 하지만 홍어 주산지는 전북 군산으로 바뀐 지 오래다. 지난 2023년 전국 홍어 위판량은 3천303t이다. 이 중 군산 홍어 위판량이 1천489t으로 전남(639t)을 월등히 제쳤다. 군산 홍어 위판량은 2017년 4t에 불과했다. 수온 상승으로 서식지가 이동하면서 군산이 최대 생산지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군산은 '홍어=군산'을 내세우며 관련 축제를 기획하면서 흑산도의 아성을 허물고 있다. 기후는 흑산도에게 판정패를 안겨다 줄 가능성이 높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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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 아닌 하석(夏夕)···달라진 풍경 가을은 기온이 꺾이는 계절이다. 기상학적으론 '일 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을 시작일로 본다. 여름은 꾸준하게 20도 이상을 기록할 때다. 문제는 여름의 끝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을 한 가운데 있는 큰 명절인 지난해 추석 풍경은 상징적이다.3일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광주의 지난해 9월 17일(추석 당일) 아침 최저기온은 25.4도, 낮 최고기온 35.7도를 각각 기록했다. 9월 중순임에도 폭염 경보 기준인 35도를 넘어선 것이다. 특히 광주·전남은 3일 연휴 내내 열대야를 기록했다. 여름 추석이라는 뜻으로 하석(夏夕)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앞서 2015∼2023년엔 음력 8월 15일 기준, 22.6도∼30도를 나타냈다.낮 기온은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이었다. 20도 초반에서 30도 사이를 오가던 날씨가 지난해 급상승했다. 실제 2016년 30도, 2019년 29.6도, 2022년 26.9도가 각각 최고치로 조사됐다.문제는 이상기후의 후폭풍이다. 폭염과 집중호우, 봄철 갑작스러운 한파 등으로 인해 추석을 앞두고 과일·채소 가격은 덩달아 널뛰기하고 있다. 명절에 가장 많이 쓰이는 사과는 10개 기준, 보통 2만5천원 전후 가격을 유지하다 역대 최장 장마와 태풍이 있었던 2020년 4만2천원대로 훌쩍 뛰었다. 잡채·나물 등으로 쓰이는 시금치는 100g 기준 1천원 미만이었던 게 이상기후가 나타난 2022년에는 2천378원, 지난해에는 3천944원까지 상승했다. 시금치가 대표적인 저온성 잎채소인데 폭염·집중호우 등이 반복된 탓이다.특히 최근 5년 새 급증하고 있는 집단 식중독과 장염 등 날씨 때문에 쉽게 상하는 전염병 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무더운 추석 현상은 앞으로 계속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기혜 광주지방기상청 주무관은 "최근 10년 간 폭염과 열대야가 드물었던 5~6월과 9월, 두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등 이른 더위와 늦더위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경향과 최근 발표한 3개월, 6개월 전망을 참고했을 때 올해 9월과 10월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예상된다"고 말했다.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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