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로 잃어버릴 뻔한 터전···"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입력 2025.05.27. 17:24 김종찬 기자
이상기후의 경고 … 현실된 밥상 양극화
② 사나워진 산불
화순군 이양면에서만 3년새 2번
평화롭던 일과 송두리째 뺏어가
평균 기온 상승 반면 강수량은 하락
2023년 2월 26일 오후 1시 25분경 전남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 인근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 제공
2025년 1월 21일 오전 11시 46분께 화순군 이양면 율계리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 제공

"집에서 점심 먹다가 헬기소리 듣고 알았당께.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대고 연기는 시커멓게 올라오고…. 그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해."

지난 11일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의 한 마을에서 만난 주민 A(80대)씨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10여 가구가 전부인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산불은 마을에서 걸어서 5분, 직선거리로 10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야산에서 났다. 넉달 전인, 지난 1월 21일 오전 11시46분께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산림당국이 헬기 4대와 진화차량 11대, 대원 79명 등을 동원했다. 뒤에는 산이, 앞에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천혜적 지리에 위치한 마을 곳곳은 헬기소리와 매케한 타는 냄새, 시꺼먼 연기로 뒤덮였다. 1시간 14분 만에 불길을 겨우 잡았다. 이 시간 동안 임야 0.2ha가 탔다. 주민의 실화였다. 마을 주민이 폐기 농작물 등을 태우던 중 불길이 바람을 타고 인근 야산으로 번졌다.

지난 11일 방문한 화순군 이양면 율계리 인근 야산은 산불이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황폐화된 채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이양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23년 2월 26일 오후 1시 25분께도 발생, 1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헬기 2대와 산불 진화 장비 10대, 대원 89명 등이 동원되면서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트라우마로 남았다. A씨는 "처음에는 산불이 난 줄도 몰랐다. 헬기소리가 들리고, 네모난 가방과 삽을 손에 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먼 일이 났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평소에는 조용한 마을인데 무슨일 인가 싶어 걱정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른 주민도 "생각보다 불길이 크지 않았고, 다행히 마을 쪽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면서도 "지금도 꿈에 가끔 치솟는 불길이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깜짝 놀라 일어나곤 한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산불은 대부분 입산자들의 실수와 부주의로 발생한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산불은 입산자 실화가 37.3%로 가장 많다. 폐기물 소각 등 인위적인 행위로 인한 산불도 25.9%에 달해, 전체의 60% 이상이 실화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앞서 이양면에서 발생한 산불 2건 모두 농경 쓰레기를 태우는 등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수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경북지역 대형 산불도 마찬가지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의성군과 안동, 청송, 영양 등 4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한 산불은 산림 4만8천238ha(축구장 6만7천600여개 크기)와 주택 4천여 채를 태웠고, 수백여명의 이재민 발생했다. 미처 마을을 빠져 나오지 못한 고령의 주민들과 헬기 추락사고 등으로 인한 30여명의 사망자도 발생했다. 재산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시설피해만 1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인명피해나 산림피해 등까지 합하면 5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불도 처음에는 담뱃불 등 입산자들의 실화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담뱃불로 인해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1명을 입건한 것이다.

지난 11일 방문한 화순군 이양면 율계리 인근 야산은 산불이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황폐화된 채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지난 1월 21일 발생한 화순군 이양면 율계리 인근 야산의 산불 현장에서 도보로 5분, 직선거리로 100여m 거리에 10여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 위치해 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실화가 모두 대형 산불로 번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온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산불의 위험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13일 기상청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광주 지역에서는 연평균 약 55일, 전남 지역에서는 약 70일 이상 건조특보가 발효됐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건조특보 발효일수는 48일 수준으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건조주의보는 실효습도 35% 이하의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실효습도는 화재 예방의 목적으로 수 일 전부터 상대습도에 경과 시간에 따른 가중치를 준 뒤 산출한 목재 등의 건조도를 말하는데 실효 습도가 50% 이하가 되면 대형 산불로 번질 위험성이 높아진다.

산악지역 평균 기온도 오르고 있다. 지구온난화 탓이다. 광주·전남지역 산불은 증가세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광주는 21건, 전남은 193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 기간 기온은 상승한 반면 강수량은 하락했다.

기상청에서 발간한 '이상기후보고서 2024'를 보면 산악지역 평균 기온은 2020년 10.8도에서 2024년 12.1도로 1.3도 가량 상승했다. 강수량도 같은기간 1천697.8㎜에서 1천472㎜로 200㎜이상 감소했다. 고온 건조한 날씨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광주기상청 관계자는 "올해도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되며,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 이어질 경우 산불 발생 위험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며 "시민들도 산불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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