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심는 날이 달라졌다··· 기후변화가 바꾼 농사달력

입력 2025.03.26. 10:06 김혜진 기자
온난화에 정식날 앞당겼다
갑작스레 쏟아진 눈에 시름
작년 9월 쏟아진 극한호우
가을배추 전체 20% 폐기
북상하는 재배 한계선
출하시기 따라 도미노 현상
예측 불가능 날씨에 요동
여름배추 1폭 1만원 훌쩍
외식메뉴 가격 상승으로
임태정 해남들영농조합법인대표가 25일 전남 해남 산일면에 위치한 자신의 배추밭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배추밭에서는 봄배추 재배가 한창이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배추 모종 시기가 달라졌어요. 봄배추는 열흘 일찍, 가을배추는 열흘 늦게 심는데, 이게 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죠."

25일 오전 해남 산일면의 한 배추밭에서 만난 임태정 해남들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배추는 날이 더우면 안된다"며 이 같이 설명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배추 농사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이 곳에서 2015년부터 10년간 배추 농사를 짓고 있다. 봄배추밭 33㏊와 가을배추밭 33㏊ 등 모두 66㏊ 규모다. 배추 생산량은 각각 1천t씩 2천t에 달한다.

이날 배추밭에선 봄배추 키우기에 한창이었다. 살수장치를 활용, 온난화에 따라 10일 정도 일찍 심은 모종에 물을 뿌리면서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한참 따뜻하던 날씨가 갑작스럽게 추워지며 지난 17일에는 눈까지 왔다.

임 대표는 "배추가 다 자라봐야 알겠지만 꽃대가 자라서 꽃이 피는 증상인 추대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며 "자라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 키우고 있지만 추대가 올라오면 품질이 떨어져 제 값을 받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락가락한 요즘 날씨에 배추 농사 짓기가 더욱 힘들어져서다.

임태정 해남들영농조합법인대표가 25일 전남 해남 산일면에 위치한 자신의 배추밭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배추밭에서는 봄배추 재배가 한창이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이상기후 탓에 지난해 가을배추도 전체 물량의 20% 가량을 버렸다. 9월에 내린 극한호우 때문이었다. 시간당 100㎜ 안팎의 폭우로, 산이면의 시간당 강수량은 101.0㎜ 에 달했다. 이날 해남의 일일 최대 강수량은 328.5㎜ 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끝을 모르고 이어진 극심한 더위도 가을배추 농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국배추생산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극한 폭우와 폭염으로 해남 가을배추 재배면적의 25%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

재배 한계선은 북상하고 있다. 임 대표는 배추 가격 상승 요인으로 점차 오르는 한반도 기온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난화로 고랭지의 여름배추 재배가 점차 어려워지면서 다른 배추로 수요가 옮겨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평년(20.5도)보다 4도 높은 24.7도까지 올라갔다.

배추 생산의 도미노 현상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강원도에서 여름배추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5월부터 나오는 봄배추도 저장해 9월말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부피가 커 저장하기에 비용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름 배추 수요가 가을 배추로 옮겨오면서 가을배추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 영향을 크게 받는 배추 가격은 실제로 매년 큰 폭으로 오르내리면서 김치찌개 등 외식 메뉴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 날씨가 '로또'처럼 예측 불가능성이 커지면서 가격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 정보에 따르면 최근 5년(2020년~2024년) 배추 1포기당 평균 소매가는 매년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봄배추 경우 6월 기준 4천372원에서 3천213원, 4천134원, 3천786원을 기록했다. 작년엔 3천560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여름배추는 8월 기준 2020년 1만281원으로 크게 올랐다가 5천687원, 8천607원, 5천913원 등 변동폭이 컸다. 지난해에는 33.82% 상승해 7천913원까지 올랐다. 가을 배추는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 기준으로, 2020년 2천96원에서 이듬해 4천516원까지 올랐다가 2022년 2천821원, 2023년 2천982원까지 내려갔다. 반면 이상기후가 나타난 지난해에는 3천439원으로 15.33% 뛰었다. 겨울배추는 5년 동안 1월 기준 4천432원, 3천85원, 4천92원, 3천23, 3천67원 등에 거래됐다.

배추값 상승 탓에 절임배추 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절임배추 사업도 함께 하고 있는 임 대표는 "작년에 가을배추 값이 오르면서 절임배추도 30% 상승했는데 이 정도는 소폭에 불과하다"며 "작년 여름배추는 10t차 1대당 400만원에서 500만원하던 것이 추석 때 10t차 1대당 6천만원까지 뛰었다. 1천% 넘게 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음식점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는 "절임배추 경우 개인 판매보다 음식점, 김치업체 등으로 대량 판매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가격 상승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