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쏟아진 눈에 시름
작년 9월 쏟아진 극한호우
가을배추 전체 20% 폐기
북상하는 재배 한계선
출하시기 따라 도미노 현상
예측 불가능 날씨에 요동
여름배추 1폭 1만원 훌쩍
외식메뉴 가격 상승으로

"배추 모종 시기가 달라졌어요. 봄배추는 열흘 일찍, 가을배추는 열흘 늦게 심는데, 이게 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죠."
25일 오전 해남 산일면의 한 배추밭에서 만난 임태정 해남들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배추는 날이 더우면 안된다"며 이 같이 설명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배추 농사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이 곳에서 2015년부터 10년간 배추 농사를 짓고 있다. 봄배추밭 33㏊와 가을배추밭 33㏊ 등 모두 66㏊ 규모다. 배추 생산량은 각각 1천t씩 2천t에 달한다.
이날 배추밭에선 봄배추 키우기에 한창이었다. 살수장치를 활용, 온난화에 따라 10일 정도 일찍 심은 모종에 물을 뿌리면서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한참 따뜻하던 날씨가 갑작스럽게 추워지며 지난 17일에는 눈까지 왔다.
임 대표는 "배추가 다 자라봐야 알겠지만 꽃대가 자라서 꽃이 피는 증상인 추대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며 "자라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 키우고 있지만 추대가 올라오면 품질이 떨어져 제 값을 받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락가락한 요즘 날씨에 배추 농사 짓기가 더욱 힘들어져서다.

이상기후 탓에 지난해 가을배추도 전체 물량의 20% 가량을 버렸다. 9월에 내린 극한호우 때문이었다. 시간당 100㎜ 안팎의 폭우로, 산이면의 시간당 강수량은 101.0㎜ 에 달했다. 이날 해남의 일일 최대 강수량은 328.5㎜ 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끝을 모르고 이어진 극심한 더위도 가을배추 농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국배추생산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극한 폭우와 폭염으로 해남 가을배추 재배면적의 25%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
재배 한계선은 북상하고 있다. 임 대표는 배추 가격 상승 요인으로 점차 오르는 한반도 기온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난화로 고랭지의 여름배추 재배가 점차 어려워지면서 다른 배추로 수요가 옮겨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평년(20.5도)보다 4도 높은 24.7도까지 올라갔다.

배추 생산의 도미노 현상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강원도에서 여름배추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5월부터 나오는 봄배추도 저장해 9월말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부피가 커 저장하기에 비용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름 배추 수요가 가을 배추로 옮겨오면서 가을배추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 영향을 크게 받는 배추 가격은 실제로 매년 큰 폭으로 오르내리면서 김치찌개 등 외식 메뉴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 날씨가 '로또'처럼 예측 불가능성이 커지면서 가격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 정보에 따르면 최근 5년(2020년~2024년) 배추 1포기당 평균 소매가는 매년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봄배추 경우 6월 기준 4천372원에서 3천213원, 4천134원, 3천786원을 기록했다. 작년엔 3천560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여름배추는 8월 기준 2020년 1만281원으로 크게 올랐다가 5천687원, 8천607원, 5천913원 등 변동폭이 컸다. 지난해에는 33.82% 상승해 7천913원까지 올랐다. 가을 배추는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 기준으로, 2020년 2천96원에서 이듬해 4천516원까지 올랐다가 2022년 2천821원, 2023년 2천982원까지 내려갔다. 반면 이상기후가 나타난 지난해에는 3천439원으로 15.33% 뛰었다. 겨울배추는 5년 동안 1월 기준 4천432원, 3천85원, 4천92원, 3천23, 3천67원 등에 거래됐다.

배추값 상승 탓에 절임배추 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절임배추 사업도 함께 하고 있는 임 대표는 "작년에 가을배추 값이 오르면서 절임배추도 30% 상승했는데 이 정도는 소폭에 불과하다"며 "작년 여름배추는 10t차 1대당 400만원에서 500만원하던 것이 추석 때 10t차 1대당 6천만원까지 뛰었다. 1천% 넘게 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음식점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는 "절임배추 경우 개인 판매보다 음식점, 김치업체 등으로 대량 판매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가격 상승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
"에어컨 한달 일찍 틀고, 한달 더 가동···폭염 땐 전기세 두 배" 순천에 위치한 로뎀축산에서 사육 중인 돼지들 모습. "기온이 오를 때마다 관리·운영비가 뛰어요. 땀샘이 없는 돼지들은 에어컨 등 냉방장치와 깨끗한 물·사료 공급이 필수죠. 무더운 여름에 삼겹살 등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의 설명이다. 각각 1개 동이 250평씩 하는 4곳의 축산동에서 돼지 2천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분만·생장·출하 등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일괄 사육 농장'이다. 돼지는 고온에 민감하다. 그는 "돼지는 땀샘이 없어 호흡과 물을 마시는 것으로 체온을 조절한다"면서 "물을 많이 마셔서 열을 배출 해야 하는데, 서열상 어린 돼지들은 물통 가까이 가기도 어려워 폐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축사 관리비가 증가하는 이유다. 폭염일 수가 늘면서 냉방시설 가동기간도 길어지면서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전남 지역의 폭염일 수는 30.1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20년(7.7일)보다 폭염일 수가 4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 14.2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3년 전 만해도 5∼6월께 시작해 9월까지 에어컨을 틀었다"면서 "하지만 여름이 길어지면서 2023년부터는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가 폭염과 사육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전기세를 낼 때 체감한다고 했다. 에어컨 가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냉방에 들어가는 전기세 부담이 더욱 커져서다. 봄·가을철(3월~5월, 10월) 한 달 평균 300만~350만원 내던 걸, 여름철(6월~9월)엔 800만원대를 부담한다. 시설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7년 전, 4개동에 에어컨 설치 비용으로만 2억원가량 들었는데, 현재는 40~50% 올라 3억원 가까이 된다. 축사의 평당 에어컨 규모가 커지면서 비용도 늘었다.여름철 폐사와 무관치 않다. 최근 5년 가운데 폭염일 수가 가장 길었던 지난해(30.1일)에는 104농가에서 돼지 1만4천718마리가 폐사했다. 해당 기간 가장 큰 피해 규모로 기록됐다. 5년 전인 2020년 폭염일 7.7일 동안 5농가에서 30마리가 폐사한 것과 비교하면 폭염일 수가 5배 가까이 늘었고, 폐사한 돼지는 490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시설이 열악할 수록 폐사가 많이 일어난다"며 "폭염 기간이 매년 길어지고 있는 만큼 에어컨 등 시설을 갖추지 못한 농장은 축사 운영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아찔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10월께 장기간 농장을 비웠을 때다. 갑작스런 정전 탓에 축사 에어컨 가동이 멈추면서 10여 마리가 폐사했다. '하석' 등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던 시기다. 다행히 이를 빨리 발견한 직원들이 창문을 열어 환기 시켰고, 전기도 10시간 만에 다시 들어와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한여름이었다면 더 큰 피해가 불가피 했던 순간이었다.광주 지역 연도별 삼겹살 1인분(200g) 기준생산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주 대표는 "지속된 더위에는 서서히 적응을 하지만, 갑작스런 폭염 땐 폐사가 늘어난다"며 "무더위 뒤, 극한호우와 함께 찾아오는 찜통더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단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어미돼지는 사료 섭취량이 줄어들고 분만이나 젖주기 등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출하를 앞둔 돼지들 역시 섭취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출하 일령이 늘어나거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다.실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폭염 시 160일인 출하 일령'을 늘리지 않고 ㎏ 수가 조금 떨어지더라고 정해진 날짜에 출하하고 있다. 평상시 땐 1마리 당 1등급으로 50만원 가량 받았을 돼지 가격을 2급 45만원 정도에 출하하고 있다.치솟는 사룟값도 부담이다. 주 대표는 "시중에서 가장 비싼 사료를 사용해 사룟값만 한달 평균 1억원이 든다"며 "최고급 사료로 품질 좋은 돼지를 키워내기 위해 1년 내내 품질 좋은 사료를 공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철에는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분뇨 처리 비용 또한 여름철 운영 비용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돼지들이 고온 속에서 적정 체온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물을 섭취하는 만큼 분뇨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분뇨는 발효시켜 비료로 만든 뒤 논과 밭에 뿌려지는데, 여름철 우기 땐 논·밭에 처리하기 힘들어져 처리 비용은 '부르는 게 값'된다"며 "평상시보다 30%는 늘어난다"고 토로했다.폭염 피해에 대한 근본적 지원책도 주문했다. 전남도가 고온 피해 예방을 위해 사료 첨가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돼지 축사 자체가 단열이 돼야 사료 첨가제를 먹여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에어컨 설치도 단열이 돼야 의미가 있는 만큼, 낙후된 농가들이 이상 기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설적인 지원이 이뤄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 · 기후위기에 돼지 생산 비용↑···폭염이 키운 식탁 물가
- · "삼겹살 먹자" 한마디가 부담스러운 시대
- · "더운 가을·겨울, 추운 봄에 양파 생산량이 급감했어요"
- · "이상기후, 작물의 생장·생리에 직접적인 영향 미치는 핵심 요인"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