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밀린 김 심기, 앞당겨진 수확···고수온 직격탄

입력 2025.03.18. 19:43 이삼섭 기자
■이상기후의 경고 현실된 밥상 양극화 - 1부 음식 불평등 ①김밥
주재료 '김' 생산지 가보니 채취 시기 줄어들어
당근·시금치·오이 등도 5년만에 가격 '2배 껑충'
전문가 "기후 문제 지속되면 빈자에 더 큰 피해"
17일 전남 완도 군외면 선착장에서 채취한 물김을 육지로 옮기고 있다. 남해에서 지속적인 수온 상승으로 채취 시기가 점차 줄어들면서 어민들은 품종 개량과 시설 확대 등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이맘 때까지는 김발이 걸려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지난달(2월) 중순 앞바다 양식장을 접었습니다."

17일 오후 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의 한 선착장에서 만난 재경형(50) 삼두김 대표는 착잡하다고 했다. 그 곳에서 바라본 30㏊ 규모의 김 양식장은 한산했다. 축구장 하나가 0.714㏊인 만큼 축구장 42개 크기다. 가업을 이어받은 지는 10년째. 매년 480t 정도 김을 채취한다. 완도지역 김 양식장의 평균 규모. 3월 중순이면 한창 김을 채취해야 할 시기지만, 상당수가 김발(김 양식 시설)을 뒤집어 엎거나 육지로 철수한 뒤였다. 김발을 뒤집어 놓는다는 건 올해 김 채취를 끝냈다는 의미다. 재 대표는 내해 양식장을 평년보다 빨리 접었다고 했다. 내륙에 가까운 해안일수록 수온이 빠르게 오르기 때문에 내해 양식장은 외해보다 더 빨리 철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통상 3월까지는 채취해왔지만, 갈수록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내해 양식장을 조기 철수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른 양식장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재 대표와 함께 둘러본 근해 상당수 김 양식장이 채취를 중단했다. 통상 김 양식은 9월 정도가 지나면 채묘(김발에 김 포자를 넣는 행위)해 5월까지 수확한다. 하지만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예정된 채취 시기를 한 달 가까이 앞당겨 철거하고 있다. 이상 기후 탓이다. 바다 수온이 평년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김 채취 시기가 앞당겨지고 김 양식장 운영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도 고수온 때문에 일주일 이상 입식(채묘)이 늦어졌다"며 "수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씨앗이 녹아버려 입식조차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재 대표 상황은 나은 편이다. 외해에도 김 양식장을 가지고 있어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내해 양식장 대신 비교적 나은 외해 양식장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외해 양식장도 해수온 상승 위협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내해보다 조금 더 나을뿐이지, 해마다 채취 시기가 줄어들고 있다. 채묘 해야 하는 시간은 늦어지고, 채취가 끝나는 시간은 앞당겨지면서다. 다행히 올해는 1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저수온으로 바뀌면서 작황이 좋다고 했다.

17일 완도 군외면 선착장에서 재경형 삼두김 대표가 채취한 물김을 들여다보고 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남해 김 양식은 점차 내해에서 외해로 옮겨가는 추세다.

◆ 고수온이 바꾼 김 양식장

고수온에 김 양식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완도 앞바다를 덮쳤던 2023년이 대표적이다. 양식장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폭염 등에 따른 고수온 탓이다. 재 대표는 "그 해는 너무 힘들어서 대출까지 받았다. 바다에서 김을 키워온 지 10년 가까이 되면서 그 정도로 바다가 따뜻했던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남해안 해수 온도는 매년 0.3~0.5도씩 상승 중이다. 또 2023년~2024년 2년간 전남지역 양식업장의 고수온 피해는 292억원가량이었다.

2021년에는 황백화 피해를 경험했다. 극한 가뭄 때문이었다. 황백화는 질소 영양염의 농도가 김 성장에 필요한 양보다 부족해서 죽는 현상이다. 당시 전남지역 제한급수 위기까지 몰고 간 가뭄으로 유기물이 풍부한 강물이 바다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양식하던 김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재 대표는 "당시 황백화 탓에 김이 죽거나 상품성이 떨어져 상당수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갯병 같은 해양 질병도 잦아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가업을 이어 받았지만 우리 아이 세대에서도 김 양식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뾰족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김 양식업은 남해안 해수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품종 개량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재해 수준의 이상 기후가 닥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김은 품종 개량과 생산시설 확대로 생산량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다.

 삼두김 대표가 2023년 당시 고수온으로 황백화 현상으로 죽어버린 물김을 버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 이상기후 식재료 폭등…김밥값 상승으로

최근 김밥 가격 상승은 이 같은 김 양식 상황과 무관치 않다. 김밥의 가장 큰 재료인 김은 주로 전남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해수 온도 상승(고수온)과 이상 기후(가뭄 등)로 양식 환경이 나빠졌다. 2023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고수온 현상이 식탁을 덮친 것이다. 통상 물김이 유통·가공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차가 발생한다. 또 산지 가격과 달리 한번 형성된 도·소매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마른김(중품·10장) 가격은 지난해 2월 900원 수준에서 올해 2월 1천560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김밥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

바다 뿐만 아니라 논·밭 식재료도 위협한다. 주 재료인 당근·시금치·오이 등의 가격을 살펴보면 해마다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가뭄·극한 호우 등의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빈번해진 탓이다. 당근과 시금치가 주요 사례다. 제주가 최대 산지인 당근은 재배면적이 늘었음에도 평년 수준을 넘어선 폭우로 생육이 부진해 수확 물량이 줄어 올해 초 가격이 급등했다. 전남 해남이나 경북 포항, 경남 남해 등이 주산지인 시금치 또한 폭염과 잦은 가을비, 갑작스러운 한파 등 이상기후로 산지 가격이 크게 뛰는 추세다. 재배 면적이 늘어나는데도 이상·극한기후 등으로 작황이 부진하면서 해마다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나 이상 기후가 농산물 수급과 식탁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재경형 삼두김 대표가 17일 완도 군외면 인근 김 양식장이 채취를 중단하거나 철수한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내해 양식장은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해가 갈수록 채취 시기가 짧아지고 있다.

박형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농업경제학 박사)은 "기후 변화나 이상 기후로 인해 재해가 발생하기 쉬워지고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결국 가격이 뛰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특히 생필품에 가까운 농산물들은 수요는 그대로 있는데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 변화가 어느 정도 크기로 식탁 물가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기후 문제가 계속 지속되고 해결책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어떤 소비자 후생 하락이 발생할 것이고 그런 효과는 조금 더 가난한 분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사진=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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