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에 3천500원…불과 5년만에 44.16% 올라
'이상기후' 직격탄에 주재료비 무섭게 치솟아

김밥은 대표적인 '혼밥 외식' 메뉴다. 간편하면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학생들부터 바쁜 직장인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는다. 국밥 한 그릇이 만 원을 넘보는 고물가 시대에도 유일하게 천원짜리 지폐 몇 장으로 버텨주던 음식이다. 김밥의 배신이 심상찮다. 최근 가격이 무섭게 치솟으면서다.
지난 14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정문 앞 '대학로분식'. 사장인 박모(73·여)씨는 지난해 말, 김밥 가격을 500원 올렸다고 했다. 김과 속 재값 인상 탓이다. 그는 "작년 4천800원 하던 단무지 가격이 6천400원까지 올랐다"면서 "김값(마른김 1속)도 한 때 1만 5천원을 넘어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가 특성상 마음고생이 크다. 가격에 민감해 몇 백원에도 사람들이 부쩍 줄어드는 게 보여서다. 그는 '김밥 1천원'이라고 적힌 작업대를 가리켰다. 불과 10여 년 전 가격표다. 2005년엔 한 줄에 800원 받고 팔았다고 했다. 식재룟값은 요동치는 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김밥값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짜장면, 냉면집은 1천원, 2천원씩 금방 올리지만 김밥은 500원만 올리려 해도 겁나 힘들어. 근데 시금치·당근은 또 얼마나 비싸." 분주하게 김밥을 마는 박씨의 푸념이다.
다른 가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8일 오전 전남대 상대 인근 봉봉김밥. 사장 고모(43)씨의 표정이 어둡다. 손님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름 김밥 맛집으로 입소문이 난 터라 주문은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재룟값. 해가 갈수록, 짧으면 달이 바뀔 때마다 속 재값이 계속 오른다. 하지만 그에 맞춰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보니 수익성은 낮다. 많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다.
잠을 줄였다. 5년 전, 가게 문을 연 이래 가격을 두 번 올렸다. 재룟값이 너무 뛰어 버틸 수 없어서다. 그 때마다 영업 시간이 오전 8시에서 6시로, 다시 오전 4시로 앞당겨졌다. 부족한 수익을 채우기 위해서다.
이상기후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극심한 폭염이나 한파, 가뭄 또는 '극한호우' 등 예상치 못했던 이변에 식재료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고씨는 "극심한 폭염, 폭우, 한파가 몰아친 다음 날 공판장 가보면 오이·당근값이 두 배가 된다"며 "안 쓸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져다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 서민 음식인 김밥 가격이 치솟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광주지역 김밥(외식 기준) 한 줄 가격은 3천460원이다. 2020년 2월 2천400원에서 5년 만에 44.16% 뛰었다. 쉽게 말해 5년 전, 3줄을 먹을 수 있었던 가격이 이젠 2줄 밖에 먹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가격 상승의 배경엔 이상기후가 똬리를 틀고 있다. 김과 당근·시금치·우엉·계란 등 식재료가 고수온과 폭염, 폭우 등 기후 위기의 직접 영향권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상 기후 탓에 생산량은 줄고 가격은 급등했다. 한국소비자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마른김(중품) 10장당 가격은 2020년 2월 730원에서 올해 2월 1천560원(113.69%↑)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같은 기간 당근(100g)은 489원에서 732원(49.69%↑)으로, 시금치(1단)는 2천816원에서 4천525원(60.68%↑)으로 올랐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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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한달 일찍 틀고, 한달 더 가동···폭염 땐 전기세 두 배" 순천에 위치한 로뎀축산에서 사육 중인 돼지들 모습. "기온이 오를 때마다 관리·운영비가 뛰어요. 땀샘이 없는 돼지들은 에어컨 등 냉방장치와 깨끗한 물·사료 공급이 필수죠. 무더운 여름에 삼겹살 등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의 설명이다. 각각 1개 동이 250평씩 하는 4곳의 축산동에서 돼지 2천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분만·생장·출하 등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일괄 사육 농장'이다. 돼지는 고온에 민감하다. 그는 "돼지는 땀샘이 없어 호흡과 물을 마시는 것으로 체온을 조절한다"면서 "물을 많이 마셔서 열을 배출 해야 하는데, 서열상 어린 돼지들은 물통 가까이 가기도 어려워 폐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축사 관리비가 증가하는 이유다. 폭염일 수가 늘면서 냉방시설 가동기간도 길어지면서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전남 지역의 폭염일 수는 30.1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20년(7.7일)보다 폭염일 수가 4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 14.2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3년 전 만해도 5∼6월께 시작해 9월까지 에어컨을 틀었다"면서 "하지만 여름이 길어지면서 2023년부터는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가 폭염과 사육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전기세를 낼 때 체감한다고 했다. 에어컨 가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냉방에 들어가는 전기세 부담이 더욱 커져서다. 봄·가을철(3월~5월, 10월) 한 달 평균 300만~350만원 내던 걸, 여름철(6월~9월)엔 800만원대를 부담한다. 시설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7년 전, 4개동에 에어컨 설치 비용으로만 2억원가량 들었는데, 현재는 40~50% 올라 3억원 가까이 된다. 축사의 평당 에어컨 규모가 커지면서 비용도 늘었다.여름철 폐사와 무관치 않다. 최근 5년 가운데 폭염일 수가 가장 길었던 지난해(30.1일)에는 104농가에서 돼지 1만4천718마리가 폐사했다. 해당 기간 가장 큰 피해 규모로 기록됐다. 5년 전인 2020년 폭염일 7.7일 동안 5농가에서 30마리가 폐사한 것과 비교하면 폭염일 수가 5배 가까이 늘었고, 폐사한 돼지는 490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시설이 열악할 수록 폐사가 많이 일어난다"며 "폭염 기간이 매년 길어지고 있는 만큼 에어컨 등 시설을 갖추지 못한 농장은 축사 운영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아찔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10월께 장기간 농장을 비웠을 때다. 갑작스런 정전 탓에 축사 에어컨 가동이 멈추면서 10여 마리가 폐사했다. '하석' 등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던 시기다. 다행히 이를 빨리 발견한 직원들이 창문을 열어 환기 시켰고, 전기도 10시간 만에 다시 들어와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한여름이었다면 더 큰 피해가 불가피 했던 순간이었다.광주 지역 연도별 삼겹살 1인분(200g) 기준생산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주 대표는 "지속된 더위에는 서서히 적응을 하지만, 갑작스런 폭염 땐 폐사가 늘어난다"며 "무더위 뒤, 극한호우와 함께 찾아오는 찜통더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단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어미돼지는 사료 섭취량이 줄어들고 분만이나 젖주기 등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출하를 앞둔 돼지들 역시 섭취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출하 일령이 늘어나거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다.실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폭염 시 160일인 출하 일령'을 늘리지 않고 ㎏ 수가 조금 떨어지더라고 정해진 날짜에 출하하고 있다. 평상시 땐 1마리 당 1등급으로 50만원 가량 받았을 돼지 가격을 2급 45만원 정도에 출하하고 있다.치솟는 사룟값도 부담이다. 주 대표는 "시중에서 가장 비싼 사료를 사용해 사룟값만 한달 평균 1억원이 든다"며 "최고급 사료로 품질 좋은 돼지를 키워내기 위해 1년 내내 품질 좋은 사료를 공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철에는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분뇨 처리 비용 또한 여름철 운영 비용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돼지들이 고온 속에서 적정 체온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물을 섭취하는 만큼 분뇨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분뇨는 발효시켜 비료로 만든 뒤 논과 밭에 뿌려지는데, 여름철 우기 땐 논·밭에 처리하기 힘들어져 처리 비용은 '부르는 게 값'된다"며 "평상시보다 30%는 늘어난다"고 토로했다.폭염 피해에 대한 근본적 지원책도 주문했다. 전남도가 고온 피해 예방을 위해 사료 첨가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돼지 축사 자체가 단열이 돼야 사료 첨가제를 먹여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에어컨 설치도 단열이 돼야 의미가 있는 만큼, 낙후된 농가들이 이상 기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설적인 지원이 이뤄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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